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혼자 떠나보내야 했던 이유
엄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지 못한 채, 2022년 9월 28일부터 아빠는 또다시 외롭고 긴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엄마의 삼오재 날, 패혈성 쇼크와 심정지를 겪으신 이후 아빠의 몸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살이 빠져 뼈만 남은 듯 깡마른 모습, 흐릿한 눈빛, 그리고 자꾸만 오락가락하는 의식.
내 눈앞에 있는 분이 정말 그 강인하시던 아빠가 맞는지 믿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요양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아빠가 이제는 음식을 제대로 씹고 삼키는 힘조차 잃어 정상적인 식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코에 관을 끼워 영양액을 흘려 넣는 ‘콧줄 식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그렇게 길고 고단한 시간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그저 며칠 버티기 위한 임시방편인 줄만 알았는데, 일단 시작하면 다시 빼기가 어렵다는 사실조차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빠의 삶은 그렇게 조금씩,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로 면회가 자유롭지 않던 시기였다.
우리 삼 남매는 마음이 타들어가면서도 한 달에 딱 한 번, 매달 첫째 주 토요일에 예약을 해야만 아빠를 뵐 수 있었다.
한 달에 단 한 번, 그것도 어떤 날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겨우 마주하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 짧은 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했지만,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 제약이었는지 모른다.
어떤 날은 아빠가 우리를 알아보시는 듯, 천천히 눈을 깜빡여 주셨다.
내가 아빠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면, 아빠의 눈빛은 말없이 대답해 주셨다.
“울지 마라. 나는 괜찮다.”
그 눈빛이 나를 다독이는 듯해서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아빠는 눈을 감은 채 계셨다.
가끔은 정말로 주무시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우리와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시는 건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잠깐의 만남 동안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제한적이었다.
깡마른 손발을 잡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발톱을 조심스레 깎아드리고, 굳은 근육을 풀어주듯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것.
그리고 건조하고 갈라진 피부에 로션을 발라드리는 일.
그 단순한 돌봄조차 우리에게는 마지막 효도의 기회처럼 간절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1년 3개월 동안, 아빠는 그렇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시간을 병원 침대 위에서 견뎌내셨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디쯤, 스스로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는 그 외로운 자리에서.
가족이 곁에 있음에도, 결국은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남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매일같이 갉아먹었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로 고열에 시달렸고, 배앓이와 구토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심장도 약해 체육시간엔 벤치에 앉아 친구들을 구경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 병원 대기실의 낯선 소독약 냄새, 차갑고 무심해 보이던 흰 가운의 의사보다 내 기억 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아빠였다.
늘 내 곁에서 손을 꼭 잡아주던 그 따뜻한 손.
나는 기억한다.
내가 열이라도 날라치면 아빠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다.
“괜찮다”라고 말은 했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눈빛이 나를 감쌌다.
어린 나보다도 아빠가 더 초조해하며 나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모습,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확신을 느끼게 해 주셨다.
아빠의 따뜻한 손길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것보다 든든한 울타리였고, 가장 안전한 안식처였다.
그런 아빠가 병상에 누워 힘없이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마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일 같았다.
언제나 강하고 든든하던 아빠가, 이제는 의식조차 희미한 채 가느다란 숨만 이어가는 모습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내가 아빠를 지켜드려야 할 차례였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달에 한번 아빠의 손을 잡고 울기만 했다.
그 무력감이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아빠만이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준 사람은 아니었을까.
아빠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는데, 정작 나는 아빠가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낼 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내 가슴 깊은 곳에 깊은 못자국처럼 남았다.
아빠가 나를 향해 보여주었던 그 한없는 사랑과 헌신 앞에서 나는 늘 부족한 자식이었다.
돌아보면, 아빠는 내가 아플 때 밤새 내 곁을 지켜주었고, 내가 울 때 나보다 더 큰 눈물로 나를 달래주었다.
그런데 나는 아빠가 고통으로 신음하실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물 흘리는 일뿐이었다.
그 무력함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책망한다.
“아빠는 그렇게 나를 사랑해 주셨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드렸나.”
그 죄책감이 오래도록 나를 가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빠가 남긴 따뜻한 손길의 기억이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다.
그 기억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