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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3. 2021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되다

넷째는 나에게도 버겁다.

남편은 웃고 나는 울었다. 임신 테스트기를 사러 간 약국에서 울상인 내 표정을 보고 남편은 “인상 좀 펴, 네가 그러고 있으면 내가 정말 나쁜 놈 된 거 같잖아”라고 말했다. 어제부터 속이 이상했다. 이번 달도 너무 정신없이 사느라 한 달에 한 번 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남편한테 카카오 톡으로 이 상황을 알렸다.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이 짐을 나눠지고 싶었다.


“여보, 몸 상태가 이상해요. 속이 계속 메슥거리고 기운이 없어요.”


이미 세 번이나 겪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틀림없는 일이다. 남편은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테스트를 한 번 해 봅시다. 그런데 걱정 말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올챙이를 보낸 적이 없어요.”


웬 올챙이? 그때서야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


함께 약국 가서 테스트기를 구입했다. 대형마트 화장실 앞에서 남편은 기다리고 난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가슴 두근거리며 결과를 기다렸다. 오줌이 적셔진 부분이 연분홍빛으로 변하면서 찐한 분홍색 선이 한 줄 생겼다. 연이어 또 한 줄이 생겼다. 눈을 의심하며 설명서를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한 줄은 비 임신. 두 줄은 임신. 테스트기를 한 개 더 샀다. 아침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며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같았다.


 다음 날, 임신을 확인하러 산부인과에 들렀다. 의사가 물었다. “둘째신가요?” “아니오, 넷째요.” 살짝 당황한 듯 보이는 의사는 서둘러 초음파로 아가를 보러 가자고 했다.
넷째는 나에게도 조금 버겁다. 산부인과는 이제 영원히 안녕인 줄 알았는데 소아과만 다니면 되는 줄 알았는데 또다시 산부인과라니 난 두렵다.


이제 6주 되었다는데 이미 내 자궁 깊숙이 파고든 그 새 생명은 안전하게 자리를 잘 잡았다고 했다. 재앙 같은 입덧도 이미 시작되었다. 버스를 오래 타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24시간 지속된다. 먹긴 먹는데 먹은 것은 여지없이 다시 넘어온다. 변기를 붙잡고 살고 있다. 입덧의 고통이 너무 커서 다시는 애 낳지 않을 거라고 결심하곤 했다. 셋째까지 그렇다고 해도 넷째라니 마냥 좋지 만은 않았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생각도 했다.
이런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렸다. 좋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온갖 집안일이며 육아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 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얘들아 엄마 뱃속에 동생 자라고 있으니까 엄마 말씀 잘 들어.”
“동생 태어나면 우리 가족 여섯 명이 되는 거야? 신나지 않니?”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삶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그렇게 좋아해 주니 토하고 나서 기운 없어 누워있으면서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저렇게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걱정부터 하던데 걱정도 안 되나? 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나는 이렇게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게 되었다. 세 명을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인데 한 명 더 주신 것은 더 특별하고 의미 깊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삶이 내 삶의 지평을 얼마나 더 넓혀줄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입덧은 너무 힘들지만 우리 아이들 네 명이 옹기종기 앉아 서로 의지하고 부대끼며 살아갈 시간들을 생각하면 거뜬히 이길 수 있다. 또다시 누군가의 삶 전부 인, 엄마로 살아가는 일 부담스럽고 무겁지만 그 빛나는 축복의 비를 기꺼이 맞으려고 한다.


                      

두 번이나 했던 임신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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