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어제 회사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중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뚝뚝한 편인 아들은 용돈이 떨어졌다거나, 먹고 싶은 게 있다거나 하지 않는 한 전화를 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평소에는 전화를 하지 않을 시간에 전화가 와서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살짝 걱정을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의외의 말,
"엄마, 닭볶음탕을 데워먹다가 장갑이 탔어요."
"많이 탔어?"
"아니오."
"수습은 잘했어?"
"네."
"그럼 됐지 뭐. 가스불 확인 잘하고."
"네."
이렇게 간단명료한 대화를 하고 통화를 마치니 옆에 함께 있던 직원이 본인이었으면 굉장히 화를 냈을 거라며 너무 짧은 대화에 놀랐다네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수습도 잘했다니 멀리 있는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이게 좀 특이한 반응인가 봅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대학생 시절 집에서 혼자 김치찌개를 데워먹다가 냄비받침을 태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들보다 더 둔감해서 고무재질의 냄비받침에 불이 붙은 지도 모르고 십자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냄비에 냄비받침이 붙어있는 걸 모르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더라고요. 타는 냄새를 맡고는 알아채 다행히 가스불은 껐는데 소화기를 찾았지만 저희 층에 소화기가 없더라고요. 불이 붙은 냄비받침을 어떻게 꺼야 할지 몰라 경비실에 연락을 하고는 불이 더 커질까 당황하기만 했습니다. 경비아저씨께서 소화기를 가지고 와 꺼주셨고 다행히 불은 냄비받침만 태우고는 진화되었습니다. 경비아저씨께 연락했을 때 저희 집 창문에서 불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돌아온 어머니께 사실을 고백하고 혼이 날줄 알았는데 저희 어머니께서도 담담하게 불이 더 크게 안 났으니 됐다며 조용히 넘어가주셨습니다. 물론, 소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물을 뿌렸으면 청소가 더 수월하겠다고 한마디 하셨지만요.
퇴근해서 집에 가니 수습이 잘 되어있진 않았습니다만, (불타버린 오븐 장갑과 그 잔해들이 그대로 싱크대 위에 있더라고요)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입니다.
제가 이렇게 담담한 것도 저희 부모님이 작은 일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배운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듭니다. 나중에 저희 아이들도 아이들을 키울 때 여유롭게 대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