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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에너지 옥랑 Oct 19. 2022

내 이름의 비밀

 백일 때까지 나는 이름 없는 아기였다. 내가 태어나고 어떤 이름이 좋을지 부모님이 고심하고 계셨을 때, 할아버지께서 이름을 직접 지어주겠다고 기다리라고 하셨단다. 아기 이름이 금방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100일이 지난 후에야 종이에 적어 가져오셨다.

그렇게 100일 만에 갖게 된 내 이름.


전. 옥. 랑

(구슬) 옥 (물 흐를)랑

‘물에 구슬이 흘러간다’


유년 시절, 나는 내 이름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옥랑이라는 이름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이종사촌  이름’ 지윤’ , 고종사촌 이름’안나’ 등 친척들 이름은 다 세련되고 예쁜데 내 이름은 촌스러운 것 같아서 불만이 많았다.장난기 많은 남자아이들은 내 이름으로 장난을 치고 ’옥수수’등으로 부르며  많이도 놀렸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철이 들기 시작했을 때쯤부터였을까?내 이름이 독특하다, 특이하다 그리고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 반응 덕분에 내 이름을 의식적으로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는데 애정을 주니 돌 속에서 빛나는 원석을 찾은 느낌이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어디서도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은 내 이름을 쉽사리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이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쌓아갔다.




귀촌 직후, 면 단위로 열리는 마을운동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가 없던 때라 행사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현남면에 포함된 리 단위 마을들이 모여 함께 운동회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고 하는 즐거운 축제였다. 축제의 꽃은 경품행사였는데 추첨만 자그마치 1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쌀, 세제, 휴지 등 작은 경품에서 시작해서 세탁기, 냉장고등 큰 경품도 많았다.

‘아.. 세탁기 당첨되면 좋겠다.. 뭐 하나라도 당첨돼라~~!’

운동회 시작 전에 사는 마을과 이름을 적어서 경품 추첨 함에 넣었다.


행사가 마쳐질 무렵 드디어 경품 추첨시간이 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언제쯤 불리우나 숨죽이고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어떤 이는 기쁨의 함성을, 어떤 이는 아쉬움의 탄식을, 어떤 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작은 경품 하나에도 모든 사람들이 설레는 시간, 나도 내 이름은 언제쯤이나 불릴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경품행사가 중간 정도 진행됐을 때였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렀다.

“00리 박옥랑”

‘아이고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네?’라고 생각하며 경품 받으러 나오시는 분을 보니 8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님이셨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00리 김옥랑”

“00리 최옥랑”

모두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할머님들이었다. 아니 무슨 ‘옥랑이’가 이렇게 많지. 온 세상 ‘옥랑이’는 여기 다 모였나.  시간이 지나고 경품행사의 끝이 보일 때 즈음 내 이름이 호명됐다.

“북분리 전옥랑”


아무리 옥랑이가 많다 해도 ‘북분리 전옥랑’은 나뿐이 없을 거라 확신하며 앞으로 나가는데, 옆에서 70대 정도 되는 할머님이 동시에 나오셨다.

“어? 전옥랑이세요? 저도 전옥랑인데..”

응모권을 확인해보니  북분리 전옥랑이라고 쓰여있는 필체가 내 필체가 아니었다. 같은 마을에 성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할머님이 계셨다니!!

살면서 서울에서는 단 한 번도 같은 이름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이날 하루에만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을 4명이나 만난 것이다.

그렇다. 내 이름은 강원도 할머님들의 이름인 것이다. 


언젠가 신문의 부고란에서 봤던 옥랑이라는 이름, 어느 여류시인의 이름이 옥랑이었던 것, 아!그렇구나. ‘옥랑’이라는 이름은 몇십 년 전 시골에서 유행했던 아주 흔한 이름이었던 거구나.

살짝 충격에 휩싸였다. 할아버지가 고심해서 지었을, 애정이 담겼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이렇게나 흔한 이름이었다니. 사실, 충격에 휩싸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 아빠는 유복자셨다. 할머니가 아빠를 임신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새아빠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고 자라셨다고 한다. 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는 말하자면, 친할아버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가 내 이름에 애정을 가지고 지어주셨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시골, 면 단위에서 같은 이름의 할머님을 세 분 만나고 나니 내 이름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피도 안 섞인 손녀의 이름, 애정을 가지고 지어준 이름도 아닐 텐데 당시 가장 많았던 이름으로 막 지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100일 동안 이름을 안 지어주셨던 것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첫사랑의 이름이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이즈음 주변 지인들이 개명을 하기 시작했고, 내 이름이 성명학적으로 그렇게 좋은 이름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할머님들을 안 만났다면 개명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텐데.

이름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면 개명 따위 생각을 안 했을 텐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예쁜 이름이라며 위안했을 텐데.


‘지어준 사람의 마음가짐이  뭐가 중요해! 내가 내 이름을 좋아하고 애정해 주면 되지.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데  설마 이름 때문에 뭐가 잘되고 안되고 하겠어?’

라며 생각하지만 내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종종 내 이름과 개명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개명하려는 생각이 점점 많아질 무렵에 친구가 말했다.

“야! 흔한 이름으로 개명 할바엔 옥랑이가 훨씬 나아. 바꾸지 마.”

친한 동생들도 말한다.

“언니, 이름 너무 예뻐요~~”

“80,90대 할머니들 이름인데?”

“이제 그분들 다 돌아가시면 그 이름 언니뿐이 없어요. 독보적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이름을 바꾸고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옥랑’이로 존재하는 오늘만큼은 애정을 담아 따스하게 내 이름을 불러본다.

‘옥랑아~네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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