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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Sep 29. 2024

설경

 


 군대에서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날이었다. 그때가 100일 휴가였나.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겨울이었고, 그리고 점심시간즈음이었지만, 날씨는 어둑했다. 정말 구리구리한 날이었고,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다음 서촌을 걷고 있었다. 길이 좁거나 혹은 차가 다녔기에, 어머니와 나는 앞뒤로 걸었다. 말은 딱히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서촌을 지나다니는 여러 관광객들과 사람들과 빌라 사이에 있었던 유치원에서 웃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면서 사회에서 뚝 떨어졌다가 다시 붙은 느낌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붙여도 살이 될 수는 없는 물 먹은 대일밴드처럼 미끌미끌, 그렇다고 휴가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미묘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왕이면 군대밥 보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었다. 급식은 고등학교 이후로 끝이라고 생각했건만! 급식의 맛은 신기할 정도로 애매모호하다. 조리사의 문제라기보단 아무래도 대량 조리의 특징이지 않을까. 엄청나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데 간은 되어있지만 무언가 밍밍하고 게다가 메뉴는 엄청 다양하지만 물린다.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매일 똑같이 먹었던 된장찌개가 더 물리지 않았다. 

 "이제 밥 먹을까?"

 어머니의 서촌투어가 슬슬 막을 내리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시간에 맞춰 밥을 먹었기 때문에 사실 이전부터 배가 좀 고팠으나, 휴가 나온 아들을 데리고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열심히 소개해준 어머니에게 투정 부리긴 싫었다. 역시 군대를 가면 철이 드는 것일까.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어도 된다."

 으음

 고민이 깊어진다.

 중식? 한식? 아니면 튀김? 아니면..

 신기하게도 매일 다른 메뉴로 삼시 세 끼를 먹다 보니, 어느 것도 강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마 군대가 재료에 식욕억제제를 탄 것일까. 

 "일단 걷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돌아봤더니 작은 입간판이 하나 서있었다.

  분필로 휙휙 적힌 자그마한 주택 2층에 있는 프렌치 식당이 이름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때까지 이것저것 다 먹어봤지만 신기하게도 프랑스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없었다. 나는 갑자기 찌릿하더니 여기다!라는 신호를 받고 여기에 가야 한다고 냅다 올라갔다. 어머니는 뒤따라오시면서 프랑스 요리는 비싼데 하셨다. 

 맞다. 사실 가격표를 안 보고 들어왔기에 나중에 영수증을 봤을 때 무척이나 서글펐다.


 가게 안은 조금은 신기했다, 왜냐면 아무도 없었기에. 주문을 받는 서버 한 명이 이것저것 준비하는 모양새였지만 바쁘지 않았고, 요리사들은 무언갈 하고 있지만 잡담을 하며 쉬기도 하였다. 지금이 그 준비하는 시간인가 싶어 살짝 다시 나가 보려는데, 서버가 불러 세운다. 

 "지금 식사되어요! 들어오세요."

 아하, 머쓱했다. 

알고 보니 준비 후 딱 시작하는 타임이라고 하면서 어색해하는 군인을 안심시키려 괜찮다고 물병을 냅다 냉장고에서 꺼낸다. 아 앉으라는 뜻이구나 싶어서 가게 안을 살피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전부 비어있었기에 오히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하지만 종업원이 자연스럽게 창가 옆으로 물병을 내려놓았기에 우리는 어 저기 저기인가 부다하고 주춤주춤 들어갔다. 막 위압적인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아니었음에도, 우리 두 명 보다 많은 식당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부담스럽긴 했다. 모두가 우리의 말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류를 읽었는지 서버가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오늘 날씨가 참 어둡네요. 지금 딱 네 시인데, 벌써 밤인 것 같고."

 "아, 그렇죠. 아 네네."

 "메뉴 설명드릴까요?"

 "아 좋아요."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 무척이나 긴 요리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배고파서 이것저것 고르자 갑자기 주문을 받던 서버가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샐러드나 이런 거 따로 시키시지 마시고, 저희가 런치는 정말 지났는데 런치 코스로 해드릴게요! 고르신 거 보면 가격도 비슷하고요."

 오호

맞아 솔직히 디너는 너무 비싸 그리고 오후 네 시가 디너는 아니지 음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이런 곳을 아주 자주 와봤다는 척을 하며 네 그럼 그걸로 주세요 하고 메뉴판을 덮었다. 날이 어두워서일까 반대편의 어머니도 표정도 어두워지셨다. 나는 말없이 물을 마셨다. 속이 탔다. 

 "뭐 아들이 100일 휴가 나오셨으니."

하곤 똑같이 메뉴판을 덮으셨다. 서버가 어머 100일 휴가~ 하더니 고생하시네요 저희가 진짜 맛있게 준비하겠습니다. 하곤 돌아갔다.

 

 그때였다. 


 "오, 엄마 지금 눈이 내린다. 눈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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