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연수역까지 가는 길에 벚꽃 터널이 있으며
벚나무 아래 오솔길을 따라 잡풀이 우거져있다.
일 년 365일 난 매일 그 길을 산책한다.
그래서 그 길에 깔린 계절의 변화를 다 알고 있다.
막 가을이 시작된 어느 날 홀연히 꽃대가 올라왔다.
죽순이 자라듯 사람이 다니지 않는 어느 밤에 꽃대가 쑥 올라오고
그리고 그렇게 붉디붉은 꽃이 핀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여물어가는 가을에
문득 세월에 아랑곳없이
“난 계절 같은 건 몰라, 그게 뭔데?”
“추워진다고? 언제 씨를 여물리려고 지금 꽃을 피우냐고?”
“난 니들 말엔 관심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난 그냥 이렇게 이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난 눈부시게 이쁠 거야.”
붉디붉은 꽃잎에 붉고 길다란 수술을 늘씬하게 휘감으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그냥 불꽃처럼 아름답다고” 이렇게 뽐내는 듯하다.
눈부시게 화려하고 도도하고 오만하다.
하지만 꽃무릇도 꽃이다. 화려한 꽃은 더더욱 수명이 짧다.
일주일도 지탱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서정주 님부터 수많은 시인이 애달픈 그리움으로 표현한 그 꽃이다.
누가 봐도 애잔하다. 왜냐구?
상상화 즉 꽃무릇의 삶이 그렇다.
초가을에 그렇게 화려한 꽃을 피우고, 짧은 꽃의 생명이 끝나고 나면
문득 새파란 새싹이 돋아난다.
땅이 차가워지고 말라가며 딱딱해질 때 상사화 잎이 나고 있다.
꽃처럼 그 잎도 오만하다.
왜 추운 겨울에 싹을 올리느냐고 물으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고 한다.
그렇게 싹이 올라 잎이 된다.
가을이 지나 한겨울 눈밭에서도 난 상사화 잎을 보았다.
겨울 가느다란 햇빛을 모아 광합성을 하는 상사화,
이른 봄에도 난 그 잎을 보았다.
그리고 절정의 봄이 되어 만물이 봄 햇살을 받으며
새싹을 올리고 싱그러워질 때
상사화 잎은 갑자기 녹아내리듯이 사라진다.
그 거친 겨울까지 견딘 상사화 잎이 그런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정말 꿈 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온 천지의 식물이 무성하게 번성할 때
깜깜한 땅 속에서 가만히 있는다.
식물이 자라기 가장 좋은 계절에 땅속에서 웅크리고
남들 모두가 사라지려 할 때 꽃으로 화려하게 나타나고
질긴 잎으로 겨울을 견딘다.
어찌 저런 생존 전략을 택했을까?
용감하기도 하지만 애처롭다.
한겨울 주위 나무들이 잎을 지웠을 때
그때서야 땅으로 내려오는 차가운 햇빛을 먹으며 살아가고
그걸 조금씩 모아서 땅속에 묻었다가 붉은 꽃을 피운다.
그리고 광합성을 가장 하기 좋은 여름엔
땅 속에 숨어서 가을이 오길 기다리는 식물,
잎 따로 꽃 따로 피는 상사화다.
수많은 시인이 상상화를 보면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표현했지만
꽃은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쩌라구? 너들이 그리워하든 말든,
나랑 상관 짓지 말라, 난 이렇게 피고 이렇게 진다.
도도하고 애잔한 꽃무릇이 올라오는 자리를 짐작으로 안다.
꽃이, 잎이 없어도 늘 그 자리를 피해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