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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r 11. 2022

3화. 옥순이 살인 사건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DAY 3 : 입원 셋째 날


여전히 식사는 저 콜레스테롤 식으로 나왔다.



 집중치료실에서 아침을 맞이한 나는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도 아니면서 스스로 진단을 내리는 엄청난 패기로 나는 여기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최대한 괜찮아 보이기'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태블릿으로 영화를 틀어 보고 있다던가, 병실 한쪽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어릴 때 좋아했던 하이스쿨뮤지컬, 보고 있자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종종 본다.

 

 얼마나 티를 냈는지, 회진 온 주치의 선생님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날 보고 웃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 나 혼자 우뚝 앉아 에어팟에 태블릿이라니… 굉장히 튀어 보였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영화를 보면서도 불편한 건 없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빨리 일반 병실로 옮기고 싶은 맘에 급급해 좋아진 점만 늘어놓았다.(지금 생각해보니 위험하고 철없는 짓이긴 하다) 아직 복시가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실제로 많이 좋아지긴 했으니 나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의사 선생님도 빠르게 호전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집중치료실에서 나가도 될 것 같다고 진단을 내리셨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일반 병실로 나가기만 하면 보호자도 올 수 있고, 이제 곧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날 심장 검사 때문에 24시간 동안 심장 소리를 녹음하는 기계를 달게 되었는데, 가슴과 배에 뭘 주렁주렁 달고, 목에 녹음기를 매달고 다니는 꼴이 아주 우스웠다. 그래도 곧 일반 병실로 나간다는 점 때문에 이 기계조차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날 일반 병실로 옮기기로 확정은 되었으나 자리가 없어 한참을 기다렸다. 간호사 말에 따르면 자리는 있는데 확진자가 쓰던 곳이라 방역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알아서 방역할 거라 믿고 얼른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검사는 계속되었다. 떡진 머리와 잘 보이지 않아 허공을 보는 눈으로 여기저기 끌려다녔다. 병원에 휠체어가 모자라서 같은 집중 치료실 내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만 휠체어를 쓰고, 나는 걸어서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안과 진료를 위해 안과에 도착했는데, 대기실이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닐 때는 그냥 휠체어에 앉아서 기다리면 됐는데, 링거 거치대를 끌고 걸어오니 서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은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환자복을 입고 끝도 없이 기다렸다. 이 사람들도 분명 아파서 여길 찾은 것일텐데도, 환자복 대신 사복을 입고, 링거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져 마냥 부러웠다.


 같이 온 할아버지는 일찍이 검사를 마치고 다시 병실로 옮겨졌는데, 떠날 때 같이 온 아가씨를 데려가야한다며 이송기사에게 고함을 쳤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구준표에게 지목 당한 금잔디 같은 심정으로 왜...왜 날 찾으시는거지...! 하고 쳐다보았다. (같은 병실 출신이라고 챙겨주시는건가?) 이송 기사가 저 분은 아직 검사가 많이 남아 여기 있어야한다고 달래 데려가셨다. 그냥 같이 검사를 왔으니 갈때도 같이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대기 끝에 검사실에 들어가서 하얀 기계 안에 얼굴을 집어넣고 사방에서 언뜻 언뜻 불빛이 보일 때마다 버튼을 누르는 시야 검사를 했다. 나는 보일 때마다 다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담당자 분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누르는거라고 재차 설명한 것으로 보아 많이 놓쳤나보다.


 그러고 나서 안과 의사선생님을 만났는데, 현재 안과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 왜 안보이는건지 물어보자 시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뇌경색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니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시력도 눈도 다 좋은데 이렇게 눈이 안 보인다니...뇌경색 너 이 녀석 쪼그만게 영향력이 엄청나구나.


 그 다음 검사실로 이동해서 진행한 눈동자 운동 검사는 VR기계 같은 것을 쓰고 보이는 빨간 점들을 눈동자로 열심히 뒤쫓는 검사였다. 별 거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이걸 거의 한시간 반 이상 하고 있으려니 진이 다 빠졌다. 눈이 잘 안 보이는데, 한곳에 집중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글에서 가져온 눈동자 운동 검사 사진 (출처 : 분당서울대학병원)


 수많은 검사를 끝내고 쉬고 있는데 오후쯤 드디어 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집중치료실에서는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는데,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는 휴게실도, 복도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 퇴원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매우 들떠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그 수를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검사를 했는데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뇌경색은 혈관이 좁아져 생긴다는데 내 혈관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의사 선생님 역시 젊은 나이에 뇌경색인 점이 이상하다며, 일반적인 뇌졸중 환자와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결국 몸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치료는 되고 있는 건지, 눈은 언제쯤 나아지는지를 물어보았다. 질문을 들은 의사 선생님이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사실상 뇌경색은 뇌에 난 상처 같은 존재고, 뇌는 재생 능력이 없기 때문에 평생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좌측 시신경 부근, 정확히는 눈 운동 신경에 뇌경색이 생긴 터라, 그 부분이 이미 괴사 하여 죽은 상태라고 한다. 그럼 다신 낫지 못하는 건가 싶어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흥미로운 소식이 이어 들려왔다. 뇌는 재생 능력이 없지만, 습득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한 부분이 죽으면 그걸 둘러싸고 있던 주위 부분이 죽은 녀석이 하던 일을 배운다고 했다.


