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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r 11. 2022

1화. 병원에 입원하다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2022년 2월 22일, 목동의 한 병원에서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내 나이 만 28세의 일이다.



DAY 1 : 입원 첫날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겠다. 나는 평소처럼 직장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고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와 만나 이른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전조 증상이 없었다. 저녁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스시 오마카세 회식을 가기로 한 날이라 오히려 좀 들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따라 사무실 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래서 오후 재택 처리를 하고,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회사 동료의 집(*회사 바로 앞 오피스텔에 산다)에 가 남은 업무를 보기로 했다. 가는 김에 지하상가에 들러 새로 생긴 카페에서 애플파이를 샀다. 하도 맛있다는 입소문이 돌길래 같이 맛보려고 준비한 것이다.


 애플파이를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 오피스텔 로비까지 들어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이전에도 종종 어지럼증이 있었던 터라 별로 놀라지 않은 채 숨을 고르고 앞을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겨울인데도 너무 놀라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블랙아웃이 되었던 눈은 이제 모든 것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도 2개, 버튼도 2개,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배달 기사도 2명으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려있는데도 탈 수가 없었다. 너무 어지럽고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똑바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동안 어지럼증을 느낀 적은 있었어도, 눈이 이렇게 보인적은 처음이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 건물 1층 부동산에서 일하는 친구가 떠올랐다.(현재 같이 살고 있고,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핸드폰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여기로 와 달라고 톡을 보내는데, 기적적으로 눈이 다시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것도 조금 잦아들었다. 잠깐 뿐이었나 보다 싶어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회사 동료의 집을 찾았다.


 3층에 내려 집을 찾는데, 이전에 와본 적이 있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머리가 안 돌아가 헤매는 바람에 집을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반갑게 맞이하는 동료의 얼굴을 본 것도 잠시, 방 안에 들어가자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걱정스레 무슨 일이냐며 묻는 동료의 얼굴이 2개로 보였다. 너무 어지럽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똑바로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아까 연락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병원에 가자며 날 부축해 데리고 나갔다. 태어나서 한 번도 구급차를 타 본 적이 없던 나는 119를 부르자는 제안을 거절했고, 이 또한 잠시 뿐일 증상이라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참 어이가 없다.) 그래서 친구한테 기대 비틀비틀 걸으며 근처의 내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점심시간이라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나는 한 내과 앞에서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버티고 있었고, 이런 내 모습에 조급해진 친구는 내과 옆 약국에라도 뛰어들어가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증상을 얘기하자 그 안에 있던 3명의 약사가 모두 입을 모아 119를 부르라 하고는 약국 밖으로 나와 내 상태를 살펴보셨다. 너무 어지러웠던 나는 그제야 119를 불러 응급실로 향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잘 못 걸으면서도 친구한테 농담을 해댔고, 밖에서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불평불만을 하기도 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내 앞에 멈춰 서자, 그제야 이 상황이 실감됐다. 구급 대원들이 분주하게 내 상태를 살펴보고는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도 백신은 언제, 뭘 맞았는지, 이름과 나이, 주민번호 등 많은 질문들을 건넸다.

 

 정신없이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침대째 옮겨져 수속을 기다렸다. 병원도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는 터라 수속을 하고 응급실 침대에 눕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침대에 눕고 나니 한 간호사가 원활한 검사를 위해 내 바지를 벗기고 환자복 바지로 갈아입히려 했다. 나도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내 청바지를 벗기니 잠옷 바지가 등장했다.(요즘 날이 추워서 바지 안에 그냥 잠옷 바지를 겹쳐 입고 다녔는데… 이렇게 응급실에 오게 될 줄은 몰랐지……) 그것도 그냥 잠옷이 아니라 솜이(내가 키우는 강아지이다.)가 다 물어뜯어서 구멍이 송송 난 파자마 바지였다. 너무 당황한 내가 바지를 벗기는 간호사에게 “제가 잠옷을… 입고 있어요…”하고 말했지만 응급실에서 온갖 상황을 마주해봤을 간호사는 이런 건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오히려 잘됐다며 갈아입을 시간도 없으니 그냥 잠옷을 입고 검사를 다니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응급실 한복판에서 가랑이와 허벅지에 구멍이 난, 낡은 잠옷 바지를 입고 있게 됐다.


