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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Oct 20. 2024

설경

4


 창문 밖으로 언덕길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쓰는 소리가 들린다.

 -사악사악

 나는 어기적거리며 눈을 비빈다. 자기 전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기에 방 안이 쌀쌀해 움츠리고 팔을 비빈다.

 "어우, 추워 춥다."

 방 안에는 미처 다 빠지지 못한 담배 냄새가 난다. 담배를 피우면 필수록 방 벽지도 같이 뻑뻑 펴대는 기분이다. 창문을 좀 더 크게 열어 찬 공기로 환기를 시킨다. 그 차가움이 폐를 찌르는 느낌이 나는 좋다. 닭살이 우수수 돋지만 만성 비염인 나에겐 그 시원함만이 내가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창 밖을 보니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반짝이는 눈이 쌓여있다. 조그마한 방에 앉아 창문 밖에 하늘은 나뭇가지로 실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으니 이것도 살짝은 답답하지만 충분히 멋들어진 풍경이다. 가끔은 쉬러 오는 제비의 휘적거리는 꼬리를 구경할 수도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어제 써 올린 글이 있다. 밤에 생각나는 풍경을 다 써내라고 업로드를 한 다음 바로 컴퓨터도 끄지 않고 바로 잤기에 하얀 화면에 글자들만 주르륵 쓰여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제 썼던 나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무언가 내가 썼던 글을 다시 본다는 것은 마치 사진으로 찍힌 나를 돌아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시오!

 글쎄요. 저는 딱히 제 모습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어영부영일지라도.

 천천히 읽어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에세이일까 아니면 소설일까. 없는 감정을 써 내린 것이면 소설일까. 아니면 어제의 회상이 정말 진실된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이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찬 공기로 뇌를 싹싹 씻기는 지금은 뭔가 글이 이상한 기분이다. 살짝 어렸을 때 본 시와 점심이라는 드라마를 생각하며 오마쥬 하여 쓴 것인데 잘 된 걸까. 나는 내가 만든 제육볶음이 괜찮은지 둘러보는 사람처럼 한 번 찔러도 보고, 또 한 입 먹어 간을 보는 것처럼 천천히 검토한다. 에세이를 처음 쓰는 일이기도 하기에 무언가 에세이란 나의 자화상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 과연 지금의 자화상은 제대로 그려졌을까. 뭔가 반 고흐의 자화상처럼 귀가 뚝 잘려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한다. 반 고흐는 감정의 폭발로 자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지 몰라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귀가 없으면 안 되니까. 

-오오 자신을 사랑하시오!

글쎄요. 저는 딱히 제 자신을 그리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머릿속에서 자꾸 울리는 이상한 외침이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담배를 핀 것이지, 뭔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아닌가 ADHD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래도 어제 떠올렸던 그때의 저녁 식사를 다시 한번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본다. 정말 좋다고 생각했기에 내 에세이도 그런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업로드한 글과 대조해 본다. 

 '비슷한 것 같긴 한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한 곳에만 집중하게 되고 점점 등과 허리가 굽어 더욱더 좁은 곳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틈틈이 허리를 쭉 펴주어 전체적인 구도와 구성 그리고 밀도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앞뒤로 흔들흔들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앞뒤로 흔들흔들해본다. 그렇다고 글의 전체적인 구성을 한눈에 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덜 부끄럽다.

 '누가 뒤에서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버릇을 잘못 들인 걸까. 살짝 찌그러진 하얀 담뱃갑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연기가 창 밖으로 나가 하늘로 사라진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다시 반짝인다. 나는 멍하니 하늘로 사라져 가는 연기를 쳐다본다.


 예전에 그림을 그릴 때는 무척이나 질투심이 강했다. 가끔은 나 말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들 내 그림만 볼 것이기에.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림을 다 그리는 사람들이 없어진다 해도 내 그림이 좋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 알 수 없는 고립감이 나를 살짝 좀 먹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미술 학원 강사가 평가를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다 불쌍한 존재야. 가만히 보면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다 인정받으려고 하는 거니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모르던, 숨긴 마음이 바로 들킨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대학교도 군대도 회사도 다녀봤을 때, 지나쳤던 모든 사람들이 내 고등학교 미술 입시 시절, 4시간 동안 그린 그림을 평가받기 위해 옹기종기 앉아 있던 나와 내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거짓말쟁이일지도. 그리고 당신과 나 둘 중 하나겠지.


-사악사악


 눈을 치우는 빗자루질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훅 떠오른 상념을 다시 접어두고 모니터를 본다. 점멸하는 커서, 그리고 하얀 바탕에 한 글자씩 박혀 있는 내 글이 보인다. 조그마한 페이지에서 보이는 것은 나의 모습입니다. 사실 무엇인가 토 해내고 싶은 느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의 글은 전체적으로 이런 감정으로 쓰여 있다. 

 점멸하는 커서. 

 깜빡거리면서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그 길쭉한 모습이 마치 내 눈앞에 사라졌다 나타나는 사람 같다. 누군가도 내 기억과 내 추억 속에서 이렇게 점멸하고 있다. 나 또한 다시 누군가에 이렇게 점멸하는 커서일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은 도대체 뭐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당신은 읽었고 나는 그때 그 저녁의 설경을 최대한 눈코입을 제대로 달아 그린 다음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인정받고 싶은 애정결핍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질까. 이 것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조회수로 채워지는 것일까. 

