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생일에 먹는 미역국
큰 딸아이의 생일이다.
미리 당겨서 가족 식사를 하고 왔지만 생일 당일날은 손수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주고 싶었다.
"모 먹고 싶어?"
"고기, 잡채.. 아, 미역국이지~!"
미역국.
미역국은 사실 내가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너를 낳느라 병원에서 1박2일 진통을 하고 얼굴과 눈까지 실핏줄이 다 터진 위대한 산모가 먹는 음식이 미역국인디. 출산 후 산모는 출혈이 많기 때문에 혈액을 맑게 하고 회복을 돕는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에는 철분과 칼슘이 풍부해 출산 후 필요한 영양을 보충해 주고 회복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된단다.
미역국은 아이 어릴 때부터 자주 끓인 국으로 이제는 눈대중만으로도 척척 잘 끓여낸다.
밑간 한 붉은 양지고기와 퉁퉁 불은 미역을 고소한 참기름에 달달 볶아, 물을 한소끔 넣고, 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은근히 오래 끓인다.
마지막 킥인 멸치액젓으로 나머지 간을 맞추고 나면 미역의 감칠맛과 소고기의 육즙이 잘 어울려져 깊은 맛이 우러난다.
끓는 미역국 옆에서 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야채를 착착 썰어 기름에 볶은 뒤 삶은 당면과 함께 버무려 잡채를 만든다. 종종 거리며 바삐 음식을 하다 보니 문득 눈물 젖은 미역국을 먹었던 옛날기억이 떠오른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는 산후 우울증에 걸렸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데 아이가 예쁘지 않았다. 내 몸 돌보기도 힘들어 아기까지 신경쓰기가 어려웠다.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을 박차고 나와 집에 머물렀다. 신혼집이 아닌 엄마가 있는 집에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산후조리 기간 동안 엄마는 매일 정성스레 미역국을 끓이시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예쁜 아기 낳아놓고 왜 그래.. 어서 아기랑 집에 가야지."
직장을 다니셨던 엄마는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미역국과 고기 등 산모에 좋다는 여러 음식들을 식탁에 떡하니 차려놓고 출근하셨다. 그때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내 아이 먹일 음식을 공들여 차리면서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저녁식사 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 위의 초를 부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어는 덧 훌쩍 커버린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서운하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아이 생일 풍경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온 친척들이 모여서 축하해 주던 돌을 맞이하고, 엄마 품에서 손뼉 치며 초를 후후 불던 유아기를 지나, 이제 아이는 친구들과 밖에서 생일파티를 한다. 언젠가는 전화 한 통화로 생일을 축하해 주는 날이 오겠지.
저녁식탁을 정리하며,
참, 근처 사는 엄마에게도 미역국과 잡채 한통 가져다 드려야겠다.
우리 엄마도 나 낳고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