바로 이 바지다. 구멍이 난 위치도 하필...


 곧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온갖 검사를 시작했다. 링거를 놓고, 양팔과 양 발에서 피를 뽑고, 얼굴에 감각은 있는지, 눈은 얼마나 보이는지 등 모든 검사가 다급하게 진행됐다. 침대째로 옮겨져 MRI와 CT, 엑스레이를 찍기도 했다.(여전히 구멍 난 잠옷 바지를 입은 채로 병원 곳곳을 누볐다)


 나는 심각하게 어지럼증을 겪는 상태라 ‘낙상 주의’ 표시가 붙은 환자였고, 일어서서 화장실에 가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았다. 수액을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평소보다 몇 배로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진다. 결국 같이 구급차를 타고 왔던 내 친구가 누워있는 내 소변을 3번이나 받아내야 했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도 잠시, 끝도 없는 검사에 지쳐갔다. 잠깐 수액만 맞고 나면 금세 괜찮아져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에 앞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1시간 정도 결과를 기다렸다.


 엄마가 걱정할까 봐 끝까지 연락을 안 하려고 했는데, 입원 수속을 하러 간 친구가 친보호자 연락처가 필요하다는 병원의 요구에 엄마한테 전화하는 바람에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남동생의 코로나 확진으로 가족 모두가 격리 상태였다. 게다가 가족 모두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 몸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까지 입원했다고 알리려니 맘이 썩 좋지 않았다. 친구에게서 건네받은 전화 속 엄마의 목소리는 날 안심시키려는 듯, 밝았다. 나도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혹시 몰라 검사해보는 거라며 웃고 통화를 끝냈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저녁때가 되었다. 눈이 잘 안 보여서 뭔지도 모르겠는 수액들을 팔에 줄줄이 맞고, 간호사가 혈전 뚫는 약이라며 건네준 주황색 알약을 한번에 5개나 삼켰다.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외에도 따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친구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사실 그때 친구 눈이 4개로 보여서 마치 에일리언 같은 모습이었지만, 친구가 실없는 농담을 하며 곁을 지켜준 덕분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병동으로 옮겨질 때에야 PCR을 하지 않은 보호자는 출입금지라는 조항 때문에 혼자가 되었다.


 일반 병실로 입원한 후에 누군가가 자꾸 찾아와 걷기 연습을 시켰는데, 눈도 다 두 개로 보이고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잘 걷지를 못했다.('누군가' 라고 표현한 이유는 눈이 잘 안 보여서 실제로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일자로 걸어보아라, 발뒤꿈치를 붙여보아라 등 정말 기본적인 것을 시키는데도 제대로 해내질 못하니 자괴감이 강하게 몰려왔다. 하루아침에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니 절망감만이 몸을 휘감았다.

 

 일단 의사의 말로는 오늘 급하게 진행한 검사들에서 별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제일 의심되는 것은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뇌질환이었는데, 다행히 아직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하여 그나마 안심했다.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보내주려 찍었던 입원 직후의 병실 사진

 


 한쪽 눈을 가리면 좀 더 잘 보여서, 간호사에게 부탁해 오른쪽 눈에 거즈를 붙였다. 혼자가 되자 왠지 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오기가 생겼다. 최대한 씩씩하게 버텨야지 하는 생각에 구멍 난 잠옷을 벗어 환자복으로 깨끗하게 갈아입고, 이 와중에 세수와 양치도 했다.(입원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친구가 응급실 대기 시간 중 잠시 집에 다녀와 챙겨주었다.) 그리고는 친구와 가족들을 안심시키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셀카도 찍어 보냈다.


잘 안 보여서 대강 이쯤이겠거니 하고 카메라 들이밀고 찍은 사진


 병실은 4인실이었는데, 나를 포함해 3명만 있었고, 나머지 두 분은 이미 자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여전히 두 개로 보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자고 일어나면 눈이 거짓말처럼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한 응급 검사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 여겼다. 자고 나면 싹 나을 거라 생각하자 한결 맘이 편해졌다. 멀리 복도에서 들려오는 간호사의 카트 바퀴 소리를 들으며 내일은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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