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했던 아빠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아빠를 혼자 떠나보내야 했던 이유

by 리치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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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건강하시던 시절, 늘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게 있었다.

“나중에 내가 아프게 되면 절대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라.

내가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남한테 폐 끼치면서 사는 건 내 인생이 아니야.”

그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보건소에 다녀왔다. 드디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걸 등록했어. 이걸 해두면 나중에 너희가 걱정할 일도 없고, 나도 편하게 갈 수 있지 않겠니?”

아빠는 늘 남에게, 그것이 자식이더라도 ‘폐 끼치는 일’을 죽도록 싫어하셨다.

그래서 그날은 오히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표정이셨다.

마치 자기 인생의 마지막까지도 스스로 책임지고 정리해 두었다는 듯이.

나는 그때는 그저 “아빠답다”는 생각만 했지, 그 서류가 앞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될지, 혹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23일.

엄마의 삼오재 날, 아빠는 갑작스러운 패혈성 쇼크와 심정지를 맞았다.

나는 응급실에서 의사에게 아빠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신 분이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상황은 너무 급박했다.


의사의 손길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 순간, 아빠의 의향서는 단지 ‘종이 한 장’ 일뿐이었다.

의사의 빠른 판단으로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고, 곧 모니터에 다시 심장이 뛰는 파동이 찍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저 감사하다고, 살려주셔서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나 주신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아빠에게 1년 3개월이라는 긴 고통을 남기게 될 줄은.


아빠는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셨지만, 그 몸과 정신은 예전의 아빠가 아니었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 아빠는 기계와 주사에 의존한 채 며칠을 홀로 견뎌야 했다.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가족조차 곁에 있어 드릴 수 없는 그 싸늘한 병실에 홀로 누워 계셨다.

아빠가 그토록 싫어하시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9월 28일.

퇴원은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진단서에는 무겁고 생소한 단어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패혈성 쇼크, 뇌염, 뇌척수염, 요로감염’.

이제 아빠의 거처는 요양원이 아니라, 더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 요양병원이었다.


그날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나는 깊은 허무감에 휩싸였다.

아빠가 그토록 뜻깊게 준비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결국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무의미해져 버린 현실.

살아남으셨지만, 그 삶은 아빠가 원하시던 삶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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