 답답함에 나는 책상에 있는 담뱃갑을 다시 찾는다. 인터넷에서 담배가 자신의 한숨이 보이기 때문에 핀다는 허세를 본 적이 있다. 틀렸다. 나는 비염 때문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피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희미한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코로 그 구린 연기를 푹푹 뿜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콜록콜록. 이런 또다시 벽지가 더 누레지겠지.

 

 '수정을 해야 할까. 뭔가 방향성이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배가 고프다. 머리를 벅벅 긁고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냄새 가득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그리고 재빨리 방문을 닫는다. 흡연실은 한 곳으로도 충분하니까. 담배는 피지만 담배 연기는 너무나도 싫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까만 비닐봉지가 많다. 본가에서 보낸 음식들인가 싶어 만지작거리면 차갑고 딱딱한 닭뼈들이 있다. 아 맞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냉장고에 뼈를 넣어놨지. 누가 볼세라 부끄러워 물만 꺼내고 닫는다. 혼자 사는 이 집에서도 숨길게 많으니, 과연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냉장고에 오래 있어 너무나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생생히 느껴진다. 벌컥벌컥 500ml의 물을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입이 아파 크흐 소리를 낸다. 물통을 버리려 쓰레기 통을 열어보니 이미 꽉 차있기에 냉장고 옆 싱크대 위에 그냥 올려놓는다. 

 오늘은 청소를 해야겠다. 화장실로 간 다음 간단히 물로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닦는다. 수건에서 약간의 냄새가 난다.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다. 수건과 빈 선반을 보고 다 쓴 물건들을 한 움큼 집어 싱크대 위에 있는 물통 옆에 내려놓는다. 수건은 작은 방에 있는 세탁기에 넣는다. 세탁기 안 쪽을 보니 이미 옷들이 가득 차 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지. 어제의 나와 지금 오늘 아침의 나의 괴리감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는 방 밖으로 나가질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은 하지만, 부지런히 사는 것도 어쩌면 정말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고 빨래를 돌린다. 1시간 40분이 걸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쓰레기봉투에 방 곳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넣는다. 책상에 눈처럼 뿌려진 검은 담뱃재도 물티슈를 슥슥 꺼내 닦는다. 담배 냄새를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페브리즈도 뿌려본다. 그리고 책상 한편에 쌓인 담뱃갑도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아 이제 담배가 다 떨어졌구나. 방금 전까지 키보드 옆에 있던 담뱃갑을 치우며 생각했다. 쓰레기 버리는 김에 나가서 사 와야겠다. 


-사악사악


 아직도 빗자루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분은 때아닌 제설작전을 하고 있구나. 나도 나가서 도와야 하나.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바지를 집어 툭툭 먼지를 턴다. 그리고 세탁기에 넣기 위해 주머니를 뒤져보니 마침 딱 한 대 남은 담뱃갑이 나온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사람은 청소를 해야 해.


 쓰레기봉투를 묶고 슬리퍼를 신고 문 밖으로 나오니, 찬 기운이 발가락 사이까지 스며든다. 

우수수 돋는 소름에 몸을 한 번 떨고 얼른 내려간다. 아참 내가 지갑을 가져왔던가?


 밖을 보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나와 쓰레기장에 봉투를 두고 라이터와 하나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연기가 다시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찬 바람에 콧물이 나온다. 어제만 해도 오지 않았었는데 밤사이 내려 벌써 꽤 쌓였다. 그때 빗자루질 소리가 들린다. 귀도리에 목도리까지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초록색 빗자루로 사악사악 눈을 쓸며 골목 사이를 오고 간다. 위대한 사람이다. 눈이 끊임없이 오는 와중에도 눈을 쓰는 사람.

 

 나는 위대한 사람을 뒤로하고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벌써 골목 사이로 차들이 많이 다녀서일까, 차바퀴 자국을 따라 아스팔트가 보이고 녹아버린 검은 눈들이 마치 철길처럼 골목 끝까지 쭉 뻗어있다. 마치 내 글 같았다. 하얀 바탕의 검은 자국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두 대가 아닌 여러 대가 새긴 자국들이 보인다. 

 나는 코를 훌쩍거렸다. 저 구정물들이 내 글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퍽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슬리퍼여서 추위에 발갛게 부은 발가락들을 꼼지락 거린다. 

 담배는 거의 다 타들어 갔다. 아 어쩌겠나. 나는 이제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 젖을 각오를 하고 구정물 사이로 한 발을 내딛는다. 철퍽하고 흙탕물이 슬리퍼 사이로 들어온다. 내가 바보지 왜, 이 겨울에 슬리퍼를 신었을까. 하지만 까치발을 하고 최대한 물구덩이를 피해 하얀 눈 밭으로 걷는다. 뽀드득하는 소리가 좋다. 나는 벌써 꽁꽁 얼어 아무 감각이 없는 발로 푹푹 하얀 눈을 밟는다. 뒤를 돌아보니 마치 내 발자국이 새가 깡충거리며 새긴 발자국 같았다. 눈이 느리지만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조금 더 발에 힘을 주고 자국을 새긴다. 아 담배를 사고 온 다음엔 다시 한 대 피고,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고, 청소기도 해야겠다. 코가 벌써 마비된 느낌이다. 

 글도 다시 한번 다듬고 다음 글을 써내려 보도록 하자.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열심히 살아 보자.

 소년 만화 같은 다짐을 하고 편의점으로 총총걸음으로 뛰어간다. 

 뒤에서 빗자루 소리가 들린다.

-사악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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