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아가(1)

by 최희순

서울로 올라온 순자는 다시금 전처럼 전쟁터 같은 가난과 싸우며 잘 버텨내었다.

윤기도 아팠던 아내가 건강해져 다시 돌아오자 한결 마음이 편했다. 아기를 등에 업고 품팔이를 나가서 종일 밭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그래도 친정에서 도와준 덕에 잠시 입에 풀칠할 여력이 생겼다. 가난도 자꾸 이겨내 버릇하니 그럭저럭 살만했다. 이 급할 땐 아기를 업고 공사장에 시멘트 버무려 놓은 반죽도 날랐다. 힘에 부쳐서 다 놓고 싶을 때도 숱하게 많았지만 그렇게라도 생활을 해야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순자는 받아들이며 억척스워졌다.




딸아이를 낳은 지 열 달 무렵의 일이었다. 고열로 아기가 축 늘어졌다.

보건소도 데려가보고 별짓을 다하다 순자는 이러다 아이를 잃겠다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윤기에게 친정에 가서 요양 좀 해보고 오겠노라며 금례가 부쳐준 돈으로 쌀과 기차표를 샀다.

순자만 쳐다보며 사는 군식구들과 시어머니의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서야 마음 편히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친정에 다다르자 마을 어귀에서 서성이던 금례가 부리나케 달려온다.

"어서 오니라! 오느라 고생했지? 애기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포대기에 업혀있는 아기는 한눈에 봐도 기운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엄마, 아기가 열이 안 내려. 보건소 가서 약도 타먹였는데 그때뿐이고 밤 되면 또 열이 오르네. 나 어떡해."

"일단 집에 가서 좀 쉬고 읍내 의원에 한번 데려가보자. 저번에 저짝 사는 김씨네 손주도 열감기하느라 애먹던데 읍내 의원서 의사 슨상님 보고는 좀 나아졌드라. 아기 키우다 보면 열나는 건 부지기수여. 뭔 일이야 있것냐... 걱정 말어"

순자는 엄마의 말에 한시름 덜었다. 의지할 데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도 아기는 여지없이 열에 시달렸다. 열이 오르다 못해 경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기 몸이 뻣뻣하게 굳고 눈이 뒤집어지자 순자는 벌컥 문을 열어젖히며 금례를 불렀다.

"엄마! 엄마! 아기가 이상해! 엄마아!!!"

자다 말고 버선발로 뛰어나온 금례는 아기를 얼른 안아 올려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소리쳤다.

"문갑에 반짇고리 있어. 바늘 좀 가져오니라!"

"으흑... 응.. 흑흑" 순자는 얼른 바늘을 갖다주었다. 금례는 아기의 손발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었다.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순자는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엄마인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한차례 난리를 치르고 나자 아기는 진정이 됐는지 잠에 빠져들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토닥이던 순자를 금례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 서둘러 가봐야것다. 며칠째 열이 안 떨어지는 게 이상하구나."


아침 일찍 갑수의 경운기를 타고 순자는 읍내로 향했다.

"의원이라고 읍내에 저기 하나뿐이라 사람이 많을 것이다. 좀 서두르자"

갑수는 느려터진 경운기에 채찍이라도 있음 내려치고 싶었다.

아까 경운기에 아기를 안고 탈 때 보니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순자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분명 몇 달 전에 올라갈 때는 뽀얗게 살을 올려 보냈는데 몇 달 사이 또 얼굴이 휑해진 게 피죽도 못 먹고 산 사람인가 싶어 몹시 마음이 아팠다. 지새끼 키우면서 더 못 먹는가 싶으니 마음은 한껏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읍내 유일한 의원이라더니 사람들이 의자마다 가득 앉아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컴컴한 새벽에 나왔다고 하신다. 순자도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대기하다 꼬무룩 잠이 들었다.

흰 한복을 입으신 고운 할머니가 순자에게서 아기를 받아 꼭 안아주며 순자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누... 누구세요?"


순자는 제 차례가 되어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부름에 번뜩 눈을 떴다. 이상한 꿈이구나 싶었다. 칭얼대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의사 앞에 앉자 아이를 살펴보던 의사가 청진기를 빼며 말했다

"열감기가 맞긴 한데 이 정도로 오래가니 이상하군요. 일단 오늘도 열이 너무 심하면 미지근한 물을 적셔서 좀 닦아주고 해열제를 더 먹여보세요. 그래도 안되면 큰 병원에 가봐야 됩니다."


그날 저녁 순자는 또다시 오른 열 때문에 늘어지는 아이를 업고 건넛마을에 침을 잘 놓는다는 한의사 할배집에 갔다. 침을 맞히고 어느새 캄캄해진 논둑길을 걸어오는데 보름달이 훤했다.

가로등이 없어도 밤길이 잘 보일만큼 큼지막한 보름달을 보고 업힌 딸아이는 오랜만에 웃기도 하고 달을 손으로 가리키며 뭐라 뭐라 옹알이도 했다. 순자는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 동네 어귀에 다다를 때쯤 되어 생각해 보니 아기가 너무 조용한 게 이상했다.

'자나 보네...'

기분이 이상했다.

포대기를 살짝 돌려 아기를 보았다. 자는 거 같아서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주려는데 아기 머리가 툭 기운다. 순자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기에 얼굴에 손을 대보니 숨을 쉬지 않는다.

"어... 어... 아가... 어어엉... 내 아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흐흐흑... 엄마가 잘못했어... 아가야... 엉엉... 미안해..."

순자는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거둔 아이를 안고 울부짖었다.

젖이 부족해서 늘 배도 곯고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탓 같아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이 솟구쳤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통곡을 하며 울던 순자가 일어나 아기를 고쳐 업었다. 머리가 툭 떨어진다. 가슴이 저미어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순자는 다시 걸으며 아기를 받친 손으로 토닥였다.


".... 흐흑... 자...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흐윽... 우리 아가.. 흐흐흑

머... 멍멍개야 짖지 마라... 꼬꼬 닭아 우지 마라... 어어엉엉,..

우... 우리 아가 잘도... 잔다...."


달빛만 조용히 순자 모녀를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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