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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밥밥 Oct 03. 2024

아빠 가을이 왔어

아빠. 이제 가을이야.


하늘이 이렇게 높고 구름이 뭉게뭉게 예쁘게 피었어. 날씨가 참 좋으면 아빠가 나 슬프지 말라고 선물을 해주나 보다 생각이 들고, 비가 오면 내 슬픈 마음을 알았나 보다는 생각을 해. 우리 둘 다 더위를 잘 타는데, 나 덥지 말라고 오늘처럼 시원한 날씨를 선물해 줘서 고마워.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면 그 핑계를 삼아 내게 전화를 했잖아. 또 어떤 사고를 쳤을지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그 전화가 이제는 울리지 않지만 그게 나에게 평화를 주진 않았어. 아빠 보고 싶어. 아직은 슬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울컥해. 저번 달에는 토익 시험 보고 나서 오는 길에 들렀던 처음 간 식당에 가서 울컥했어. 내가 아빠한테 도가니탕 사줬었잖아. 그때가 생각나서 울었어. 왜 나는 아빠랑 밥 먹는 게 그리 싫었을까. 더 함께하지 못한 내가 미웠어. 취한 아빠를 붙들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아니면 술 안 마시는 척하는 아빠를 믿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야 했을지 어떤 선택을 했어야 덜 후회했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멈췄어. 아빠랑 싸울 때마다 우는 나를 보고 아빠는 울지 말라고 하던 게 생각나서 울다가도 그쳤어.


열심히 일하던 회사도 관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중이야. 내 인생에서 가장 힘이 빠진 순간인 것 같아. 책임져야 할 아빠도 없으니까 그전처럼 치열하게 말고 그냥 적당히 여유롭게 살고 싶어. 3개월내내 글도 쓰고, 친구들도 만나고, 실컷 누워있었어. 이런 나를 보면 아빠가 뭐라고 했을까? 아빠는 내 걱정을 잘 안 했잖아. 알아서 잘하고 기특해서 자랑하고 다녔잖아. 나 사실 진짜 못났어. 아빠로 글을 쓰는 것도 못해먹겠고, 다시 취직 준비도, 공부도 하기 싫은 것 같아. 아빠가 있을 때 아빠가 나 방해해서 동기들처럼 대기업 취직도 못하고, 학점도 안 나오는 줄 알았어. 근데 그냥 내가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아. 아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원망했을까? 나 진짜 나쁘지. 미안해.


난 아빠 볼 때마다 미워했는데, 아빤 나 좋아해 줬었잖아. 미안하고 고마워. 누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줬다는 기억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고 있는 것 같아. 말썽꾸러기였지만 내 아빠라서 고마워. 아빠한테 직접 해줄걸 너무 후회되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울고, 아빠 생각을 해. 마냥 우는 것보다 아빠에 대한 내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 같아서, 그래도 생산적이어서 좋아. 꿈에서 아빠랑 왜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어. 우리 즐거운 시간 보냈지 오래됐는데 말이야. 덜 울고 나아질게. 장한 첫째 딸이니까 더 괜찮아질 거야.


아빠 꿈에 나왔으면 로또 번호를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 할머니 아프신 것 같으니까 건강하시게 힘 좀 써주고 말이야. 나 퇴사한 거 아직 가족들한테는 말 못 했어. 금방 다시 취직할 것 같기도 하고 걱정시키기 싫어서 말 안 했어. 그러니까 나 잘되게 도와줘. 알았지? 원래 자식들은 염치없잖아. 아빠 거기선 술을 많이 먹어도 괜찮으니까 아프지 않고, 원래 아빠처럼 철없이 마냥 행복했으면 좋겠어. 오늘은 이만 줄일게. 예쁜 하늘 보여줬는데 울기나 하고 말야. 나 씩씩하게 토익공부하러 갈 거야. 또 올게.


사진: Unsplashaziz ay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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