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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Aug 14. 2024

어쩌면 행복

10화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머리맡에 던져놓았던 스마트폰을 낚아채듯 가져와서 남편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슬쩍 보고는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혼자 있는 집이지만 이불을 다시 폭 뒤집어쓰고 겨우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기쁨을 표했다. 그리고는 기껏 뒤집어썼던 이불을 힘차게 걷어 차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들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활기가 생기는 걸 보니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애써 스치는 생각을 무시하고는 다시 기쁨을 만끽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을 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서 매일 먹던 익숙한 아침을 차려 먹고, 요즘 다시 보기 시작한 책도 꺼내 읽었다. 너무 일찍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지나는 듯했다. 결국에는 보던 책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내려놓고는 멍하니 탁자 위의 스마트폰만 바라보았다. "이 시간까지 안 일어나고 뭐 하는 거야?"라며 혼잣말로 투덜대봤지만 아직 아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애꿎은 시계 탓을 했다.


잠시 후 스마트폰 전화 소리가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가 울리는데 도통 손이 가질 않는다. 기쁜 마음과 달리 걱정과 우려가 몰려왔다. 몇 번 더 울리도록 놔둔 후에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엄마 잘 지냈어!"


두 아들 녀석이 앞다투어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는 통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다음 말을 잊지 못해 잠시 머뭇거렸다.


"엄마는 잘 지내. 찬이, 환이도 잘 지내고 있지?"

"응, 엄마! 아빠가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재밌는 곳도 데려다줘서 좋아!"

"우린 괜찮아 엄마. 근데 보고 싶어. 엄마 언제 볼 수 있어?"


한 살 더 먹은 첫째 놈이 제법 심장을 벌떡거리게 만들었다. 명치서부터 밀고 올라오는 묵직한 것이 내 목구멍을 막아 선 느낌이 들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이럴 때면 어김없이 눈물부터 광광 쏟아져 나온다.


"엄마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찬이랑 환이랑 같이 못 있어. 그래서 아빠가 보살펴주시는 거니까 아빠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도 좋아."

"정말이지? 난 매일 전화할 거야!"


매일 전화를 하겠다고 하는 두 아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따뜻해서 어린 두 아들에게 오히려 내 인생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직접 만나서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할 때쯤 남편이 전화를 바꿔 받았다.


"오랜만에 정신이 없지? 어떻게 지내?"

"응...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바쁘게 지내.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

"고맙긴. 아이들이 원하니까 한 거지. 나는 사실 조금 불편하네."

"그래. 불편하지. 미안해."

"자주 연락하긴 어려울 것 같고 가끔은 지금처럼 애들한테 목소리 들려줘. 조만간 큰 애한테 따로 전화를 줄 테니까 그때부터는 알아서 연락해도 될 거야."

"응, 알겠어. 나 약속이 있어서 전화 이만해야겠다."

"그래. 다음에 또 부탁할게."

"응. 끊을게."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도망 나온 나를 달가워할 리가 없지만 퉁명스러운 말투를 굳이 감추지 않는 그 사람이 얄궂게 느껴졌다. 어찌할 도리가 없이 내가 뿌려놓은 업보라고 생각하고 잊기 위해서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잠시라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도록 그대로 두었다. 그 여운이 사라져 갈 즈음 이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손에 잡히는 아무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종이 위에 빼곡히 감정이 넘실거렸다. 상담 선생님이 추천해 주었던 것은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지만 우연히 듣게 된 그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매일마다 내 감정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내 기분과 감정을 글로 남겨두는 일은 가끔 귀찮은 짐짝 취급을 받긴 했지만 대체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유체 이탈이 된 상태로 내 행동을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학생 때는 방학만 되면 일기 쓰는 것이 숙제였다. 그때는 방학숙제는 뒷전이고 매일 나가서 놀기 바빴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갈 즈음에나 한 달치 일기를 몰아서 쓰곤 했었다. 친구들과 꽈배기 사 먹은 얘기는 방학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일기조차 쓰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 다 하는 연애편지는 몇 번 써봤다. 내가 좋아했던 남자 애들은 내 편지를 엿 바꿔 먹은 건지 쓰레기통에 처박은 건지 몰라도 제대로 답장해주는 놈들이 없었다. 내 인생에 글 쓰기는 이 정도가 전부다.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연애편지 반응이 좋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건 홍매화 인생에 유례가 없는 행보인 거다.


