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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6. 2021

입덧을 데리고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우다...

네 번째 임신, 반복되는 입덧의 고통을 지나다

임신부는 항상 불안하다. 아이가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지 불안하고 이 음식을 먹어도 아이한테 해가 되지 않는지 불안하다. 주변 사람들은 네 번째 겪고 있는 내가 입덧에도 베테랑일 거라 여긴다. 그렇지 않다.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듯이 찾아오는 아이마다 엄마가 되는 고통 역시 각각이다. 매번 찾아오는 입덧이 극심한 고통임은 한결같다. 그렇다고 네 번째 반복한다는 것이 그 고통을 경감시켜 주진 않는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이 고통 중 유일하게 지속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글쓰기’다. 글쓰기로 입덧의 고통을 달랜다. 그날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토했는지, 엄마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썼다. 글 속에선 토하고 들어간 약국의 여자 약사와의 대화가 나온다.


“입덧 완화시키는 약은 없나요?”

“시간이 약입니다.”


나이 지긋한 여 약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입덧 약을 구할 정도로 입덧이 고통스럽다고 쓰며 내 글은 사람들의 위로를 갈구하고 있었다. 내 소망대로 많은 분들이 댓글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그중에 한 댓글이 눈에 띄었다.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릴게요. 입덧 완화제가 시중에 나와 있어요. ‘디클렉틴’이라고. 너무 심하시면 인터넷 검색해 보시고 한 번 드셔 보셔요.”

그 글을 보고 눈에 불을 켜고 ‘디클렉틴’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한정열 교수 연구팀은 “임산부들은 입덧 증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떨어지고 증상이 심할수록 그 정도가 급격히 악화된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됐다”라고 말하면서 ‘디클렉틴’이 임산부 입덧 치료에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되었다고 했다.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되었다고 하는데도 불안했다. 입덧이란 자연스러운 현상을 약물로 억지로 조절한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임신을 확인하고 한 달 만에 찾은 산부인과에 들어서자마자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입덧 완화제요, 디클렉틴인가? 그거 먹어도 괜찮을 까요?”

“국내에서 안정성이 입증된 입덧 약은 그거 하나예요. 너무 심하시면 드셔도 됩니다. 이미 많은 산모들이 처방받아 드시고 있고 어떤 부작용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바로 ‘처방해주세요’라는 말을 못 하고 계속 망설였다.

그런 나를 보고 “너무 심하셔서 아무것도 못 드시면 차라리 약을 드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못 먹지는 않아요. 먹긴 먹는데 다 토해서 그렇지… 조금 버텨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뱃속 아이를 보러 갔다. 6주 차에 임신 확인을 하고 중간에 한 번 더 병원에 왔어야 했는데 넷째 엄마의 여유를 부렸다. 한 달 만에 찾은 병원이다. 임신 10주 차가 되었다. 침대에 누워 초음파로 배를 보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눈 코 입 팔다리가 다 생겨있었다. 4.3Cm라는 작은 생명체 안에 필요한 부분들이 다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겨우 10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작은 생명체 안에 말이다. 새삼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10주 차 아가 모습


남편과 나는 이 아이가 우리가 생애 처음 만나는 아이처럼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우와 선생님, 언제 이렇게 아이가 컸어요?

아니 이제 10주 차인데 이렇게 팔다리가 다 생기다니요?”


의사 선생님께서 우리의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시고 “넷째에게도 관심을 좀 가져 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우리 모두는 활짝 웃었다.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이렇게 크려고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사람의 형태가 되어가기 위해 입덧이 그렇게도 심했던 것이구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몇 번을 차를 세우고 토해야 했다. 아가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 마음가짐이 달랐다. 한 생명 키워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렇게 키우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면 이 고통의 비를 기꺼이 맞으련다. 조금씩 입덧을 데리고 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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