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경 Jan 21. 2021

양철통 속 고양이

사물이 있던 자리③ 오르간

내가 처음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은 것은 중학교 막 입학했을 무렵 영등포에 있는 교회에 갔을 때였다. 예배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친구는 주일이면 어머니와 그 교회에 갔다.


쭈뼛쭈뼛 자리 잡고 앉아 예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난 혼자였다. 친구는 잠시  여기 있으라 하고 한참을 나타나지 않았다. 낯선 장소라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하나같이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앉아있었지만 표정에서 새어 나오는 속삭임이 느껴졌다. 지나친 고요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에서부터 불어와 비로소 도착한 것 같은, 희미하게 와서 웅장한 원을 그리고 다시 희미하게 사라지는 소리였다. 앉아 있는 사람 모두 단상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폭이 2미터쯤, 길이는 2층 높이까지 다다른 은색 파이프가 촘촘히 뻗어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오르가니스트는 3단 건반 위아래로 양팔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연주했다. 발밑에도 건반이 있어 온몸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복잡한 안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드럽게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예배당 둥근 천장에 부딪혀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귀와 입, 눈과 코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파고 들어와 몸뚱이를 떨게 하는 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십자가 앞이 아니라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무릎을 꿇고 내 죄를 고백하고 싶었다.

그건 내가 알던 풍금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살 때였다. 음악 시간이면 남자 애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 풍금을 교실로 옮겨와야 했다. 음악실이 따로 없어 전교생이 풍금 몇 대를 돌아가며 쓰는 거였다. 선생님이 직접 풍금을 치기도 했지만 대개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 악기 레슨이 흔치 않던 때라 건반 연주를 할 줄 아는 아이는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존재였다.


우리 반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음악 시간 내내 그 애는 가느다란 발목을 움직여 풍금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콧노래 같은 바람 소리가 풍금에서 퍼져 나왔다. 때론 가슴뼈 부근에서 잉잉 바람이 맴도는 소리를 냈다. 그 애가 풍금을 치면 선생님이 손바닥으로 교탁을 탁탁 치고 우리는 노래를 시작해야 했다.


모두 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동안 풍금 앞에 앉은 아이만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새까만 윤이 나는 짧은 단발을 한 여자애, 명노였다.


나는 명노를 볼 때마다 고양이를 떠올렸다.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노 부모님은 우리 동네에서 공구상을 다. 가게 입구에는 쇠로 된 공구와 길고 가느다란 파이프, 둘둘 말린 은색 철사들이 가시 숲처럼 얽혀있었다. 그 날카로운 것들이 꼭 고양이 발톱 같았다.


명노는 늘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어느 무리와도 섞이지 않고 한 발 떨어져 관찰하는 쪽이라 명노와는 제대로 말 섞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날 어쩌다 그 애 집에 놀러 가게 됐을까.


그날은 선생님이 내 일기를 반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신 날이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칭찬이 길게 이어졌던 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내겐 치욕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써 내려갔던 일기가 만천하에 또박또박 읽히는 동안 나는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그 시간을 견뎠다.


 “난 글 잘 쓰는 아이가 부럽더라.”

하교 길에 내 손을 잡은 아이는 명노였다. 명노는 무리 속에 날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얼결에 그 애 집까지 휩쓸려가게 됐다. 명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눈부신 하얀 건반과 윤이 나는 검은 건반. 명노의 열 손가락은 발레리나처럼 그 위를 사뿐사뿐 뛰어다녔다. 건반으로 줄을 쳐서 연주하는 피아노는 풍금과는 달리 명랑하고 깨끗한 소리를 냈다.


한 곡을 다 치더니 선뜻 다른 아이들에게 피아노 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왠지 나에게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칠 줄 모른다는 이유였다. 맞는 얘기였다. 나는 피아노 레슨을 받아본 적 없었다. 하지만 레슨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는 그곳에 나 말고도 더 있었다. 그 계집애는 선생님께 칭찬받은 나를 일부러 집까지 데리고 가 모욕을 준 것이 분명했다.


화재가 난 후 우리 집 형편은 빠르게 기울었다. 아빠는 불도저를 팔아 불탄 자리에 새 집을 지었다.  집을 짓는 동안 우리는 이웃에 세 들어 살았다.  할머니는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가시고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식기 통의 숟가락 젓가락처럼 붙어 잤다.

 

불타는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에 우리 삼 남매는 한동안 추리링 한 벌로 버텨야 했다.  언니는 연두색, 나는 붉은 벽돌색,  동생은 남색이었다. 나란히 걷는 게 싫었지만 동생은 내가 데리고 학교에 가야 했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명노 눈에 비친 나는 칭찬이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겠지.


집 앞까지 왔을 때 쓰레기통 위로 달아나는 고양이가 보였다. 나는 으로 뛰어 들어가 선반에 있던 꽁치 통조림을 꺼내왔다. 꽁치 토막을 쓰레기통 안에 넣어 놓고 먼발치에서 기다렸다.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검은 통 안으로 펄쩍 뛰어들길 기다려 날쌔게 뚜껑을 닫았다.


고양이가 양철 뚜껑을 치받으며 펄쩍펄쩍 뛰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났다. 발톱으로 긁는 소리도 났다. 뚜껑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놨기 때문에 고양이는 밤새 울 것이다.

저 고양이는 도둑고양이야. 도둑고양이는 나쁜 짓을 하니까. 도둑고양이니까 괜찮아.

죄의식과 잔인한 쾌감이 엇갈려 지났다.

어차피 아침이면 누군가 쓰레기통을 열 것이고, 고양이는 달아날 것이다.


새벽녘이 서야 소리가 끊겼다.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가 거슬리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새된 목소리로 고양이를 쫒는 소리가 들렸다. 찢어지는 비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쓰레기통을 열어보지 않았다. 새까만 고양이가 눈을 뜬 채로 그 안에 널브러져 있을 것만 같았다. 입가에는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 있을지도 몰랐다.


영등포 예배당엔 그 후론 가지 않았다. 오르간 소리도 들을 기회가 없었다. 날 기다리게 했던 친구와도 뜸해졌다. 그러다 나이 들어 전화 통화가 됐다. 이제 주일마다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이유는 묻지 않았다. 열어 보지 않은 양철뚜껑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만한 나이였다. 그 친구도, 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