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배우지 않아도 시험은 쳤다. 실컷 놀기도 했지만 이왕 어학연수 온 거 시험이라도 잘 쳐야겠다 싶었다. 학점으로 인정이 되건 안되건 시험지는 남고, 내 노력과 공부했던 언어는 남으니까. 평일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주말엔 눈이 떠지는 대로 교재를 가방에 쑤셔넣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중국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다녔던 요성에 위치한 대학교 도서관은 한국의 깨끗하고도 독서실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로비에 학생증을 찍고 2층으로 올라가면 남쪽 / 북쪽으로 열람실이 나뉘어있고, 로비와 복도에는 암기과목과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준비자료 불경 외우듯 읊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열람실의 문은 열고 닫을 때마다 끼긱거리는 기괴한 소음이 나고, 시골 장판을 깔아놓은 듯한 책상에는 초록색으로 자리 번호가 매겨져있다. 따로 예약할 필요 없이 자리에 짐을 올려두면 열람실 이용준비 끝. 아날로그 그 자체였다.
달라도 너무 다른, 마치 동묘 구제시장에 처음 온 미국인이라도 되는 마냥 안절부절하던 초반도 잠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체계가 있는 듯 없는 도서관에 나는 완전히 적응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한국인인걸 몰랐기에 조용히 현지 대학생들과 섞여 공부했다. 매일 비워져있는 구석자리, 암묵적 지정석에 앉아 영어로 설명된 문법을 찾아보면서 머리에 쑤셔넣고, 단어를 공책에 빼곡하게 적고... 잡생각도 날 틈 없는 하루 치 루틴한 공부를 끝내면 9시 언저리쯤 되었다. 애매하게 저녁을 거르고 허기진 속으로, 학생들마다 소유한 개인 오토바이를 부러워하며 습한 밤길을 매일같이 걸었다.
하루는 도서관의 개/폐시간이 궁금해 1층 관리인 아저씨에게 물어봤는데 말로 대답해주시는 바람에 못 알아들었다. 두번 물어보기엔 머쓱하기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열람실의 암묵적 지정자리에 와 앉았는데, 옆자리에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정갈한 글씨체로 열심히 중국어를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자 무언의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쳤다. ‘공책에 써서 물어봐야겠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딴짓할때 썼던 그 수법. 번역기를 돌려서 적은 공책을 보여주면 이 친구도 내 공책에 답변을 써 줄 것이었다. 현지인의 필기체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죄송합니다. 혹시 여기 개장/폐장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공책을 쓱 내밀자 내 얼굴을 쳐다보는 학생. 빠르게 공책에 써달라는 바디랭귀지를 시전했더니 안경을 한번 쓱 올리고 긴 답장을 써서 건네줬다. 열고 닫는 시간과 추가로 시험기간은 시간이 다를 수 있으니 체크해보는게 좋을거라는 말까지 더해준 친구는, 더이상의 용건이 없으면 본인의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듯 영어 필기를 이어나갔다. 시크하고 칼같다... 멋있다. 위챗을 물어볼까 하다가 물어보지 않았고 그날 딱 하루 본 뒤 더이상 마주치지 못했다.
만남의 장소 도서관에서는 예체능을 전공하는 친구도 만났다. 옮긴 열람실자리 맞은편에서 마카를 늘어놓고 2점투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있었다. 누가봐도 과제를 하는 듯 집중한 모습을 보며 ‘말 걸지 않으면 후회하겠지?’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내가 직접 미술관을 기웃거리지 않는 한 예체능 동기를 만나기는 어려웠으니. 공부를 마친 늦은시간까지 남아있는 그 친구에게 급하게 돌린 번역기를 보여주며 냅다 위챗 친구를 맺자고 했다. ‘디자인 전공이고, 한국인 유학생이다. 여기 미대생들은 뭐 배우는지 궁금해. 친구하지않을래?’ 내가 보여준 내용은 대충 이러하였고, 그 친구는 끄덕이며 나의 위챗 QR을 스캔해갔다. 만나서 반갑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밥 같이 먹자! 라고 새친구 전용 단골멘트를 날렸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는 디자인보단 미술 /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으며, 서로 밥을 먹을 시간 또한 없었다.
밥먹자는 인사치레를 나누고 연락이 끊긴 친구들은 수두룩했기에, 또한 밥약속은 적극적인 중국인 친구들이 언제나 리드했기에 이번에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다. 운 좋게 마주쳤던건지 첫 만남 이후 내가 도서관을 출석할 시간대엔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점차 존재가 잊혀갈 무렵, 중간고사주간이 끝난 주말 낮. 에어컨도 꺼진 채 벽걸이 선풍기만 털털털 돌아가는 빈 열람실에 어김없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 핸드폰을 충전해 둔 콘센트 앞에서 여학생 두명이 서성였다. 그래 이쯤이면 적당히 되었겠지. 콘센트 앞으로 걸어간 뒤 쭈그려앉아 충전기를 빼며 올려다봤다. 여기 쓰셔도 돼요... 엇.
시선이 마주한 얼굴은 익숙했다. 2점투시 그 친구였다. 안녕! 오랜만이다! 우리는 작게 인사를 나눴다. 옆 여학생은 자신의 친구로, 같은 전공이라고 소개했다. 두번 만났는데 내가 먼저 연락처를 구한 친구라 괜히 더 반가웠다. 열심히 공부해, 라는 말을 뒤로하고 자세를 고쳐앉았는데 친구는 빨갛게 익은 체리가 담긴 플라스틱을 내밀었다. 중국 학생들은 열람실에 땅콩, 과일 등 작은 간식을 싸와서 옆에 두고 먹으면서 공부했다. 엄격하게 생수 외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한국과 또하나의 차이점이었다. 싸갖고 온 간식도 어쩜 체리지? 너무 귀여운데... 혼자 생각하며 잘 익은 2알의 체리를 집었다. 무르지도 설익지도 않은 완벽하게 달콤새큼한 체리였다.
그래서 매일 그렇게 출석체크했던 보람이 있었냐 하면, 다행히 있었다. 소소한 도서관 에피소드와 함께 나의 중간 / 기말고사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무식하게 양치기로 공부했는데 시험 작살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듣기, 말하기, 쓰기 모두 좋은 점수를 받았다. 기초를 다지는 반이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도 처음 봤을 때 보다 언어실력이 엄청 늘었다고 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기에 뿌듯했다. 당시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건 성적이었지만 그때의 생활을 회고하는 현 시점에선 굵은 연필심으로 꾹꾹눌러써주었던 옆자리 친구의 필기체, 새빨갛고 예뻤던 체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