어느 날은 문득 하늘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다 큰 성인이 되어도 어리광이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대충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지가 필요했다. 기왕이면 봉투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에 있는 펜시샵으로 가서 편지지 코너로 직행했다. 이쁜 편지지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빨간 꽃이 그려진 편지지가 눈에 띄었다. 내 이름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꽃이 빨간 매화꽃이라서 내 이름이 홍매화가 되었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그래서인지 그 편지지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편지지를 사서 다시는 울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그 산으로 향했다. 납골당에 모셔지긴 했어도 엄마, 아빠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편지를 써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 울긋불긋 해졌지만 산 정상은 이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엉덩이를 깔고 앉을 적당한 곳을 찾아 털썩 앉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아까 산 편지지와 펜을 꺼내 무릎 맡에 놓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 경치를 조금 더 감상했다. 다시 봐도 아름답고 포근했다.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펜이 자꾸만 머뭇거렸다. 엄마, 아빠에게 편지 쓰는 건 국민학교 시절 어버이날에 쓴 편지를 제외하곤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했다. 드디어 써야겠다 마음먹고 맨 윗줄에서부터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뭇거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편지지 세 장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펜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이런 걸 두고 일필휘지라고 하던가? 다 쓴 편지지를 보다가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편지지를 봉투 크기에 맞게 살포시 접어 넣었다. 보내고는 싶고 누구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러워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언젠가 느린 우체통이 있다는 얘길 들은 게 기억이 나서 부리나케 찾아보니 가장 가까운 곳은 서울에나 가야 했다. 얼마 후에 있을 정신상담 일정에 가봐야겠다 생각하곤 편지봉투를 가방에 밀어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 눈을 찡긋거리며 잘 있으라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산도 내게 잘 가라는 듯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대는 듯했다. 어느 소설책에서 산은 엄마와 같다고 해서 포근하게 품어준다고 했던 구절이 기억이 났다. 나에게는 이 산이 그랬다. 이 산이 엄마이고, 아빠다.





두어 달에 한 번 가는 정신의학과 상담은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얼핏 정말 정신이 나간 건가 하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정말 기분이 좋다. 내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상담 선생님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과 몸을 공기 속으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듯 웅크린 자세를 하고는 조심스레 선생님을 마주했었다. 그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선생님에게 혼나러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몇 번의 상담이 있었고, 선생님은 그때마다 따뜻하게 내 영혼을 보듬어 주었다. 엄마가 아직 살아 계셨다면 선생님과 같은 모습으로 날 반겨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은 한결같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줬다.


"어서 와요 매화씨. 어떻게 지냈어요? 표정이 좋아 보이네?"

"선생님, 사실은 제가 요즘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야~! 매화씨 너무 멋져요!"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글을 쓰니까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웃게 되네요. 아쉬운 날도 있지만 좋았던 날이 있다는 걸 글로 확인하게 되니까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머쓱해하면서도 미소 짓고 있는 내 표정을 유심히 관찰이라도 하듯 선생님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이들과 다시 연락하게 된 것과 운동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것 등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지루할 법도 한데 선생님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내 이야기에 일일이 맞장구를 쳐주며 내가 얘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도 비밀 한 가지 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산에서 편지 쓴 일은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느린 우체통에 집어넣은 편지가 다시 내게 도달한 후에는 얘기해야겠다는 깜찍한 계획을 세우고는 내심 뿌듯해했다. 선생님과는 다음을 기약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려고 애썼는데 내 마음이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후련하기도 하면서 막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했는데, 이제는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울 때는 유체이탈 기법(내가 붙인 이름이다)을 이용해서 나를 멀리서 관찰해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표정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 중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 중 어느 것이 더 자주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꽤나 신뢰도가 높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감정이 없는 표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몸을 움직이거나 깊이 고민할 때 표정이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땐 '유레카!'가 절로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더 이상 어둠을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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