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끼다.

아산 은행나무길

by 북곰

2024.11.16.(토) 11시에 기상을 하였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와이프를 데리고, 역곡 근처에 사는 조카(12살 여자아이)를 데리고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껴야 하는 날이다. 여느 때 토요일처럼 '꾸~울'하고 잠을 자는 와이프(이하, 뚱땡이)를 깨웠다. "자네 아직도 자는가! 오늘 아산 은행나무길 가기로 했잖아. 어서 빨리 일어나게" , "으응~알았어, 조카에게 연락할게" 힘들게 뚱땡이를 깨우고 아침도 먹지 않고 만나기로 한 동곡초등학교를 향해 나의 애마 sm6를 타고 갔다. 역곡 근처로 다가가는데 뚱땡이가 갑작 "나 죽네.... 배가 아프네.... 화장실 빨리 가야 하네"로 약간의 부산을 떤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없던 평범한 드라이브였다. 급하게 00초등학교 근처 한쪽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뚱땡이는 급한 볼일을 처리하기 위해 조카집으로 달려갔다. '헐 뚱땡이도 급한 순간엔 저렇게 날아다닐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차밖에서 오전의 따스한 햇빛을 느끼고 있었다. 앞쪽에 콘크리트 천장 부분의 한쪽 끝면이 궁중에 붕 떠있는 낡은 빌라를 보았다. '아~재작년만 해도 나도 저런 빌라에서 살았지...' 그런 향수에 젖으며 주차장 근방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담배꽁초와 자잘한 쓰레기와 개똥인지 인분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보며 '깨어진 창문' 이론에 대해 잠깐 생각을 했다. '더 나쁜 환경이 더 힘든 삶을 강요하는 건가.... 어디가 먼저고 어디가 후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뚱땡이와 여조카를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쉬(?) 원하게 볼일을 마친 뚱땡이와 옆에 살갑게 붙어있는 조카를 보며 "출발~! 오늘은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끼러 가즈아~"하며 차에 올라탔다.

00초에서 출발 후 잠깐 신호대기 하는 중, 보도 옆에 있던 가로수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봤다. 노란 은행나뭇잎이 눈처럼 휘몰아치는데 "와~"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이냐....' 어쩔 수 없는 탄성이 나왔고 생각이 흘렀다. '오늘 노란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보러 가는 건 정말 즐겁겠구나.' 고속도로를 타고 잠깐 가는데 이번엔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아이고 화장실이 급하구먼.... 아침에 소변을 봤는데도 벌써 마렵네. 날씨가 추워서 소변이 자꾸 마려운 걸 거야.... 전립선에 문제가 있나.... 그럼 안되는데' 별 생각을 다하며 "우리 배고프지, 처음 나오는 휴게소에서 점심 먹고 가자고" 조수석 뚱땡이에게 얘기했다. "응응 그렇지 않아도 배고프다고 생각했다네" , "***는 괜찮아?", "네 괜찮아요." 조카의 답변에 "오케이 그럼 시흥하늘휴게소로 가자."

시흥하늘휴게소에 주차하고 휴게소 주변을 봤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로 위 하늘처럼 떠있는 느낌을 주는 하늘휴게소라, 묘하게 기분을 업되게 하는 것이 있었다. 휴게소 식당으로 가는 길목 앞에 있는 여러 동물모형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입을 쩍~하고 벌리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설핏 입꼬리를 휘게 만들었다. 하늘휴게소에서 급한 볼일해결과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아산 은행나무길을 향해 갔다.

하늘휴게소 곰돌이 사진.jpg 시흥하늘휴게소 입장을 반겨주는 동물들


시흥에서 아산까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또 막히네....' 이런저런 대화도 없이 묵묵하게 "오빠 나 졸리네.... 한숨 자겠네.... 10분 후에 깨워주게나"라고 얘기하는 뚱땡이를 보며 "그래 꿀꿀거리면서 잘 자게나"라는 답변을 해주며 계속 운전을 하였다. '여기 옆에 있는 차들 다 나랑 똑같은 목적지는 아니겠지.... 다른 곳으로 다들 빠져라.... 빠져라' 생각을 하며 운전을 했는데.... 끝까지 함께 했다.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할 때 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빠져야 주차장을 갈 수 있는데 경찰차가 못 가게 통제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작년에는 이렇게까지 안 했는데.... 어떡하지.... 아이고 생각지도 않던 장애물이구만' "뚱땡! 아무래도 주차장 못 가겠다. 길가에 적당히 잘 주차하고 걸어가자"라고 얘기하고 네비보다는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생각지도 못한 샛길이 보였고, "저기다. 저 길이다." 그 샛길을 따라서 여러 차들이 무리 지어 가기 시작했다. 바퀴가 큰 suv차량들은 턱이 있는 빈 공간에 주차를 했는데, 내 애마는 그렇게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나만 앞으로 더, 더 들어가다 공사장에 임시로 만든듯한 주차장을 발견했다. 바닥이 온통 흙밭이고, 큰 트럭이 왔다갔다한 것을 증명하는 고랑이 듬성듬성 파져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바로 주차를 하고 은행나무길로 걸어서 갔다. 바닥에는 수많은 은행나뭇잎과 은행열매가 짓이겨져 있었다. 은행나무 특유의 냄새와 끈적함이 느껴졌다. 한데 이런 자잘함에 대해 불평을 말할 아니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앞에 보이는 노란색의 휘황찬란함에 압도되고 말았으니까. 노란색은 얼핏 강렬하거나 눈이 부시는 색이 아니다. 한데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노란색의 향연은 사람을 충분히 압도시킬 수 있음을 느꼈다.

