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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무지니 Jan 26. 2023

그냥 네가 싫어!

사수복이 참 지지리도 없는 슬픈 도비의 이야기

엔지니어 일은 재미있었다. 열심히 배워서 내가 생각한 대로 장비가 돌아가는 것도 신기했고, 현장 선배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어서 이게 천직인가 싶을 정도로 신나서 일했던 것 같다. 물론 1차 고과권자와의 사이는 지독히도 힘들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공정당 1명의 담당자만 배정된 덕에 사수가 없었다. 사수까지 있었다면 진작에 탈주했을 지도.


그렇게 일이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차의 매너리즘과 파트장과의 갈등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인사팀 교육담당자로 가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왔다. 가뜩이나 파트장이 너무 힘들었고, 일은 뭐 나름 아쉽긴 하지만 신입의 로망에 인사팀!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에, 덜컥 ok 해버렸다. (재미랑 간지랑은 또 다르지, 암!)


결론은?


부서장(그룹장)이 결사반대를 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당시에 여자 엔지니어라고 처음 받은 데다 나름 잘하고 있다고 어깨 좀 펴고 다니셨는데 갑자기 다른 데 간다고 하니, 본인 경력에 흠집이라도 날까 싶으셨나 보다.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길래, 파트장과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했더니 파트 변경을 해줬다.




변경된 파트라고 해도 어차피 공정만 다르고 설비를 기획하고 Setup 해야 한다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거라면, 여기는 사수가 있다는 거? 4년 가까이를 혼자 일했고, 거의 파트장이랑만 이야기를 하던 습관도 있었고, 사수도 본인이 다른 공정을 하면서 나한테 일을 넘기고 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오래갈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좀 안 맞기는 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은 좋은 관계일 수가 없다는 철칙이 있었으므로... 어찌어찌 3개월 정도는 잘 넘기고 있었다 (이건 내 생각이었던 듯...)


송년회가 한참이던 어느 겨울날,


그날은 파트 송년회식이었다. 회식 분위기가 어땠더라... 사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고, 곧 선임이 되겠구나. 사원이 끝나가는 건 기분이 어떠냐~ 뭐 이런 얘기하면서 잘 놀았던 것 같다. 1차를 마치고 간단히(?)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는 분위기라 고깃집 문 밖에서 다른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퍽!


순간 너무 놀라 정강이를 부여잡고 펑펑 울기만 했다. 사수가 내 조인트(?)를 깐 거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185가 넘는 장신의 남자가!!! 그것도 파트장님, 선배님들 다 보는 앞에서. 그때는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너무 아프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꿈뻑꿈뻑... 계속 울고만 있으니 같이 있던 여자 책임님께서 나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셨다.


"너 미쳤어? 애를 왜 때려!?"

"아니, 뭐 남자애들은 그렇게 한 번씩 때리는데, 뭐 잘못됐습니까?"

"인마, 그래도 여자애한테 왜 그래?"

"여자가 무슨 벼슬이라고, 저는 쟤가 그냥 싫다니까요?"


돌아서 가는 길, 뒤통수에 골목길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냥 싫어서 때렸단다. 너무 억울하고 열이 받는데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지금 같았으면 당장 증거, 증인 확보해서 인사팀에 직장 내 괴롭힘 사례로 확 신고했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임원 한번 되보겠다고, 회사에 노이즈를 일으킬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야망 있는(?) 철부지 사원이었다.


한 사흘은 그래도 버틴답시고 말도 안 걸고 버텼다. 그런데 사수기도 했고, 한참 과제 마무리 보고 할 때인데 피드백을 안 받으면 부서가 뒤집어져라 난리를 쳐댔다. 그래서 메일도 보내고, 메신저로 물어도 보고 했으나 뭐 자료에 빨간 펜으로 한참 적어서 주긴 해도 절대로 말을 안 붙이더라. 답답한 마음에 메일로 제가 전에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죄송하다고 마음 푸셨으면 좋겠다고 보내기도 해 봤다. (아니, 사과를 왜 내가 해? 지가 해야지! 세상에 맞을만한 일이 몇 가지나 된다고)


너무 답답한 마음이 그때 같이 계셨던 여자 책임님께 하소연을 했다. 사람을 그림자 취급한다고, 메일도 보내보고, 아침 미팅 때 말을 걸어봐도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이라고.


"그래? 0책임은 너랑 잘 지내고 싶은데, 여자애들은 속을 알 수가 없다고 하던데? 대답도 안 하고 뚱하기만 해서 너무 힘들다고"


와~~~, 진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구나?




결국 6개월인가 있다가 내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그 말도 안 되는 사수 놈이랑은 부딪힐 일 없이 끝났다. 아마 아직도 잘 다니고 있는 거 같긴 하더라. 그 사람 동기들이랑 제법 친하게 지냈는데, 아직도 그 동기선배들한테는 나랑 같이 있을 때 이름도 올리면 안 되는 블랙리스트가 됐다. 10년도 더 됐는데, 공소시효 안끝났냐고? 그냥 없는 사람이긴 한데, 한참 회사다니면서 잘 안될 때, 저런 인간도 아직 다니는 회사 내가 무슨 미련을 가져야 하나... 싶을 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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