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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3)

by Merry Christmas

내가 트랙토실 비용에 놀라 힘이 빠져 누워있는 동안, 아중 씨를 수술실로 데려갔던 여사님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려원 씨는 수술 잘 들어갔어요?"


"들어가는 거야 잘 들어가지. 휠체어 타고 들어가는데 못 들어갈게 뭐가 있어. 가긴 가는데... 계는 왜 보호자가 없니. 보기 안쓰럽게시리. 여리여리 한 것이 긴장해 가지고 달달 떠는 게 눈에 보이는데, 자꾸 웃으면서 괜찮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더구먼. 자꾸 괜찮다고 잘하고 온다고 웃으면서 들어가는데 내가 다 맘이 짠하더라."


"그래도 여사님이 같이 가셔서 다행이에요."


"내가 뭘."


정말이었다. 우리 부모님 또래의 연배인 여사님의 업무는 보호자가 없는 산모들을 진료실까지 휠체어로 밀어주는 일이다. 주 업무는 그것인데, 업무분장에 없는 다른 일도 하신다. 바로, 병실 내 환자들의 멘털케어다.

임산부는 호르몬 때문에 감정 기복이 평소보다 심해진다. 그 상황에 일반인도 힘든 입원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환자들의 우울과 불안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병실에는 없었지만 다른 병실에서는 하루 종일 울고만 있는 환자들도 제법 있었다. 여사님은 그런 환자들을 매일일 돌아보며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주기도 하고, 달래주기도 했다. 병실에 어미새 같은 분이었다.

그 어미새 여사님이 내 침대 앞으로 휠체어를 붙이며 내게 말을 했다.


"이제 자기 차례야. 가자."


그렇다. 나는 오늘 내과 진료가 있었다.

갈 때마다 생각하지만 내과가 싫다. 일주일 동안 쓴 식단일지도 검사받아야 하고, 혈당 수치도 검사 받아야 된다. 숙제검사받는 열등생 같은 느낌이랄까.


내과는 병원 1층에 있었다. 병원 로비 바로 앞이다 보니, 외래 진료를 온 다른 환자들이 가득이었다. 입원복을 입고 잘 씻지도 못하는 채로 누워있다가 나온 내 몰골이 새삼 부끄러웠다.

입구에서 키와 몸무게, 혈압을 측정하고 진료실로 들어가자 안경 낀 까칠한 인상의 여자 의사가 보였다.

그녀는 차트와 모니터, 내 식단일지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또 체중이 줄었네요. 지난주보다 1.2kg이나 줄었어요. 그런데도 아기는 여전히 주수보다 3주나 크고, 공복혈당은 안 잡히고. 총체적 난국이네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안되면 뭘 어쩌란 말인가.


"라보파가 혈당을 계속 올리는 것 같은데, 트랙토실로 바꿔 봅시다."


이럴 수가.


나는 조금 전 트랙토실 비용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충격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왔는데, 그 지식을 이렇게 바로 활용하게 될 상황이 나에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머릿속으로 하다 만 트랙토실 비용이 자동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아니, 잠시만요, 그게 비용이 상당하던데, 다른 방법은 없나요. 밥을 좀 덜 먹어볼까요?"


"식사량을 더 줄일 수는 없어요. 지금도 너무 적게 먹는 상황이고요. 그럼 당뇨약 드시면서 식사량을 좀 더 늘리시겠어요? 아님 주사로 인슐린을 맞는 방법도 있는데, 저는 약이 좀 더 효과적일 거라고 봅니다만."


당뇨약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냥 혈당이 좀 높으면 안 되나요? 공복만 아주 약간 높은데, 식후는 괜찮던데요."


내 말에 의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모체에 고혈당이 지속되면 태아의 폐성숙도 느려질 수 있고, 출산 직후 저혈당증이 와서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아. 이건 유효한 공격이었다. 우리 아기 블루베리는 벌써 많은 일을 겼었다. 교통사고도 당했고, 수면마취도 했다. 양수 감염으로 각종 항생제를 투여했고, 지금도 병원에서 차방해 준 니페딕스라는 약을 먹고 있다. 거기다가 라보파(자궁수축억제제)도 투여하고 있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당뇨약이든 주사든 더 주고 싶지가 않았다.


"네... 트랙토실 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트랙토실을 달게 되었다.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기가 빠져서 병실로 돌아오자, 간호사가 들어와서 라보파를 떼고 트랙토실로 바꿔 주었다. 그리고 곧 점심이 나왔다. 내과에서는 트랙토실을 달고 밥을 더 먹으라고 했었지만, 앞으로 감당해야 할 병원비를 생각하자 식욕이 없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트랙토실을 달게 되었노라고. 추산되는 비용이 약값만 대략 천만 원이라고.


화면에 떠오르는 활자가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텍스트의 내용만 보면 남편은 덤덤했다.


[전에 자기 숨을 못 쉬어서 힘들었잖아요. 그 약을 더 안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오히려 안심이에요. 비용은 걱정 말고, 자기하고 우리 블루베리 무사히 집에 오는 것만 생각합시다.]


그래. 이왕 맞는 거 마음 편하게 맞자. 이사 갈 비용으로 블루베리를 살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기 암시를 걸면서 밥을 몇 술 더 뜨는데, 아중 씨가 들어왔다.

물에 젖은 나비처럼 누운 채 침대 째로 들어왔다. 마취가 덜 풀린 것인지 흐릿한 눈을 하고서는 효진 씨를 보더니,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수술 잘 됐데요.'라고 말하고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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