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면회로 붐비던 토요일이 지나가고 일요일이 되었다.
일요일은 외래가 없기 때문에 병실까지 병원의 고요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화장실에 앉아 있는 나로서는 이 고요함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끄응....
4일 전 항생제를 끊은 이후로 소식이 없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드디어 소식이 왔는데 어째 수월하지가 않았다. 내 인생 36년. 화장실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지금 새로운 난관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우선, 배에 힘을 주는 일이 무척 우려스럽다. 애가 나오려고 해서 실로 묶어놓은 상황이 아닌가. 물론 길이 다르지만 변을 보기 위해 강하게 힘을 주다가 수술부위가 터지거나 파수가 될까 봐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손바닥으로 배를 살살 문지르며, 나와야 할 그 녀석들이 스스로 미끄럼틀 타듯이 나오기를 바라보았지만, 엄마 손길에 블루베리만 태동할 뿐, 나오라는 그 녀석들은 나와주지 않았다.
난관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고체로 된 그것들이 나오지 않고 자꾸 가스만 나오니 밖에 소리가 들릴까 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잠겄다가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려니, 밖에서 4번 친구 효진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1번 친구~! 물 안 틀어도 돼~! 걱정 말고 시~~~ 원하게 해~!!"
"......"
내 병실동지여. 고오맙고 수치스럽구나... 온 병실 사람들이 1번이 똥 싸는 중임을 알 일이다.
그 후로 몇 차례 더 힘을 주다가 결국 성공을 했지만 뭔가 미흡한 느낌이었다. 악마를 뿌리 뽑지 못했다는 찝찝함을 남긴 채로 나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했어?"
"완전 소탕은 못한 거 같고... 에휴. 내가 똥태교를 잘못한 탓이다."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눕는데 효진 씨가 먹을 것을 한 바구니 들고 나에게 왔다.
"친구~ 이거 한 번 먹어봐."
효진 씨가 내게 건네준 것은 쾌변두유였다. 먹는 것에 변이 붙다니. 너무나 노골적이고 먹기 싫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잘 먹을 수 있다.
"고맙데이..."
"이것도 먹어봐... 단백질 초코볼이래. 다섯 개만 먹으면 혈당 안 튄데."
"헐! 대박."
4번 효진 씨는 집이 동탄이라 우리 병실에서 가장 많은 소지품과 먹이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주 들락거리는 보호자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이 풀소유를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효진 씨는 초코볼 말고도 저당 아이스크림과 통밀 비스킷도 나누어 주었다. 놀라운 것은 임신당뇨라 먹지도 못하는데도 먹을 것을 꾸준히 사서 한 입만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효진 씨는 아중씨와 려원 씨에게도 똑 같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아중씨도 모두에게 바나나를 나누어 주었고, 어제 남편 면회로 드디어 먹을 것이 생긴 나도 견과류와 사과를 동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거 아무리 저당이라도 한꺼번에 다 먹으면 고당이겠지?"
내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다. 나도 안다. 그냥 다 먹어버리고 싶어서 물어본 거다.
"친구, 그래서 나는 두 시간마다 혈당 재면서 먹으려고."
살면서 이렇게 처절하게 간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들도 없겠지.
우리의 아름다운 상부상조 먹이 나눔 속에서, 려원 씨는 미안한 듯 겸연쩍게 웃으며 먹을 것을 받았다. 려원 씨는 매끼 나오는 병원 밥 말고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받기만 하고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저는 드릴 게 없어서 죄송해요 언니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우린 다 못 먹어."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려원 씨는 입원할 때도 보호자 없이 들어왔다. 어제도 오늘도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고 있었다. 보호자 없는 병동이긴 하지만, 입원할 때는 거의 대부분 보호자가 있기 마련이 아닌가. 아내가 입원을 하는데도 오지 않는 남편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우리는 내색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만 빼고 다 오르는 것 같아요..."
바로 집값 이야기였다.
2020년. 정부의 지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집값은 자고 일어나면 오르고 다음날이면 또 올랐다. 우리 가족은 사실 이사 준비준이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초등학교에서 너무 멀어, 초등학교가 가까운 이른바 상급지로 갈아탈 예정이었고 이사 갈 집을 물색 중이었다. 하지만, 내가 입원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중지되었다. 입원해 있는 그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가 이사 가려고 했던 아파트의 호가는 1억이 넘게 올랐고, 그마저도 매물이 없어졌다. 반면에, 우리 아파트는 고작 2천만 원이 올랐을 뿐이었다.
이사를 가려는 사람은 대부분 상급지로 가려고 하니, 실제로 집값이 많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만 덜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은 모두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부동산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효진 씨가 갑자기 배를 잡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야.. 나 좀 가서 누워야겠어."
효진 씨는 맥 수술환자가 아니라 조기진통으로 입원한 경우였기 때문에, 이런 일은 빈번하게 있었다. 잘 돌아다니다가 배가 뭉치거나 아프면 다시 가서 누워있고, 그래도 안되면 간호사를 불러 라보파 용량을 올리곤 했었다.
"요 며칠 자주 그러네요 언니?"
효진 씨와 더 오래 있었던 아중씨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말대로, 최근 며칠 통증의 횟수가 많아진 것 같긴 했다.
"수축 검사 한 번 해봐요."
아중씨의 조언대로 효진 씨는 간호사를 불러 수축검사를 했다. 수축 강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주기적인 수축이 보였고, 잠시 후 라보파 용량이 올라갔다. 20 가트. 라보파 최대용량이었다. 그렇게 활발하고 힘이 넘치던 효진 씨도 라보파를 20으로 맞자 눈에 띄게 힘들어했다. 몸에 힘이 없다고 했다. 일요일 하루 종일 효진 씨는 누워 있었다. 효진 씨의 아기 요미는 33주 1일이었다. 아직 나오면 안 된다.
내일 수술을 앞둔 려원 씨. 20 가트에도 진통이 오고 있는 효진 씨. 615호 사람들의 불안 속에서 그렇게 일요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