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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9. 2021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입덧의 고통

나는 점점 지쳐간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있는 사이 나는 혼자였다.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엉망인 집안 꼴을 본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세탁기에 빨래 한가득 집어넣고 와서 앉아서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다음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고 그에 따라 내 마음까지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늘 건강 체질이라 자부하며 살았다. 병원 신세는 물론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살았다. 그랬던 내게 아픈 몸은 적응이 안 된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삶이 영 낯설다.

얼마 전,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나, 돌봄을 위한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학부모 연수가 있었다. 왜 자신을 돌봐야 하는지 자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프면 나머지 가족들이 느낄 감정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축복의 고통 속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비정상적인 엄마 때문에 우리 집은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다. 직장 생활에 육아의 부담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남편은 조금씩 지쳐간다. 아이들은 먹는 것을 잘 챙겨주지 못하니 영양 상태가 우려스럽다. 난 늘 그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아픈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떨지 감히 이 삶의 경험이 느끼게 해 준다. 몸이 지치면 마음은 자연스레 따라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한 감정은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지 이러다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하다.

임신 6주 차에 입덧이 시작되면서 새 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임신 13주 차가 되었다. 나는 입덧의 고통 속을 거의 두 달 동안 겪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후면 이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을 안다.  
 첫째 때도 그랬고 둘째 때도 그리고 셋째 때도 그랬으니까 넷째 때도 그러리라고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늘 일기를 써왔다. 그 당시 일기장을 펼쳤다. 지금 느끼는 입덧의 고통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입덧이 너무 고통스러워 첫째 때부터 다시는 애를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선 어쩌다 나는 넷째까지 갖는 엄마가 되었을까.

어제가 제일 힘든 것 같았는데 오늘은 더 힘든 날이 이어진다. 버스를 너무 오래 타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프고 먹기만 하면 도로 올라온다. 먹은 것도 없는데 토하려니 눈물 콧물이 쏙 빠진다.  
 이 상황이 너무 힘들어 변기를 붙잡고 울고 있는데 속도 모르는 구토는 또다시 시작된다. 쓴 물까지 끝까지 토하고 나서야 끝이 난다. 이 고통의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지금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어찌 이다지도 더디 가는지 시간을 날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입덧이 끝나는 시점으로 날아가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집으로 모두 돌아왔다. 아빠가 목욕을 시키고 아이들이 거실에서 뛰고 놀고 있다. 나는 병든 닭처럼 기운 없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누워있다. 하루 종일 잠을 잤더니 이제 잠도 안 온다.  

사진 : 픽사베이


이 상황이 너무 진절머리가 나고 힘들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는데 막내가 엄마가 보고 싶어 방문을 열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다섯 살 아들은 모든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나를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린다.

아빠가 머리 말리자고 부르자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아빠한테 간다. 멀리서 “민유야, 왜? 왜 그래? 왜 울어?”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상황이 빠르게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아이 셋이 모두 엄마를 보러 달려온다. 셋이 달라붙어 엉엉 울어버린다.

“똘똘아, 엄마 진짜 많이 힘들어. 이제 엄마 좀 그만 힘들게 하면 안 될까?”

큰 아이의 뱃속 동생을 향한 절규에 가까운 말들에 가슴이 찡하다.  

이제 정말 거의 다 온 것을 알겠는데 지쳐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길을 잃었다. 아는 병이라고 곧 끝나는 축복을 위한 고통이라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내 다시 끝도 모를 고통 속 서글픔으로 붙들려온다. 입덧만 끝나면 맛있는 거 마음껏 먹고 책도 마음껏 읽고 글도 마음껏 쓸 텐데… 그 희망사항 가슴에 품고 오늘을 또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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