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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0. 2021

3개월, 꽉 채운 입덧의 고통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이제야 고통의 끝에 와있다

임신 6주 차에 접어들던 어느 날,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가 올라왔다. 임신을 의심했다. 남편에게도 얼른 이 사실을 알렸다. 남편은 올챙이를 보낸 적 없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 위로가 소용없게 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 나는 울고 남편은 웃었다. 세 명까지는 괜찮았지만 네 아이 엄마는 생각만 해도 숨이 콱 막힌다. 무겁고 두렵다. 네 아이 엄마로 살아가는 일.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 보건소를 방문했다. 임산부 등록을 하고 엽산제를 받아왔다.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되면서 다니던 직장에 휴직원을 제출했다. 승진을 앞둔 중요한 시기였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 넷째 입덧의 재앙 속을 거닐고 있는 내게 승진 따윈 이미 하찮은 그 무엇에 지나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처음 받아올 때 엽산제는 두 통이었다. 하루에 한 알을 먹다 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엽산제는 태아의 신경계 발달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 엽산제가 입덧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입덧이 심했던 나는 엽산제를 밤에 잠들기 전에 먹었다. 적어도 자는 동안에는 입덧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잠들기 전 하루 한 알 엽산제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 엽산제를 다 먹으면 입덧이 끝나겠구나. 조금만 더 참자.’ 두통, 구토, 어지럼증, 기운 없음. 이런 단어에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고통 속에서 시달리면서 끝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무기력하게 누워서 어떤 날은 울면서 고통의 시간을 버텼다. 너무 힘든 날에는 이 고통이 끝이 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마음까지 너무 우울해지곤 했다.


 시간은 흘렀고 엽산도 이 한 판 남았다. 어젯밤 한 알을 까먹으며 생각했다. ‘이제 이 나머지 알만 다 먹으면 내 입덧도 정말 끝이겠구나.’ 이미 겪어본 세 아이의 경험으로 봐서도 16주가 되면 입덧은 주춤했다. 이 엽산제를 다 먹으면 끝난다는 말이 명백한 진실임을 내 경험이 뒷받침해주니 더 신뢰할 수 있었다.
 힘든 고비 때마다 초음파를 통해 들여다본 뱃속 아가를 보면서 기운을 내보았다. 중간에 참지 못하고 입덧 완화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효과를 보기는커녕 부작용 때문에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약을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게 훨씬 수월했다.  
 효과 본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 약이 오로지 구토만 억제하게 해 줬다. 다른 증상들 울렁거림, 어지럼증, 심장 두근거림, 졸림, 기운 없음 등은 더 강화시키고 그 상태에서 오로지 구토만 억제시키니 더 힘들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내 몸을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태.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상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겸손을 배웠다. 늘 건강한 삶을 살았던 나는 아픈 몸으로 사는 삶을 잘 알지 못했다. 건강한 삶에 대한 감사도 잃고 교만하게 살았다. 비록 아는 병이고 기한이 정해진 고통이었지만 이 고통 속을 거닐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육체와 정신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그 평범한 진리가 고통의 시간 중 마음을 파고들었다.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을 거니는 중에도 내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바로 '글쓰기'다. 글에 내가 느낀 고통을 담았다. 글쓰기로 고통을 달랬다.  
 '내가 사는 게 재밌는 이유'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파킨슨병에 걸려 몸이 굳어 가는 중에도 글을 썼다. 몸 상태가 잠시 괜찮아지는 중간중간 틈을 이용해 글을 썼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먹은 것도 없으니 끝까지 토하고 또 토하니 거의 하루 종일 병든 닭 마냥 누워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 전에도 늘 새벽에 일어나 글 쓰던 습관을 몸이 기억했는지 몸 상태가 그리 안 좋은 데도 새벽 5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처음에는 몸이 너무 힘드니 다시 잘까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24시간 중 딱 한 시간만 버티자고 마음을 먹었다.  새벽 시간, 올라오는 구토와 어지럼증을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글을 써왔다.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끝이 보인다. 호시탐탐 듣고 싶은 강연회를 찾아다니고, 읽고 싶은 책장을 펼치고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안달이 난 걸 보니 입덧이 거의 막바지다. 아무나 경험하지 못할 네 번째 아이의 엄마로 살게 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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