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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Oct 23. 2022

어차피 올 가을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

결혼 방학 #15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면 내 생은 지금 여름의 끝자락 일까? 이미 가을의 시작 일까?


단풍을 보겠다고 혼자 설악산에 올랐다. 지난번 설악산에 왔을 때 한 2주 정도만 지나면 예쁘게 단풍이 들 것 같다는 사람들 말에, 가족 방문이 있던 지난 주말 단풍을 보러 갈까 했지만 사람이 많아 설악산 초입부터 주차를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산행을 포기했다. 지인들이 오기로 한 다음 주말도 마찬가지일 듯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평일에 혼자 단풍을 보러 설악산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의 추측과 달리 평일 오후에도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결국, 주차까지 4~50여분을 기다려서야 공원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잠시 그깟 단풍이 뭐라고 맛집 줄 서기도 거부하는 내가 이렇게 기다리나 싶어 그냥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유턴이 안 되는 길이었다.  


아직은 설익은 그래서 또 그대로 곱고 이쁜 단풍 산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올 가을을, 어디서든 보게 될 단풍을 나는 왜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 굳이 찾아왔을까? 수영장에 자자한 설악산 단풍 소문 때문일까? 빨리 즐기고 싶었나? 아니 그 보단 즐기지 못하고 지나칠까 우려했던 것 같다. 유난히 짧아서 봄, 여름, 갈 겨울이라 불렸다는 이번 가을을 속초에서 보내면서도 이 시기 설악의 가을을 즐기지 못할까 봐 적잖이 조바심을 났던 듯하다. 나에게는 그런 성향이 있다.


생을 통해 이만큼 경험을 쌓아보니 내 인생이나 자연 만물의 생이 다 비슷하지 싶다. 새싹 돋는 봄을 지나, 꽃 피는 여름을 맞고, 열매 맺고 화려하게 단풍 드는 가을을 넘어, 생기를 잃고 적적히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겨울을 맞는 자연의 많은 것들처럼 사람도 그런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100세 시대라니 아직 한창 여름이라 쳐 주어도 될 듯도 싶고, 마흔을 코 앞에 두고 보니 이제 정말 가을이지 싶기도 하고, 가끔은 어릴 적 예순 즈음이면 내 생이 끝나버릴 줄 알았던 그 어린 생각에 맞춰 이미 한창의 가을을 지나버린 건 아닐까도 싶다.


10년 가까이 꾸준히 중장년과 관련된 교육 일을 하면서 5~60대를 많이 만나다 보니 삶이 꼭 발효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리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초가 되어 못쓰게 되기도 하고, 정말 잘 발효가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매력적이고 가치가 높아지기도 하니 말이다. 보아하니 사람들의 가을은 자연만큼이나 다양하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기도 가을이오, 이쁘게 단풍 드는 시기도 가을이고, 덧없이 떨어져 밟히고, 그저 벌레 먹어 단풍은 들어보기도 전에 앙상한 가지만 남는 쓸쓸함도 가을에 있다. 그 개인의 차가 정말 큼을 느낀다. 나는 어떤 가을을 맞게 될까? 뒤돌아 보니 내가 꽃 폈던 여름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찬란함이 있었고, 소박한 아름다움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 그때의 그 열정, 설렘, 풋풋함, 재미 이런 감정들에 대한 기억이 내게 각인되어 그리운 거겠지.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던 어린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젊음에 대한 부러움이 내 삶에 찾아왔다. 물론 수영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내게 '아직 애기다, 아이고 나도 그런 몸매일 때가 있었다'며 부럽다 말씀하시지만 나도 나름 10대와 20대를 보며, 예전엔 하지 않았던 그저 젊음이 무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돌아갈 순 없는 것을. 여름이 그립다고 가을 중에 여름을 찾아 데려올 순 없는 법이니 내게 오는 이 계절을 나름의 멋으로, 행복으로 살아낼 방법을 찾는 수밖에.


나는 늘 치열하게 살며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사회에 기여하여 끝끝내 사람들의 인정 속에 사는 삶을 택한 엄마가 자랑스럽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는 이겨낸 엄마의 상처들을 나는 옆에서 보기만 했는데 이겨내지 못했던 건 아닌가 싶다. 30대 초중반에 이르러 엄마를 보며, 또 주변의 많은 워커 홀릭들을 보며, 나는 절대 일에, 업적 성취에, 사회적 기여에 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다 갈아 넣는 선택을 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일 자체를 내려놓은 것도 아니고 대충 해 본 적도 없다. 나는 일에서 발생하는 어쩌면 업무 역량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적이고 관계적인 대부분의 것들을 배제하고 사는 선택을 했나 싶다. 코 앞에선 삶이 전쟁터라고 하는 이도 있는데, 이런 마음가짐이다 보니 내 삶에는 전쟁이 없다. 치열함도 없고, 그 덕에 치졸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한 시기를 보내고 나니 내 삶은 딱히 이룬 것 없이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타인의 인정보다 자가동력에 기반하여 일을 하고 사는 나름 단단한 밸런스를 갖췄다. 그런데 별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건 괜찮은데, 혹여 권태로워질까 봐 두렵다. 권태 속에 가을은 누려보지 못하고 그냥 삶이 다 그런 거지 하며 후다닥 나의 가을을 지나가 버리려 할까 봐, 그러다 정신 차려보니 겨울에서 내가 단풍을 봤던가 하며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렵다. 이미 내 삶에 익숙함 함정에 빠질 것 같은 조짐이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어느덧 방학의 절반이 훌쩍 지났고, 나는 내가 왜 혼자 살아보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원한 것은 물리적 자유보다 심리적 자유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함께하는 삶에, 헌신에, 안전함에, 안정됨에 너무나 익숙에서 내가 그것들이 없는 삶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감사 없이 너무 당연시 여기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떻게 보면 생각만 바꾸고 태도만 바꾸면 될 것을 배움이 더뎌 굳이 속초에서 홀로,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아보고야 뭔가 깨닫는 바가 있나 보다. 


내가 바라는 늙음, 시들어감이 아니라 성숙, 부족함을 채움이라는 단어들로 시간은 보내는 사람이 되려면, 적당히 설레고, 따뜻하고, 함께여서 행복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을 살려면, 아직도 버려야 할 것들, 담아야 할 것들을 많은 듯 하다. 이 시기에 잘 고르고 골라 만끽할 수 있는 준비된 가을을 맞아봐야지. 


이 글을 설악산행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후기를 남기자면 설악의 단풍은 참으로 고왔다. 설악에 단풍나무 군락지가 꽤 있다는 사실을,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야 알았다. 퍽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단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인지 설악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단지 안에 하트 모양의 잎이 노랗게 단풍이 든 나무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매일 지나던 길인데 처음 본 듯 다가온 그 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수많은 설악의 단풍나무들을 제치고 그 나무를 마음에 들였다. 이 아이는 이제 내가 관심 가지고 매일 지켜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대중적 취향보다는 나만 알아보는 아름다움을 가진 것들 좋아하는 Minor 한 취향의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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