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나이는 쉰 하나.
반백 년을 살아낸 세월 덕분인지, 악몽 뒤에 따라오는 더러움도,
가슴이 조여 오는 그 숨 막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빨리 가라앉는다.
이젠 그저, 다른 날보다 조금 무거운 아침일 뿐이다.
텁텁한 입 안을 느끼며 냉동실 문을 열고 각얼음을 꺼낸다.
얼음을 채운 유리잔에 커피를 붓고 찬물을 더하자, 시원한 냉기가 잔 위로 번진다.
한 모금, 혀끝에 맴돌던 묵직한 기분이 내려앉는다.
눈을 감고 두 번째 모금을 넘기면 아까까지 남아 있던 꿈의 잔상도 물처럼 흘러간다.
아들의 “굿모닝”이라는 말 한마디, 뺨에 콕 닿는 입맞춤은 이 모든 흐릿함을 지워준다.
이건 나에게만 주어진 아침의 선물이다.
눈물 자국 남은 베개를 털고 설거지를 하고,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 바람을 들인다.
햇살이 먼지를 밀어내고, 식탁 위를 쓰다듬고, 바닥을 환하게 비춘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나도 출근 준비를 한다.
남편의 계절 타던 사업은 계절과 상관없이 바빠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한 지 8년이 됐다.
그동안 혼자 꾸려오던 일이 요즘엔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
직원도 생겼다. 과장님은 처음엔 잠깐 도와주던 분이었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처럼 느껴진다.
남편은 유명 브랜드 제품을 위탁받아 판매한다.
눈치 보여도 감지덕지인 일이다.
을의 입장인 건 여전하지만, 드르륵 출력기를 타고 나오는 송장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손도 빨라진다.
나는 남편 회사에서 잡무를 돕는다. 검품하고, 포장하고, 송장을 붙인다.
밤늦게까지 손과 발이 저려도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면 힘이 난다.
이번 달엔 대출을 조금 더 갚을 수 있겠지. 그 생각만으로도 허리가 펴진다.
고3과 중1, 두 아들 학원비에 대출 이자를 갚으려면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좁디좁은 25평 복도식 아파트는 한 개뿐인 화장실로 아침마다 전쟁터가 된다.
20년 전, 큰아이를 안고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땐 이 정도면 내게 궁전이었다.
하지만 이젠 둘째가 거실에서 자고, 작은방은 창고가 되었다.
큰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 화장실 두 개 있는 30평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둘째 방엔 침대도 놓고, 책상도 놓고 싶다.
거실엔 네 식구가 다 함께 앉을 수 있는 4인용 소파 하나. 그게 내 오래된 소망이다.
출력기 소리가 오늘도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든지 야근할 수 있다.
손이 저려도, 허리가 아파도 괜찮다.
매일같이 쉬지 않고 일하는 남편에 비하면 내 노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 식사만 챙기고, 저녁에 다시 출근하는 날이 많아진다.
그래도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넌 뭐가 그리 바쁘냐.”
엄마의 전화 첫마디는 몇 년째 똑같다.
“바쁘다더니 왜 돈은 못 버냐.”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부족한 딸이다.
내 삶은 엄마의 기대에서 언제나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