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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r 11. 2022

4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DAY 4 : 입원 넷째 날


 새벽 내내 열이 심하게 났다. 38.6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간호사가 열을 내리기 위해 아이스팩을 끼고 있으라며 주었다. 너무 추운데 겨드랑이에 아이스팩을 대라니...... 조금 대고 있다가 저만치 던져버렸다. 피는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뽑는지...... 여기 들어와서 뽑은 피로 수혈을 한다면 아마 여럿은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도 많이 뽑아서 간호사가 검사가 끝나면 내 피가 모자라 이 피를 다시 넣어줘야 할 것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의 피검사가 이어졌다.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니 안 할 수도 없고... 이불을 부여잡고 빨리 뽑아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채혈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편이라 여러 차례 찌르는 데다가, 하도 잦은 횟수로 뽑아대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피를 뽑고 나서도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오늘은 보호자가 있을 거라는 그 기대 하나로 아침을 버텼다. 아침 식사에 딸려 나온 두유로 배를 채우고 친구를 기다렸다. 오늘은 금요일이었지만 친구가 일을 빼고 나를 보러 와준다고 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장 힘이 나는 하루였다. 병을 이겨내는 힘은 스스로의 의지나 면역력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사람에게서 전달받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또 사람으로 산다. 톨스토이 아저씨는 역시 똑똑해, 맞는 말만 한다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강아지를 유치원에 맡기고 바로 병원을 찾은 친구가 커튼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만나면 너무 반가워서 웃음만 나올 것 같았는데, 실제의 나는 친구를 보자마자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나 그동안 여기 혼자 있었어"와 같은 이상한 말들이 나도 모르게 울음과 함께 입 밖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왠지 모르게 서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친구는 울면 열이 더 오른다며 날 달래기 바빴다. 한동안 울다가, 드디어 말할 상대가 생긴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열심히 친구를 쳐다보고, 또 대화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솜이 엄마’로 불리는 나는, 우리집 강아지 ‘유솜사탕’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내 아이디도 강아지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한 후 솜이와 강제로 떨어져 있게 되자 솜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솜이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묻어 솜이 특유의 향을 한껏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심정을 잘 아는 친구는 내가 만들어놓은 솜이의 사진 앨범을 들고 와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례대로 정리한 사진을 넣어둔 앨범이다. 그 앨범을 보며 울고 웃다가, 얼른 나아서 집에 가 실제 솜이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가 가져다준 솜이 사진 앨범


 사람이 아프면 마냥 외로워지나 보다. 며칠간 혼자 병원에 있는 게 싫었던 나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렇게 싫던 식사 시간이 찾아왔는데도, 혼자 먹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180도 다르게 느껴졌다. 친구는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먹었는데, 먹는 내내 친구가 두 개로 보여도, 마냥 행복했다. 이날 친구와 같이 먹은 점심이 그동안 입원해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게 먹었고, 또 가장 많이 먹었던 식사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친구의 도움으로 샤워실에서 씻기도 했다. 입원하고 한 번도 씻지 못했었는데, 씻고 나니 너무 개운했다. 드라이기가 없어 친구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추워지는 바람에 이불을 덮고 쉬는데, 계속해서 몸이 안 좋아졌다. 마치 감기 기운처럼 말이다. 나는 막연히 샤워를 해서 몸이 추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기적으로 재는 열체크에서도 자꾸 높은 온도가 나왔다. 친구가 와서 너무 기쁜데, 너무 아파서 계속 잠만 자게 되었다. 자다 눈을 뜨면 친구가 아직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불을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어도 오한이 멈추지 않았다. Photo by 친구.

 

 잠을 자다 깨다 하면서도, 목이 너무 아프고 열이 나서 견디기 힘들었다. 몸살 증세도 있는 것이 마치 코로나 같았다. 그런데 4일 내내 병원에만 있었으니 감염 경로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몸살이 왔나 싶었다. 오후는 아파서 누워만 있느라 시간이 빨리 갔다. 오한까지 와서 양말을 두 개나 신고 옷까지 덮었지만 너무 추웠다. 친구는 내 저녁까지 야무지게 챙겨주고는 내일 퇴근하고 다시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아쉬웠지만 내일이면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친구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더욱더 공허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입원한 지 고작 4일 차인데, 왜 이렇게 외롭고 힘든 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개월씩 입원해 있는 장기 환자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깥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얼른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병원의 외관이 어떻게 생긴지조차 모르면서, 난데없이 실려와 이 안에 갇혀있는 것이 왠지 너무 억울하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나는 왜 뇌경색 진단을 받았는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그 자체가 납득이 안 가고 믿기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도 찾지 못했기에 지금 이 상황이 힘들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뇌경색 환자고, 얼른 여기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빨리 낫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한없이 바라봤던 창문



 그런데 친구가 집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간호사가 코로나 검사를 하러 찾아왔다. 의심 환자가 아니면 검사를 하지 않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증상이 있으니 혹시나 해서 하는 거겠지 하고 검사를 했다. 당시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오한과 기침, 가래, 발열, 근육통, 심한 인후통이 날 괴롭혔다. 이제 눈이 안 보이는 것은 뒷전이었다. 밤새 이불을 아무리 뒤집어써도 얼음 속에 있는 것처럼 추웠다. 간호사에게 이불을 좀 더 달라고 하자, 열이 나서 추운 거라며 이불로 꽁꽁 싸매면 열이 더 안 떨어지니 이불 대신 해열진통제 수액을 놔주겠다고 했다. 진통제 기운이 돌고 나서야 간신히 잠에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네 번째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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