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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시간의 첫 무늬

제3부 시간의 무늬가 새겨진 도시, 군산

by 규아

군산의 땅은 사람보다 먼저 살아온 생명들의 발자국을 간직하고 있다. 공룡과 익룡이 남긴 발자국 화석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산북동 들녘. 1억 년 전 백악기, 이 땅 위를 거닐던 대형 수각류와 초식 공룡들의 발걸음이 280여 점의 화석으로 새겨져 있다. 길게 이어진 보행렬은 그들의 이동과 생활을 보여주는 시간의 기록이다. 지금도 그 흔적 앞에 서면, 거대한 생명들이 바람처럼 지나가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공룡발자국 발굴 당시(군산시)

공룡이 떠난 자리에 사람의 시간이 이어졌다. 바다와 맞닿은 군산은 패총, 곧 조개무덤으로 인간의 삶을 증언한다. 비응도, 오식도, 노래섬의 패총은 단순한 껍질 무더기가 아니다. 시대마다 달랐던 생활의 연대기다. 즐문토기와 무문토기, 돌화살촉과 어망추, 심지어 인골까지. 그 안에는 군산이 고대부터 해양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빼곡하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 무늬는 한층 복잡해진다. 고인돌과 돌널무덤, 독무덤이 이 땅 곳곳에 남아 있다. 오성산 기슭과 성산면 도암리에서 출토된 송국리형 집터는 기원전 5세기 사람들의 집터였고, 비응도 조개무지에서는 머리 없는 인골이 발견되었다. 전쟁과 희생의 시대가 이곳에도 스며 있었음을 말해준다. 군산의 시간은 풍요와 생존, 갈등과 공동체의 흔적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었다.

선유도 패총 유적지

그리고 마한. 군산은 작은 마을이 아니라 소국들의 땅이었다. 미룡동 고분군에서 드러난 흑색마연토기와 환두대도는 백제와 교류했던 흔적이며, 수송동 말 무덤과 수십 점의 철기는 이 땅이 이미 해양경제와 문물교류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한다. 바다와 강을 따라 들어온 철기와 토기들은, 군산이 단순한 변방이 아닌 서해의 거대한 네트워크 속 거점이었음을 말해준다.


삼국시대의 빛과 그림자도 군산에 새겨졌다. 조촌동과 산월리, 여방리에서 출토된 귀고리와 팔찌, 순금 화판 장식, 환두대도는 권력과 위세의 상징이었다. 소금과 해양 교역, 그리고 관방 유적들은 군산이 단순히 한 도시가 아니라, 전략의 길목이자 삶의 관문이었음을 드러낸다.

군산역사 안의 내흥동 유적 전시관

군산의 첫 무늬는 이렇게 자연의 발자취에서 사람의 삶으로 이어졌다. 공룡의 발자국에서 패총, 고인돌과 철기, 그리고 금빛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겹겹이 쌓이며 이 도시의 얼굴에 깊이 새겨졌다.


저녁 햇살에 빛나는 바다처럼, 군산의 시간은 오늘도 잔물결을 일으키며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이야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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