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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8. 2021

엄마라는 이름의 그 묵직함

초등학생이 된 큰 딸의 방학이다. 함께 손잡고 고운 맘 카드를 만들러 농협에 들렀다. 아이사랑카드로 보육료 결제하며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다시 고운 맘 카드로 회귀다. 임산부에게 이 카드는 필수다. 이 카드를 통해 임산부에게 산부인과 진료비가 지원된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고운 맘 카드 만들러 왔어요.”

라고 말하며 임신확인서와 신분증을 내밀었다. 옆에 앉은 딸을 힐끗 쳐다본 창구 직원은     

 “아이들이 터울이 좀 있겠네요. 태어날 아이가 둘째시죠?”
 “아니오. 중간에 아들 둘이 더 있어요. 넷째예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직원은 당황한 듯했다.  
“넷째요?”
잠시 후 중얼거리는 작은 말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낳긴 낳는다고 해도 어떻게 키워요? 넷을…”


입덧으로 계속 토해서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고는 나무라 듯, 불쌍한 듯 내뱉은 말은 내 가슴에 가시가 되어 꽂히고 말았다. 지금 나를 덮친 고통이 너무 커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을 회피했다. 네 명의 아이가 짐짝처럼 느껴질라 치면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네 명이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며 밝게 살아갈 모습만을 떠올렸다. 그 힘이 나를 버티게 했다. 그 여직원 말속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서웠지만 그런 생각을 피했던 것이다. 왜 나라고 무섭지 않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희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아이를 아예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하나 둘이 전부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분명 경제적, 시간적 희생이 뒤따른다. 그 희생과 못지않은 행복이 동반되는 일임에 분명 하나 가늠할 수 있는 행복감이 희생을 넘어서지 못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만다. 아이 때문에 희생하고 살아가야 할 내 인생에 대한 그 두려움 말이다. 나 또한 그 시간이 두렵다.  

어찌 나라고 두렵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아이가 셋 일 때도 나에 대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애는 셋이나 낳고는 자아실현 욕구가 참 강해서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은 꿈 많은 엄마다.”

막내가 다섯 살이 되니 말귀도 알아듣고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다. 지금도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싸기는 하지만 기저귀를 떼니 다 큰 것 같이 수월했다. 이제 엄마 말고 형과 누나와 곧잘 어울려 노는 시간이 늘었다. 숨 쉴 공간, 숨 쉴 여유가 생긴 것 같아 마냥 좋았다.  

그 자투리 시간들을 이용해 어떻게든 나만의 꿈을 펼쳐왔다. 아이들이 자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꿈에 선명하게 색칠을 해 나갔다. 글쓰기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일기장에만 쓰던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책에도 담기 시작했다.  

1년 여 만의 시간 안에 ‘행복 메신저의 꿈 충전소’라는 블로그에 ‘행복한 꿈쟁이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내 삶을 담은 책도 출간했다. 책은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날아다니고 있다. 이제 강연을 하려고 했다.  

책에 담은 내 삶의 이야기를 직접 내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나의 또 다른 꿈이다. 꿈이 내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그러던 찰나 넷째가 찾아왔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왜 하필 이때…’라는 한숨 섞인 말이 절로 나왔다.  

넷째는 내 삶을 다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엄마’라는 삶 속으로 붙들고 간다. 잠시 트였던 숨통이 다시 탁 막히는 기분이다. 7급 승진을 코앞에 둔 시기에 휴직을 하고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책 홍보 및 강연 등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지금 이 시간에 변기를 붙잡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 다듬고 꾸려온 삶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 생명을 품고 있는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어젯밤에도 잠들기 전 모든 것을 토했다. 끝내는 저 깊숙한 곳의 쓴 물이 올라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토한 물인지 모를 액체들이 뒤범벅이 되어 얼굴을 덮쳤다.  

눈물을 쏟아내며 수돗물로 입을 헹궈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수돗물이 그렇게 달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제 좀 내 인생 좀 찾자고 할 시기에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로 살라한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입덧의 고통 속을 거닐면서 나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삶의 겸허함을 느낀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몸서리쳐지는 이 고통 속에서 또 한 번 경험한다. 지금 당장 입덧은 재앙이지만 이 시간들을 통과해 예쁜 아이가 탄생하듯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의미 없는 고통은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의미가 있기에 난 오늘도 토할 것을 알지만 기꺼이 먹고 또 변기로 향할 준비를 한다. 또 하나의 귀한 생명체인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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