KakaoTalk_20241118_115143880.jpg 아산은행나무길 은행들과 사람들이 반겨주고 있는 모습

맹자는 대자연을 보고 '호연지기'를 얘기했다. 드넓은 바다를 보거나, 산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나도 모르게 의연하게 끓어오르는 대자연의 기를 여기, 바로, 이곳! 에서 느꼈다. "호연지기가 느껴지는구먼.... 그렇지 않은가 양뚱땡!" 내 뒤에서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뚱땡이에게 얘기를 했다. "뭐래 또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어...." 다행히 뚱땡이도 기분이 좋은 것 같이 보였다. 옆에 있는 조카도 신나서 위아래를 보고 있었다. 초반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가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가 은행나무의 자태에 놀라고, 기뻐하고,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바닥도 위와 옆에도 온통 노란색이니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걸으면 각자의 심상에 빠졌던 듯싶다. 나는 아무 생각 없어도 마냥 좋았던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에서 수많은 소음이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는 곳에서 오직 이 심상의 세계에 빠지는 기분은 마치 배영을 하며 귓속으로 물이 들어와 세상과 단절되는 고요한 기분을 느낀 듯했다. 부처님도 이러했을까?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닮음을 얻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한 것처럼 우주에 홀로 있는 것 같은 이 고요한 느낌을. 어느 정도 샛노란 은행나무의 모습에 적응이 된 후 '화장실 가고 싶다.'는 조카의 말에 뚱땡이와 나는 길 옆쪽으로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특별함이 없는 카페였는데 특별함이 있다면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에 여동생이 키우던 "량이"를 돌봐줬던 기억이 있어 고양이 등을 살살 어루만지며 고양이 기분을 좋게 해 줬다. 한참 조카와 고양이를 만지고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은행나무잎이 잘 보이는, 또 사람이 잘 보이는 외부 쪽 테라스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은행나무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는 건 또 다른 흥취였다. 은행나무 보다, 서로의 얼굴을 보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이제 갓 300일이나 지났을까? 조그마한 아기가 아둥아둥 걷는 것과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젊은 아가씨들의 고민 없는 싱그러운 모습과 이제 어느덧 검은 머리 보다 흰머리가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 다 보기 좋았다.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관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재미있고 흥취가 있는지 '신은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30분을 보낸 후 갑자기 얼굴에 닿은 방울에 "어?", "비 오는가 봐!" 급한 얼굴의 뚱땡이를 보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돌아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이 조금씩 더 거세지는걸 얼굴과 옷으로 가리지 못한 목과 손등으로 느꼈다. 해는 이미 떨어져 사방은 어두웠다. 한데 언제 켜졌는지 모를 은행나무 사이사이 조명이 또 밤에 아름다운 은행나무의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와~참 멋지구먼" 감탄사를 연발하며 떨어지는 빗방울과 은행나무를 쳐다보며 발을 재촉하였다. 조카가 "와 바닥이 너무 반짝반짝 아름다워요"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다. 정말 바닥에 보석을 곱게 잘라 잘게 뿌린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참 신경 많이 썼네'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 셋은 돌아가는 길을 재촉했다. "은행나무 바로 옆으로 걸으면 비를 안 맞아"라고 뚱땡이가 얘기했다. 뚱땡이 얘기가 맞았다. 비를 은행나무가 많이 막아주었다.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에 깜빡했는데 우린 생각보다 많이 걸었던 것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겨우 목적지에 다가올 때쯤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차를 흙밭에 주차했다'는 것을....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차 가지고 올게...."라고 호기롭게 외친 후 흙탕물을 피해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갔다. '제발 신발에 물들어오지 마라. 신발에 흙 묻지 마라'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흙이 잔뜩 묻은 신발 바닥으로 차 바닥시트를 밟았다. 아산 은행나무길에서 나는 '희로애락'을 느꼈다. 당연히 '노'보다는 '희'가 더 많았다. 이런 '작은 노'라면 매번 겪어도 좋다.

뚱땡이와 조카를 데리고 아산 쌍교 숯불갈빗집에 갔다. 여기에서 갈비를 먹고 떡갈비도 먹고 그리고 밥도 먹었다. 한데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먹은 거라 크게 맛을 잘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저녁을 먹고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살짝궁 오는 비를 맞으며 우리 집으로 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처음에는 비 오는 날의 클래식을 들었다. 우아한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나의 동승자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음악 장르를 팝송으로 바꾼 것이었다. 여기에서 놀란 게 내 조카가, 아직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애가, 태어난 지 오늘 딱 4000일인 꼬마애가 나보다 팝송을 많이 아는 것이었다. "자 팝송 신청곡을 받습니다. 각자 한곡씩 선택할 수 있어요." 뚱땡이 말에 나는 팝송이 생각 안 나서 겨우 1~2곡 그것도 틀린 제목으로 얘기를 했는데....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뚱땡이는 많이 알 수 있지만 조카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뚱땡이와 조카가 신나게 팝송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며 어느덧 시흥 나의 집 '곰굴'에 도착했다. 오늘 우리 곰가족의 마지막 가을 정취를 느끼는 여행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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