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뒹굴 1일 차 이야기 후반
어머니를 보러 가야 한다. 어머니는 집 옆으로 난 길을 20~30분 정도 쭈욱! 올라가면, 증조부부터 시작되는 가족무덤 맨 끝에 계신다. 어머니보다 살아온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별로다. 이제 어리신 어머니를 위해 막걸리 한 병을 챙기고, 안주를 찾았다.
"아버지 안주로 가져갈 사과나 과일 없을까요?"
"글세 없는데...."
집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마땅히 가져갈 안주가 없었다.
'아, 아까 마트에서 구매할걸...'
"오빠 내가 아버지 선물로 사 온 과자 가지고 가자"
"흠... 양과자를 무덤에 가져갈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다. 우리 어머니도 양과자 먹어봐야지... 가자"
다행히 아내가 아버지 선물로 사 온 서양과자를 안주로 막걸리 한 병 그리고 돗자리를 챙겨 산소로 향했다.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쓸은 길이 내리는 눈으로 덮혀져 갔다.
"참 운치가 있구만...여기 발자국 찍히는 것 보이나?"
"나는 오빠 발자국만 따라가네"
내가 앞장서 걷고 아내가 내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걷는 하얀 길은 운치가 있고 맘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살짝 들뜬 나와 아내가 치워진 길이 아닌 눈만 쌓인 길을 만났다.
'아~아버지가 여기 위쪽까지 눈치울 일이 없지...' 발이 푹푹! 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뭐여~뭐가 이렇게 깊어"
"오빠 나 신발에 눈 들어갔어..."
몽글몽글 아름답던 평화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한기로 쉽게 날아갔다.
'휘이익~'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치는 걸 날리는 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하늘 소박눈은 퍽퍽 눈으로 바뀌었다. 105kg가 넘는 내가 휘청휘청하고 있었다. 아내를 불러 내 옆에 바짝 붙어있게 했다. 친구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 무거운 추를 두었다 생각하면 된다. 내 아내는 무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여기서 다시 돌아가는 건 별로지... 그렇지!... 그냥 끝까지 갑시다."
"알았어 빨리 가자 우리 둘이 어깨동무하고 가면 될 것 같아"
"가즈아! 헛둘! 헛둘!"
멀리서 누군가가 봤다면 '왠 큰 동물들이 저렇게 엉금엉금 걸어가나'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힘겹게 가족산소에 도착 후 가장 먼저 어머니 묫자리로 갔다. 어머니께만 인사하고 바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가져간 돗자리를 펴고,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르고, 옆에 양과자 통을 뒀다. 산소에 쌓인 눈은 잔디로 인해 발이 푹푹 잘 들어갔다.
"어머니! 큰아들과 며느리 인사드리러 왔어요. 절 받으세요. 그리고 술좀 따르게 잠깐만이라도 바람 좀 안 불게 해줘요."
어머니께 소리쳤다. 그때 거짓말처럼 바람이 그쳤다. 오는 도중 종이컵이 날아갔다. 하나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영영 멀리 날아갔고, 하나만 간신히 건진 종이컵이다. 소중하고, 가냘픈 종이컵이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바람이 그쳤다.
"오빠 바람이 그쳤어. 신기해"
"나도 그 생각했네"
신기한 맘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어머니께 절을 올렸다. '어머니! 아내와 저와 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투탁거리며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승진도 시켜주시고, 돈도 많이 벌게 도와줍쇼!'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아내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어머니께 절을 올리고도 고요한 바람이라 증조부, 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모든 차례를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집으로 갑시다."
아내와 어깨동무를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무언가 큰 숙제를 한 느낌이라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돌아가는 길에 내려다본 세상은 백지 하늘과 검은 산, 회색 음영의 나무! 한 폭의 고절한 수묵화였다. 아니 진짜로 그랬다.
"와 여기 와서 이런 고절한 수묵화를 다 보네.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오길 정말 잘했다. 껄껄껄"
한번 웃고 내려가니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이 되고 고기불판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소고기 2팩 먼저 먹고, 돼지목살이 마지막이다. 고기 보다 먼저 시작된 막걸리는 아버지와 나의 훌륭한 '말수단'이 돼줬다. '대화'가 듣고 소통하는 거면, '말'은 그냥 하는 거다. 서로의 말만 오고 갔다. 아버지도 그의 가장 닮은 자식인 나도 귀가 잘 안 들린다. 그래도 좋았다. 많았던 고기가 없어질 때쯤 눈은 흐려졌고, 아버지의 웃음소리도 아내의 큰 속삭임도 잘 들리지 않았다. 밥상 밑에 술병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6병이 넘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그렇게 아버지를 보러 가는 첫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