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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의 사유하는 삶 Oct 30. 2022

선행이 선행을 낳듯

나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그날 서울에는

갑작스레 비가 왔다.


사실 갑자기 내린

소낙비는 아니었지만,


퇴근 시간에 내린 탓인지

우산이 없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는 날,

내가 우산이 있을 때면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 앞에서

우산이 없는 어머님, 할머님들을

집까지 바래다 드리곤 했다.




그날도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한 할머니께서

짐도 많은데 우산도 없으신 것 같아서


어디 가시냐, 방향이 같으니 같이 쓰고 가자며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나섰다.


1평도 안 되는

우산 하나 남짓한 공간.


그 순간만큼은

그 좁은 공간이 한없이 넓으며 따뜻하다.


그 안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안부가 좋으며

서로에게 건네는 걱정과 배려가 좋다.


사실 가는 방향도 달랐고

세 정거장 정도를 걸어갔지만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았다.




할머니는

인터넷을 잘 쓸 줄 몰라

항상 이렇게 세 정거장을 걸어 다니셨다고 했다.


아마 내가 오늘 함께하지 않았다면

한동안 그 먼 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셨겠지


가까운 지하철역도 알려드리고

댁에 모셔다 드린 후 나도 집에 가려는데


혹시 비가 오는 날

날 만날 수도 있고, 내가 우산이 없을 수도 있으니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두 개씩 챙겨 다니겠다고 하셨다.


어머니~

우리 이제 지하철역이 다르잖아요

어머니는 여기서 타고 내리셔야지!


라고 하니

그래도 혹시 모른다,

고마워서 그런 다시길래


어머님이 그게 마음이 편하시면

나 대신 우산 없는 다른 학생에게

우산을 빌려주면 좋겠다고 하고

나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선행은 선행을 낳는다.


나는 아직 이 말을 믿고 있고

이는 아마 내가 아직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렇게 우산을 씌워드렸던 이유는


사실 내가

우리 어머니 곁에 항상 있을 수는 없으니

멀리서라도 나의 이런 선행들이

또 다른 선행을 낳아


언젠가는 우리 어머니가 우산이 없을 때

누군가가 선뜻 우산을 씌워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선행을 베풀어본 사람과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고작 우산이라는 작은 배려가

얼마나 따뜻하고 깊이 있는지를 안다.


그 의미를 아는 순간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선뜻 선행을 베푼다고 생각한다.




이 크고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무엇인가를 바꾸기에는 어려운 존재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나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선행은 선행을 낳는다.


내가 이 세상에

정이 떨어지고 회의감이 들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신념을 믿고 방법을 찾아가겠지


언제까지나

내가 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길


내가 나눈 우산 반쪽이

하나가 되고 열 개가 되고

나중엔 이 세상을 가려줄 쉼터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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