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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r 11. 2022

5화. 엎친데 덮친 격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DAY 5 : 입원 다섯째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열은 너무 높고, 해열진통제 수액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었다. 몇 차례나 수액을 맞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날 찾아오는 간호사마다 결과는 나왔는지 물어봤지만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요즘 검사 수가 너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진통제 기운이 돌고 어느 정도 참을 만한 상태가 되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태블릿이나 핸드폰을 볼 때 더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좀 익숙해질 겸 태블릿으로 병실 풍경을 그렸다.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선 하나를 긋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든 선이 삐뚤빼뚤했다. 


그때 그린 그림. 지금 보니 정말 삐뚤빼뚤하다.

 

 

그림을 그릴 당시 실제 병실 모습. 저 까만 물체는 어제 친구가 깜빡하고 두고 간 노트북이다.



  다 그리고 나서도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런데 점심 식사가 나올 때 까지도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안 좋아 아침을 걸렀던 나는 점심을 꾸역꾸역 챙겨 먹고 잔반을 가져다 놓으러 일어섰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간호사 두 명이 빠르게 다가와 날 붙잡았다. 한 명은 자기가 갖다 놓겠다며 내 식사 쟁반을 들고 갔고, 한 명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만 내 옷소매를 잡아끌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했다. “어떡해... 양성 떴어......”라고 말이다.(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서 그런가 반말을 했다)


 어이도 없고 힘도 없던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근데... 저.. 병원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데요......?”라고 되물었다. 간호사는 “그러니까, 모르겠어......”라고만 대답한 뒤 날 이끌고 반대편 복도 끝에 있는 처치실에 가두었다. 처치실은 병실이 아니라 약품 같은 것을 놓고 간단한 치료를 하는 방이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사이 간호사들이 내 침대와 짐을 모조리 끌고 와 처치실에 두었다. 


처치실에 덩그러니 놓인 내 침대와 물건들


 화장실이 없어 두리번대고 있자 간호사가 플라스틱 대변기를 가져오더니 여기 있는 동안은 이걸 사용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나름 생각해서 두 개나 챙겨 왔다며 웃는데, 나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뇌경색도 모자라 코로나 확진이라니...... 다시 한번 절망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확진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방역수칙을 지켜왔는데, 병원에서 치료와 검사만 착실히 받다가 확진된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제 밥을 두 끼나 같이 먹은 친구가 생각이 나서 얼른 전화를 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친구는 PCR 검사를 위해 바로 검사소로 향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대변기는 이렇게 생겼다.


 절망도 잠시,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주르륵 났다. 이 방에는 화장실이 없는데...! 너무 놀란 탓인지, 점심을 먹은 직후라 그런지 배탈이 났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간호사가 가져다준 플라스틱 대변기뿐인데 거기에 이 성난 폭풍을 내보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급히 호출기를 눌러 간호사에게 이야기했다. “저… 배탈이 난 것 같은데... 장갑을 끼고라도 화장실 한 번만 가면 안될까요......ㅜㅜ 너무 급해요ㅜㅜ”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타이밍에 배탈이 났는지 너무 기가 막힌다. 입원 내내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는데 하필 그때......)


 수치심이고 뭐고 없었다. 그냥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간호사는 곧 옮길 거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1분이 1년 같은 시간을 보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간호사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나를 바로 옆에 있는 4인실로 옮겼다. 입원자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격리 병동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여기서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 만세를 부르며(사실 무교다) 4인실 내부에 딸린 화장실로 직행했다.


 무사히 볼일을 보고 나오니 내 짐이 안쪽 침대에 옮겨져 있었다. 한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확진자의 짐은 이중포장을 해야 한다며 비닐을 여러 개 가져와 짐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신발부터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다 집어넣고 짐을 모두 정리하자, 이제 연락이 올 때까지 대기하라며 날 두고 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나중에 이 병실을 쓸 환자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무서워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편에 비스듬히 앉아만 있었다. 앉아서 창밖을 보는데, 이전 병실과 다른 방향이라 색다른 풍경이 보였다. 간판이 빽빽한 상가와 수증기가 나오는 공장의 굴뚝 등. 나는 여기서 고군분투 중인데, 밖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일상인 것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바라보고 있던 풍경


 그러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와 나는 가족관계가 아니라서, 역학조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PCR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밥도 같이 먹고 밀접 접촉했는데, 나는 병원 내 확진이 된 케이스라 확진되었다는 문자조차 오지 않아 이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친구는 신속항원검사만 마치고 음성이란 결과를 들은 채 집으로 갔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일상에 지장이 간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이송 기사님이 오셔서 날 데리고 코로나 격리병동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 걸어 다닐 수 있었기에 짐을 나눠 들고 걸어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음압 병동이었다. 코로나 병동이라고 해서 혹시 혼자 병실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잠시 했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일반 병실보다 더한 곳이었다. 4인실 정중앙에 위치한 음압기의 소음이 엄청났고, 커튼을 모두 떼어버려 환자끼리 서로 마주 보고 있어야 했다. 간호사들은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다녀서 마치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병동의 간호사들은 딱 이런 모습이었다. (출처 : 한국일보)