 이게 무슨 '유미의 세포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가. 내 눈이 지금 다시 좋아지고 있는 이유도 그 옆 세포가 빠르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재활의 과정이란다. 마비가 되었던 사람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나이가 젊어서 그 배움이 엄청나게 빠르게 이루어진 거고, 그래서 하루 만에 시력이 많이 돌아온 거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떠나고 나서, 흥미로운 의학 이야기에 희망을 얻은 나는 열심히 인수인계를 받고 있을 내 세포들을 떠올렸다. "얘들아, 원래 여기 담당이던 옥순이는 떠났으니까 우리가 대신 일하자!" 이러고 있는 건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죽었는데도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하루 만에 열일해 빈자리를 메꿔낸 내 세포들이 기특해졌다.


 희망찬 소식도 잠시, 내가 생각한 주 원인인 자궁내막종약은 무고하다는 산부인과 측 의견이 전해졌다. 그놈이 옥순이 살인사건의 범인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호르몬제를 내일부터 다시 먹게 되었다. 그 약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해 다시 먹기가 무서웠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렇다니 믿는 수밖에 없었다. 유력 용의자를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주게 된 나는 다른 용의자에게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바로 백신 부작용이다. 뇌경색이라고 하자 주변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던 원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뇌경색에 걸릴 이유가 없었다. 혈관도 그렇고 뇌졸중을 일으킬만한 요인 하나 없이 모든 것이 너무 건강하다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뇌질환 환우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가 나왔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가입을 해보니 그 카페에는 나처럼 젊은데 백신을 맞고 뇌질환이 생긴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9월 13일 모더나 1차 접종, 11월 1일 모더나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1차와 2차 모두 두통과 몸살로 많이 아팠지만 회사를 다녀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해야 하기에 민폐가 되기 싫어서 맞았다.(백신 패스가 있던 시절이다.) 그런데 2차 백신 접종 후 갑자기 자궁선근증이 새로 발병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3차는 최대한 늦게 맞으려고 하던 차에 이렇게 뇌경색이 발병한 것이다. 만일 3차까지 맞은 후였다면 더 안 좋은 상황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3차도 아니고 2차 접종, 그것도 11월에 맞고 3개월 후 2월에 발병한 뇌경색이니 어쩌면 서로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접종 3개월 이후에 뇌 질환을 얻은 20대, 30대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고, 백신 접종 후 두통과 어지럼증이 줄곧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음모론을 꾸미는 사람처럼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과 의혹에 덤벼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미 내 시신경 쪽 뇌세포는 괴사 했고, 다신 돌이킬 수 없지만, 그래도 제발 이렇게 된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이유없이 죽음을 맞이한 옥순이의 사인을 밝혀달라!)


 나는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혹시 백신 후유증일 가능성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마스크를 썼지만 그게 느껴졌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백신으로 인해 부작용을 겪고 있는 사람이 무수히 많지만 백신과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렇겠지... 정부 역시 이러한 특수 상황도, 전 국민에게 백신을 맞히는 일도 다 처음일 텐데... 그렇지만 당장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어버린 나는 원인을 알고 싶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원인 규명에 실패한 나는 체념하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눈이 90% 이상 좋아졌지만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았기에 하루 빨리 세포들이 마저 배우길 바랐다. 생각을 멈추자 그제야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옮겨진 일반 병실은 4인실이고, 나를 제외한 세 분이 모두 치매 환자셨다. 모두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는데, 내 맞은편의 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셨다. 보니까 어디가 아프셔서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간병인이 건드리기만 해도 빼애액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것 같았다. 보통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지만, 가끔은 ‘어머니’를 또렷하게 발음하며 악을 쓰기도 했다. 이걸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괴로워져 나도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훔치게 되었다.


 집중치료실을 벗어난 것은 좋았지만, 나를 제외한 병실 내 모든 환자가 거동을 못하는 상황이라 자리에서 대소변을 해결해야 했고, 그 냄새와 소음 때문에 너무 힘겨웠다. 커튼으로 벽을 치고, 친구가 주고 간 비염용 아로마 오일 밤을 코 밑에 미친 듯이 발라야만 살 수 있었다.(화한 느낌으로 코를 뚫어주는 오일인데 이걸 하도 많이 발라서 코 밑이 따가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부터 이상하게 목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입원 첫날부터 병실이 너무 건조해 목이 좀 칼칼했는데, 이젠 침을 삼키는 게 힘들 정도로 아팠다. 원래도 병원에 오면 특유의 건조함 때문에 기관지염을 달고 살던 터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눈도 잘 안 보이는 와중에 목 아픈 게 뭐 대수인가. 그냥 빨리 내일이 되어서 친구가 보호자로 들어오기만을 바라며 병원에서의 3번째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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