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에 YB모임이 있다구요?
도비의 신입 시절은 왕따의 세월이었단다...
2006년 4월, 장장 3개월에 가까운 입문 교육을 마치고 나서야 부서 배치를 받았다. 내가 가게 된 부서는 생긴지 3~4년? 정도 된 장비 개발 부서였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여자 엔지니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부서에 1호 여자 엔지니어가 됐다. 원래 전공이 제어였어서 일은 크게 걱정 안했었는데, 그 부서에 배치되었다고 하니, 기숙사에 같이 살던 동기들이 걱정을 한바가지 해줬다.
거기 술 엄청 많이 먹는 부서인데 괜찮겠냐고.
정말로 그랬다. 부장님이 퇴근 시간만 되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시고는 "빨간 메모"를 보내셨다. "XXX, AAA, BBB님 오늘 저녁 00횟집 갑시다" 신입사원이고 퇴근하고 별로 할 일도 없어보이고, 음식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다고 일주일에 세 번씩은 불려갔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열심히 따라다니긴 했는데 이게 한 두달 계속 쌓이니, 힘들긴 힘들더라. 그렇다고 감히 못 가겠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간 불려다니던 다른 선배들은 내 덕에 탈출을 해서 기뻤는지 별 다른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당시 엔지니어들의 직급이 E3(사원),E4,...이런식으로 해서 수석이 E6였었는데, 오죽하면 저 숫자가 일주일에 술 몇 번 먹었는지 카운트해서 올라가는 거다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맨날 수석님 따라다니면서 술 먹다 보니 바로 위의 사원, 선임급들은 아침에 티미팅을 할 때만 볼 수 있었고 따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거의 없었다. 안그래도 주 3일 이상을 술로 보내는데, 따로 술 사달라, 밥사달라 조르기도 그랬다. 언젠가 한 번은 용기내서 물어봤는데, 여자랑 단둘이(?) 어떻게 술을 먹냐며 까이기도 했다.
(아니, 일할 때는 직장에 여자 남자가 어딨냐면서요, 여사원 소리 안 들리게 유난떨지 말라더니?)
부서에 YB(사원, 대리들만! 모이는) 모임이 있었다는데, 나는 그걸 거의 3년 다 돼서 알았다. 내내 모르다가 3년차쯤 되었을 때던가, 갑자기 모임이 있다면서 어디 고깃집을 가자고 하더라. 그 모임이 원래 정기적으로 하는 건 그 날 그 자리에서 알았는데, 내가 왜 그 때까지 몰랐는지도 거기서 알았다.
제일 연장자께서 어차피 금방 나갈 여자애를 굳이 뭐하러 모임에 들이냐고 하시는 바람에 계속 못 부르고 있다가, 3년 정도 됐으니 이제 한번 불러봐라. 하셨다나? (연장자는 입사 20년차가 넘으신 분이었다)
그 선배는 나를 불러다 놓고 충고 하나 하겠다며 일장 연설을 하셨는데 그 말의 마무리가....
"너 그렇게 회사 생활하는 거 아니다~, 누구랑 회사 생활 더 오래할 거 같애?"
왜 매번 선배들 두고, 수석님만 따라다니는지, 직급 사회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신입사원이 수석한테 잡혀서 매일 술 먹으러 가는데, 꼰대 떼놓았다고 신나서 자기들끼리 술 먹고 놀아놓고는 비겁하게.
"글쎄요, 뭐 오는 건 몰라도 가는 건 순서 없다는데, 누구랑 더 오래 일할지는 가봐야 아는 거 아닙니까?"
에라이, 이판사판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