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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1. 2017

그 여行자의 집 (2)

2015년 겨울, 서른여섯 단아의 그 해. #2

2. 

쿵! 

「아악~」 

「기사 아저씨, 잠깐만요. 여기 사람!」

끼익.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얼른 안 올라와!」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누군가 내게 화를 내고 있는것 같아 나는 정신없이 입을 떼어 죄송하다고 반복하곤 봉에 부딪힌 머리를 부여잡고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출발하다 선 버스에선 그제야 뒷문이 닫히고 있었고, 기사 아저씨는 요즘 사람들은 조심성이 없다며 큰 소리로 욕을 섞어가며 투덜대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버스 뒷문을 두리번거리며 장난감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떨어진 건가? 그 아이가 주어갔을까? 옆자리 낯선 아주머니가 측은한 눈길을 건네며 괜찮냐고 묻는다. 은근슬쩍 기사 아저씨를 째려보며 저 기사 양반은 자신이 잘못해놓고, 엄한 사람한테 뭐라 한다고 위로 섞인 속삭임을 건넨다.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매번 급정차와 불안한 출발이 있는 버스였다. 나는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내리며 계단에 장난감을 떨어트리곤 주우려 손을 뻗고 있었고, 그걸 미처 보지 못한 엄마는 아이의 칭얼거림에 두리번거렸다. 그걸 본 내가 재빠르게 계단으로 다가가 장난감을 주어 아이에게 건네려던 찰나, 문도 닫히지 않은 버스가 급작스레 움직여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며 손잡이 봉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만약 앞으로 넘어졌다면 문 열린 버스에서 밖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생각해보니 이건 분명 나보다 기사가 잘못한 일인데 저 기사는 왜 내게 화를 내고,  나는 또 뭘 그렇게 죄송하다며 습관처럼 사과를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자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방금 옆의 아주머니에게  괜찮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괜찮지 않다. 주책없이 흐를 눈물이 무서워 집까지는 아직 세 정거장이나 남았지만 버스에서 내렸다. 집으로 걸어가며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정말 죽을 뻔했던 건 난데 그렇게 욕까지 처먹고. 그래서였나 보다 어젯밤 나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그 잘못을 고치는 환영에 시달렸다. 상황은 약간 달랐지만 환영 속의 그녀는 기사에게 문을 닫지 않고 그렇게 급출발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아느냐고 엄포를 놓고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버스 뒤편의 운전자 카드를 사진으로 찍어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평소에도 그 버스가 얼마나 위험하게 운전하기로 소문났는지를 말하며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녀는 내가 아니었구나. 맞다. 나는 그 환영에서 버스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사람이었다. 영웅적 행동을 한 그녀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었나 보다. 통화 끝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내 어제 일과 환영을 회상하고 있자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다시 또 서러움이 복받쳤다.


늦은 출근길, 박 부장이 나의 서러움에 부채질을 해댄다. 오랜만에 자신보다 늦은 나를 불러 세워 요즘 군기가 빠졌다며 닥달이다. 군기라..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것일까? 이 험한 세상에서 잡초처럼 무지막지하게 매번 짓밟히면서도 나는 왜,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일까? 엄마는 이 험한 삶 속에 나만 두고 대체 어디를 갔을까? 혹시 혼자 좋은 곳에, 더 나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돌아다닐 무렵이 되어서야 박 부장은 나를 놔주었다. 며칠째 지속된 수면 부족에 정신적 타격까지 입은 나는 오전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습관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전화를 걸고, 자동화 버전으로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점심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대통령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입방아를 찢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또한 흘려들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둔 채 하루를 보내고 창밖에 드리운 어둠을 인식할 때 쯤, 안식의 퇴근 시간이 찾아왔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가 나를 버리시진 않으셨음을 느낄 수 있는 안도의 금요일 퇴근 시간.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경화가 오는 날이다. 요즘 들어 더욱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열평짜리 작은 나의 원룸이 그나마 따뜻한 빛을 발하며 사람 사는 곳 같아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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