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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의 불빛, 고려의 군산

제3부 시간의 무늬가 새겨진 도시, 군산

by 규아

군산의 시간은 고려에 이르러 또 다른 무늬를 남겼다. 그 중심에는 임피가 있었다. 오늘날 한적한 들녘을 품고 있는 임피는, 당시에는 옥구와 회미, 만경까지 거느린 중심 고을이었다. 이곳에는 조운창, 곧 진성창이 세워졌다. 백성들이 바친 곡식이 모여드는 곳. 강과 바다를 따라 개경까지 이어지는 길목에서 군산은 이미 물류의 도시였다.

군산 내항 진포대첩 기념포구

그러나 풍요는 언제나 침탈의 표적이 되었다. 1380년, 왜구의 검은 돛배 수백 척이 바다를 뒤덮었을 때, 이곳은 피와 불길의 전장이 되었다. 하지만 군산의 바다는 침묵하지 않았다. 최무선 장군이 이끄는 고려 수군은 세계 최초로 화포를 쏘아 올렸고, 진포 앞바다는 불빛으로 타올랐다. 쇳불은 왜선을 불태우고, 두려움은 승리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바다를 지켜낸 불빛, 군산의 이름을 역사에 새긴 순간이었다.


군산의 바다는 교류의 길이기도 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는 군산도가 기록되어 있다. 사신을 맞이하던 망주봉, 바다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오룡묘, 불교 사찰과 관아들이 늘어서 있던 풍경. 그것은 군산이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국제 교역의 문이자 외교의 길목이었음을 보여준다.

군산의 해저유물(출처: 군산근대역사발물관)

오늘날 군산 앞바다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청자와 도자기 파편들, 그리고 개야도의 고분은 그때의 이야기를 증언한다. 하지만 발산리의 석등과 석탑처럼, 완주에서 옮겨져 군산에 남은 유물들은 근대의 침탈과 겹쳐 보인다. 찬란한 문화가 바람에 실려 오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약탈의 손에 흔들리기도 했다는 예고처럼 말이다.


군산의 고려는 번영과 교류, 그리고 상흔의 시간이 동시에 새겨진 시기였다. 진포의 불빛은 단지 전장의 불길이 아니라, 이 도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불빛은 곧 또 다른 어둠을 예고했다. 완주에서 옮겨와 군산에 놓인 석등처럼, 영광과 비극은 늘 이 도시의 얼굴에 함께 새겨졌다. 교역의 길은 번영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침탈의 발자취도 남겼다. 군산은 그렇게 빛과 그림자, 번성과 상흔이 교차하는 도시로 자라났다.


그리고 그 상흔은 조선과 근대를 거치며 더욱 짙어졌다. 문화재가 약탈되고, 도시가 수탈의 통로가 되던 시절. 고려의 불빛은 그렇게 근대의 상처로 이어졌다. 다음 화에서는, 조선의 무늬와 근대의 상흔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발산리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jpg 발산리 석등(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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