 내가 병실로 들어서자 할머니들이 '젊은 사람이 들어왔네' 하고 수군댔다. 나를 제외한 세 분은 이미 이곳에 오래 계셨는지 서로 많이 친해진 듯했다. 당시 나는 아프기도 했고, 이제 곧 퇴원하나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시 7일을 갇히는 건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절망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누워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방호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내 뇌경색 치료를 담당했던 신경과 의사였다. 지금 열이 너무 많이 나는데 이게 코로나 때문에 나는 건지 뇌 염증 때문에 나는 건지 확실하지가 않다며, 마지막으로 뇌척수액 검사를 해서 문제가 없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자택 치료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에게는 그저 '자택치료'라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뇌척수액 검사는 내가 자꾸 열이 날 때부터 줄곧 의사가 얘기를 꺼냈던 건데, 척추에 바늘을 넣어 척수액을 뽑는 검사이다. 부작용도 많고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 조금 꺼려졌었는데, 나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뇌척수액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출처 : 서울아산병원)


 뇌척수액 검사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검사 시간을 포함해 총 6시간 정도는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한다. 척수액을 뽑고 나서 충분히 누워있지 않은 상태로 몸을 일으키면 심각한 두통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플라스틱 대변기를 쓰기 싫어서 미리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고 하자 바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부분마취를 하긴 하나, 안 해도 될 정도로 전혀 아프지 않다고 날 안심시켰던 간호사의 말은 순 뻥이었다.(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일단 마취 주사부터 너무너무 아팠고, 척수액을 뽑는 바늘도 아팠다. 코로나 증세 때문에 기침이 터져 나오자 자연스럽게 허리도 들썩였고, 바늘이 들어간 검사 부위도 같이 아려왔다. 그래도 검사 내내 이걸 하면 내일 집에 보내주겠다는 그 말만 믿고 꾹 참았다. 


 검사가 끝나고 그대로 누운 나는, 쉴 새 없이 떠드는 병실 메이트 세 명의 수다 속에서도 잠이 들었다. 확진되고, 병실을 옮기고, 검사까지 했으니 알게 모르게 많이 피곤했나 보다. 식사시간이 되어 불도 켜지고 주변이 정말 시끄러웠는데도 3시간 정도를 내리 잠만 잤다. 간호사가 오히려 먼저 찾아와 핸드폰이나 물, 화장실 등 필요한 건 없냐고 계속 물어볼 정도였다. 사실 목이 말랐지만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여기는 커튼도 없고, 사방이 안전용 CCTV로 가득한데, 대자로 누워서 소변을 보라니...! 절대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잠에서 깨고 나서는 시간이 너무 안 가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잘 안보였지만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동생과 온라인 루미큐브를 했다. 숫자도 색깔도 잘 안 보였지만 시간은 빠르게 보낼 수 있었다. 게임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지루한 시간이 부디 빨리 가길 바라면서 계속 누워있었다. 오후 4시쯤 검사를 해서 오후 10시까지 누워있어야 하는 터라 저녁도 먹지 못했다. 오후 9시가 넘어가자 슬슬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대변기를 쓰지 않고 걸어서 사람답게 볼 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드디어 10시가 되고 다른 환자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나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검사한 부분이 아프거나 두통이 오진 않았다.


 시원하게 화장실에 다녀와서 약을 먹어야 하는 관계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음압 병동에 와서 처음 먹는 밥이었는데, 확진자라 그런지 모두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었다. 잠시 코로나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생각하며 포장을 풀었다. 전국에 코로나 병동이 한두 개도 아닌데, 모든 환자의 일회용 용기부터 마스크까지 버려지는 쓰레기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물론 바이러스의 전염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는 코로나 병동의 식사


 이 병동의 밥은 뭔가 다를까 했지만 역시나 늘 먹는, 똑같은 밥이었다. 어둑어둑한 병실 안에서 잠자는 세 명의 코골이를 들으며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래도 내일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리 힘들지 않았다. 투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인 것 같다. 똑같이 힘든 시간이어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만 있으면 버틸만한 시간이 된다. 역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나 보다.


 그런데 밥을 먹는 내내 뭔가 이상했다.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 원래도 간이 약한 밥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시험 삼아 두유를 마셔보았다. 그런데 달달하던 두유가 마치 물 같았다. 이번에는 이전 병실에서 악취가 날 때마다 날 구해줬던 아로마 오일을 코 밑에 발라보았다. 굉장히 화해서 막힌 코를 한번에 뚫어주는 효과를 지닌 오일인데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그저 따끔따끔한 피부의 통각만 느껴졌다. 후각과 미각을 잃은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에게 종종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듣긴 했지만 막상 내가 그 당사자가 되니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약은 먹어야 하기에 꾸역꾸역 절반 정도를 먹고 약을 먹었다. 다 먹고 난 용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우선 동봉된 노란 봉투로 싸매고, 호출기를 눌러 식사를 마쳤다고 알렸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내가 병실 내 휴지통에 버리면 한 번에 가져가 태우는 것이었다. 괜히 나 밥 다 먹었다고 TMI 알려준 사람이 되었다. 어쩐지 답을 하는 간호사의 반응이 차갑더라니)


 그 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으니 한층 쾌적하게 느껴지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내일 퇴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맘이 가벼웠다. 게다가 내일은 일요일이니 같이 사는 친구가 일을 쉬어 나를 데리러 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낯선 병동이지만 그 희망을 가지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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