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우드톤 식당과 브레이크 타임이 막 끝나 비어있는 나무 식탁과 의자들 그 끝에 앉은 어머니와 나, 달그락거리며 움직이는 포크와 나이프, 서걱서걱거리면서 잘리는 스테이크와 그 고기의 붉은 단면, 그리고 살짝 답답함에 물을 들었다 쿡하고 내려놓는 시간이 짧게 흐른다. 어머니의 눈은 호선을 그린다. 그것은 맛있다는 뜻이다.
전채 요리로 나온 개구리 뒷다리에 홀그레인 머스터드는 닭고기 맛이 났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어머니와 나만이 있는 가게에서, 아주 천천히 눈이 내린다. 살짝 어두워지는 창 밖으로 내리는 하얀 눈, 마치 하얀 알들이 데구루루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다. 작은 진주가 내린다. 어머니도 포크를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본다. 다음 차례의 음식을 서빙하는 가게의 직원도 잠시 멈춘다. 흩날리는 눈만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군대에서 바라봤던 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감상, 참으로 사람은 간사하다. 모두가 그 눈을 보며 웃는다.
"좋네, 좋아."
"그러게요. 좋아요"
어머니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한다.
"정말 분위기가 멋지네요."
옆에 있던 직원도 창 밖을 보더니 한마디 붙인다. 그리곤 곧장 다음 음식의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약간은 지루하게 들릴 음식 설명도 감정을 부풀어 오르게 만들고, 직원도 말하는데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즐거워라 즐거워라.
다음 요리를 위해 물로 살짝 입가심을 하고 천천히 포크를 든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우린 한우 사골을 조금씩 긁자, 찐하게 하얀 사골이 흘러내리고 데코레이션으로 뿌린 초록의 야채 가루를 살짝 버무려 먹는다. 눅진한 사골의 깊은 구수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휙휙 춤을 추며 내려오는 눈꽃과 그것을 보다 눈이 마주치는 어머니와 나, 의 얼굴에 퍼지는 만족감.
"이런 날엔 와인이죠."
직원이 서비스라며 들고 온 와인 한 잔을 보며 어쩌다 그냥 휙 들어온 것이 미안할 정도로 좋은 기분과 분위기에 모자의 행복지수는 이미 최고조였다. 거기에 음식에 슈가파우더를 뿌린 듯한 기분으로 한가득 내리는 눈이 절경이었다. 창 밖으로 내려다본 골목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눈을 잡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거리를 걷는 커플들도 웃고 사진을 찍는다. 이미 바닥은 살짝 녹아 검은 구정물이 되어가지만 그 누구도 아래를 보지 않고 상대방의 웃는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또 서로 웃는다.
날이 더욱 어두워지자, 굵어진 눈이 그대로 보인다. 처음엔 먼지 같은 진눈깨비였는데. 누군가 그랬는데 사라지는 진눈깨비가 아니라 함박눈이 되고 싶다고, 나는 까까머리를 긁으며 생각해 본다. 지금의 함박눈은 누군가의 바람대로 사람들에 마음에 콕콕 박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밤으로 된 케이크와 설탕공예로 장식한 디저트가 나왔다. 가게에 틀어져 있는 잔잔한 클래식도 점차 끝으로 달려가는 듯했다. 가게에 머리와 어깨에 눈을 달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점차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었다. 우리는 디저트를 먹고 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었기에 가게를 전세 내서 먹었고 그 조용한 분위기를 어머니와 둘이서 오롯이 즐겼으니까. 우리는 톡톡 설탕공예를 깨 먹으며 이제 점차 쌓이기 시작하는 눈을, 아까보단 조금 더 빠르게 불어 이제는 앞이 하얗게 보일 정도의 눈을 어떻게 뚫고 집에 가야 할지 걱정했다.
"아이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그러게, 그런데 뭐 난 군복이라서 괜찮지만 어머니는 괜찮을까요?"
"집에 가서 빨면 되지 귀찮긴 하지만."
"지금 버스랑 지하철 타면 완전 축축하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어머니가 살짝 식어 뜨겁기보단 따뜻한 커피를 양손으로 잡고 한 모금 마신다.
"좋다."
나는 그 말씀에 또다시를 끄덕거린다.
사실 지금에 와서 보면 정말 대단할 것은 없었던 순간이긴 한데, 좋다는 말만 계속 맴도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설명을 할 때, 느낌은 머릿속에 탁 떠오르지만 정작 말로는 어버버 하게 되는 그 느낌. 그것을 계산하고 나왔을 때부터, 눈이 조금은 쌓인 그 골목에 2층에서 내려와 첫 발을 딱 딛는 그때부터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알 수 없는 고양감과 행복이 은은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그날만큼은 군인이었던 내 모습도 슬프지 않았다. 그냥 덮이는 눈에, 즐거웠을 뿐이다. 나 또한 사람들처럼 하늘을 보고 걸었다. 어머니는 발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나중엔 같이 서서 하늘을 보면서 또 좋다고 말하셨다.
그날만큼은 누군가 내 하루 전체에 달콤한 슈가 파우더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