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 경 Jan 27. 2021

못난이 중 최고 못난이

사물이 있던 자리④ 못난이 삼 형제 인형

“어이구, 이 못난아.”

못난이가 붙은 내 이마는 확 구겨졌다. 윗입술은 콧구멍에 달라붙고 코는 코대로 납작 짜부라졌다. 아빠는 일그러지는 내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이렇게 불렀다.

“못난이 중에서도 젤 못난이, 가운데 애.”


안 그래도 못생긴 게 얼굴까지 찌그러진 걸 보고 엄마도 깔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때마다 나는 텔레비전 위에 태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못난이 삼 형제 인형을 째려봤다. 울보, 웃보, 심술보, 못생기기도 지지리도 못생긴 못난이들. 그중에서 제일 못난 심술보가 한가운데 떡하니 앉아있었다.


못난이 삼 형제는 고작 내 주먹만 한 인형이었지만 거창한 출생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수출시대의 시대적 소명을 안고 태어났던 것이다. 못난이 삼 형제를 제작한 ‘킹 완구’는 구로 수출 공단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엔 보기 드문 한일합작 회사로, 미국 디즈니 캐릭터 인형들을 제작해 남미와 유럽 등에 수출했다. 나중엔 독자적으로 만든 캐릭터 인형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1972년 탄생한 못난이 삼 형제 인형이다. 못난이 삼 형제 인형은 미국에도 수출돼 큰 인기를 끌었다.


나라 전체가 수출 드라이브로 질주하던 시절 킹 완구의 직원들은 월 9천 원의 월급을 받으며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거의 매일 밤샘 작업을 했다.  


구릿빛 피부에 바가지 머리, 통통한 발바닥을 서로 딱 붙이고 앉아있는 못난이 삼 형제가 우리 삼 남매와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남동생은 바가지 머리를 했지만 언니와 나는 머리를 허리까지 길렀다. 피부도 셋 다 흰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그 금발이라니. 셋이라는 숫자를 빼면 대체 어디가 닮았다는 건지.


게다가 못난이 삼 형제는 레이스에 리본까지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실은 형제가 아니라 자매였으니, 성별마저 달랐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갖다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그중 제일 못난이를 나한테 갖다 대는 건 정말이지 억울했다.

 

우리는 삼 남매는 생김새가 모두 달랐다. 큰 눈에 하얀 얼굴, 빨간 입술까지, 언니는 누가 봐도 인형처럼 깜찍한 아이였다. 남동생은 이마가 톡 볼가진 데다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눈은 작고 입술은 두툼하며 성격은 까칠했다.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한마디로, 운이 나빴다.


우리가 자란 서울 왕십리 집엔 방이 세 개 있었다. 안방은 엄마 아빠가, 건넌방은 할머니가, 문간방은 세를 줬다. 우리 삼 남매는 안방과 건넌방에서 적당히 나눠 자야 했다. 남동생은 엄마 아빠 사이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누웠고 언니는 할머니가 끼고 잤다.


나는 매일 밤 쫓겨나는 처지였다. 언니를 따라 할머니 방에 가서 누우면 안방으로 가라며 언니가 발로 옆구리를 밀었다. 발길질까지 당한 터라 순순히 물러나긴 싫었다. 나는 구석에서 몸을 잔뜩 구부리고 버텼다. 마침내 엄마가 나타나 내 손을 잡고 반 강제적으로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기 전까지. 잔뜩 찌푸린 내 얼굴을 보고 아빠는 또 말했다.


 "어이구, 못난이 심술보 또 왔구나."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억지로 삭히며 잠을 청했다. 텔레비전 위 못난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놈은 울고, 한 놈은 비웃고, 또 한 놈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동생의 국민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리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갔다. 그 집엔 어엿한 우리 방이 있었다. 언니와 내가 방 하나를 차지한 것이다. 나는 밤마다 못난이가 되지 않아도 됐다. 새 집에서도 못난이 인형은 어엿한 자세로 텔레비전 상자 위에 자리를 잡았다.


집에 불이 난 건 이사 간 지 3일 째 밤이었다. 엄마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아직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후둑 후둑 소리에 거실로 나가봤더니 천장에 붉은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마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잠 든 세 아이를 일으켜 밖으로 뛰쳐나왔다. 할머니는 반쯤 얼이 빠진 채로 마당에 나와 있었다. 난 그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내가 충격받은 건 집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붉은빛이 일렁이는 마당 한가운데 홑겹으로 떠다니는 유령처럼 서있는 할머니였다.


그 와중에 엄마는 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분명히 깨웠는데 마당에 없었다. 엄마는 미친 듯이 불타는 집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나는 할머니가 무서워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언니는 안방 텔레비전 바로 앞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엄마가 깨웠을 때 마루에 불이 번쩍하는 걸 보곤 꿈인 줄만 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엄마가 이불 째 언니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때 못난이 삼 형제가 이불자락에 스쳐 앞으로 고꾸라지는 걸 나는 봤다.  못난이들은 언제나처럼 울면서, 웃으면서, 분통을 터뜨리면서 추락했다.


우리는 대문을 향해 뛰었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얼굴엔 시커먼 검댕이 묻은 채로 눈물 콧물 흘리며 맨발로 뛰쳐나갔다. 못난이 삼 형제가 못난이 엄마와 못난이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골목을 내달렸다.


다음 날 집터에 가봤다. 탄 냄새가 진동 했다. 묘하게 달착지근하면서 매캐했다. 안방 텔레비전 아래는 울보와 웃보, 심술보가 한데 엉켜 하나의 덩어리로 남아있었다.

이전 11화 양철통 속 고양이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사물이 있던 자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