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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쵸로롱 Sep 09. 2024

알코올 중독자 아빠랑 술 한잔하던 날

명절 연휴 누구나처럼 집으로 갔다. 집은 나에게 간단한 의미이다. 나에겐 아빠와 동생만 있다면 그곳이 집으로 느껴졌다. 사정이 생길 때면 아빠는 전세를 전전하다가, 월세를 전전하면서 이사를 다녔다. 정말 수차례 이사를 했다. 교복을 입을 때쯤엔 학교에서 버스 몇 정거장은 가야 하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 학교에서 어떤 남자애가 엄마가 없는 애라며 뭐라 했던 적이 있는데, 속상해서 집 근처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는 내 말을 아빠는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라던 어떤 아줌마랑 같이 지붕을 나눠 쓰던 시절에도, 우리 셋만 살던 시절에도 난 전학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의 전학 요청에 아빠는 내 친구들이 이렇게 사는 거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이렇게는 가족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아빠의 직업도, 재정 상태도 포함이었다. 이런 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나는 전학 가고 싶지 않아 졌다.


이사 가던 동네도 거기서 거기였다. 학교는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학교 다니기 좋게 버스 정류장 근처로 이사했다는 말을 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들어와도 금방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난하지만 딸 가진 아빠는 이렇게 세심하게 집의 위치를 고른다. 거리는 괜찮았지만 아빠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에 해가 잘 들지 않아 어두워지고, 좁아졌다. 동네가 거기서 거기라서 문득 옛날에 살았던 집을 지나갔다. 몇 개는 우리가 이사간지 얼마되지 집이 허물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쓰러져가는 집에 마지막 세입자였다.


집이라는 물리적 건물에는 추억이랄 게 없다. 수차례 이사하면서 몇 해를 살지 않아도, 아빠와 동생만 있다면 집으로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기숙사에 살았고,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거의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어디서 살아도 집 같지가 않았다. 아빠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동생이 아빠에 대한 애정 섞인 험담을 하는 그곳이 내 집이었다. 내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면서 걱정스러운 가족이 있는 집도 나에겐 집이었다.


명절엔 다들 집에 내려간다. 몇 번은 내려가지 않았지만 보통은 내려갔다. 많은 해의 명절은 우리 집에 갔다가 우리 가족이 할머니와 고모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아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처를 주고받는 말들 때문에 어떤 해에는 우리 가족끼리 연휴를 지냈다. 여자애가 둘이나 있는 집인데 우리 집은 항상 조용했다. 한 많은 우리 가족은 어떤 말들은 싸움이 되고, 눈물이 됐다. 거기에 화가 많은 K장녀인 나는 참지 않아서 아빠에게도 할 말 못 할 말을 다 했다. 수가 틀리면 자취방으로 도망갔으니, 내 더러운 성질머리를 붕어빵처럼 닮은 부녀 둘이 나를 맞춰줬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따라 나름의 장녀 역할을 해보겠다고, 명절이니 고스톱이나 치자고 했다. 할머니네서 명절을 보내면 어른들이 하루종일 고스톱을 쳤다. 우리 집엔 엄마가 없고, 모둠전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큰 딸이 왔다고 요즘엔 술을 안 먹는 척하는 착한 알코올 중독자 아빠가 있었다. 점당 10원, 셋이 둘러앉아 그림 맞추기 했다. 동생과 내가 뭘 제대로 알리가 없어서 아빠가 다 알려줬다. 각 턴마다 500원씩 내고 돼지가 나오면 그 돈을 모두 가져가는 것도 했는데, 그 황금돼지 그림이 나올 때마다 까르르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가진 동전을 다 잃고 나서야 놀이는 끝났다. 동생과 나는 아빠 이제 술 못 사 마시겠네 하며 깐족거렸었다. 아빠가 다 알려줘 놓고, 가진 돈을 모두 탕진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승리의 흔적이 사진첩 속에 남아있었다.


승자인 나는 그날 저녁으로 치킨 턱을 냈다. 그리고 아빠와 술 한잔을 했다. 아빠가 가족끼리 한잔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우리 가족이 너무 행복했다. 대신 오늘은 딱 반 병만 마시라고 하고, 그렇게 술잔을 부딪혔다. 정말 한 병을 아빠와 나는 나눠마셨다. 그날은 과음도 안 하고 그렇게 끝났다. 행복해하던 아빠의 얼굴이 잊히지가 앉는다. 그의 얼굴은 자식농사를 다 마치고,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어차피 맨날 혼자 마시는 거, 같이 마셔줄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와 몇 안 되는 행복한 추억이다.


알코올중독자의 가족은 알코올 중독자를 사랑할수록 속상하고, 문제에 몰입한다. 술을 마시는 행위에 대해 간섭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알코올 중족자의 문제를 본인과 동일시한다. 알코올 중독은 가족의 병이라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위법하지도 않고, 치료 의무도 없다. 중독은 병이지만 본인 스스로 의지가 있어야만 치료될 수 있다고 한다고 한다. 의지가 있어도 자꾸만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 병인데, 그 대책은 금연 캠페인보다 훨씬 찾기 힘들다. 알코올 중독자와 얽매이는 가족들은 그 힘든 챗바퀴를 돌고 돈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고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다. 알코올 중독이 점차 심해질수록 대화도, 즐겁게 마주하는 일도 적어진다. 몇 없는 추억을 자꾸 꺼내서 더 많이 함께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이제는 집이 없는데, 이번 명절은 어디로 가야 할까.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아이 클라우드 덕분에 소중하게 추억으로 남았다. 사진을 찍은 기억도 없지만, 이 꼬질꼬질한 이불 위에서 즐거웠다.

커버 이미지: Unsplash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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