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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r 11. 2022

6화. 병실 메이트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DAY 6 : 입원 여섯째 날


 병원에서의 하루는 5시 반에 시작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먹기 전에 꼭 양치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했다. 그리고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침식사를 하고,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보았다. 일반 병실이나 집중치료실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서 미리 오프라인 저장한 콘텐츠만 볼 수 있었는데, 여기는 인터넷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OTT 감상이 자유로웠다.(왜일까. 확진된 것도 서러우니 인터넷이라도 맘껏 하라고?) 그래서 평소 보고싶었던 ‘씨스피라시’나 ‘죽어도 선덜랜드 시즌 2’ 같은 것을 보았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지루한 병실 생활을 견디기엔 이만한게 없었다.

태블릿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일요일이라 회진을 오는 의사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고, 아무래도 어제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했던 약속이 힘들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얼핏 듣기로는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퇴원 결정을 내려도, 내가 확진자이기 때문에 감염내과와 보건 당국이 승인해야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미 요청이 넘어가긴 했으나 일요일이라 감염내과의 응답이 없었고, 아마 내일 업무시간이 되어야 답이 올거라고 했다. 퇴원이 하루 늦어졌으나 그다지 큰 타격은 없었다. 코로나 증세로 너무 아팠던 터라 집에 갈 의욕조차 잃었기 때문이다. 언제 퇴원하지 하는 생각은 버리고 시간 때우기에 열중했다. 


 코로나 병동은 모든 창문을 열 수 없도록 되어있고, 왜인지 밖을 보는 것조차 금지되어 불투명 처리가 되어있다. 바이러스가 전염될까봐 문을 못 여는 것까진 알겠는데...왜 창문 밖을 보면 안되는거지? 뿌연 연기같은 색깔의 시트지가 덮혀있는 창문은 안 그래도 답답한 이 병실을 한층 더 답답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대신 시트지 사이사이로 햇빛은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있던 자리는 햇빛이 정말 끝내주게 드는 자리였고, 수액을 체크하러 온 간호사들이 눈이 부셔서 눈을 깜빡일 정도였다. 나는 햇빛이 내리쬐는 수액을 쳐다보며 너무 맑고 투명해서 저걸 수채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병동에서 찍은 수액. 사진에서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햇빛이 정말 강했다.


 아무런 검사도, 치료도 없이 병실 침대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환자들에게 눈길이 갔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셨는데, 그 분들도 서로 대화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정말 많은 얘기들을 하셨다. 


 처음부터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할머니들만이 할 수 있는 맵디 매운 65금 막장 토크에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분의 할아버지는 같이 사는 여자가 다섯이나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젊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집을 나간 아버지가 말년에 중풍이 걸리자 다시 집에 기어들어왔다는 이야기까지. 지루하기만 한 병실 속에서, 임성한 작가 뺨치는 반전과 서스펜스가 할머니들 특유의 입담을 거쳐 실시간 라이브로 들려오니 조용히 넷플릭스를 끄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짜여진 각본으로 만든 넷플이 대수겠는가. 이건 무려 100% 실화인데!) 중풍에 걸린 아버지는 바람난 상대가 일찍 세상을 뜨자, 아픈 본인을 보살필 사람이 없어서 몇십 년 만에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딸들과 찬성하는 아들들로 의견이 갈렸다는 부분에서는 에어팟을 슬그머니 빼고 딸 팀의 입장에 서서 맘 속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결국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아들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할머니가 몇 년동안이나 병수발을 들었으며, 너무 고생을 해 돌아가실 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는, 고구마 백개쯤 먹은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안 그래도 커튼도 없이 뻥 뚫린 공간에 저런 얘기들을 끊임없이 듣고 있으니 각자의 사정과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너무나도 개성이 강해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나의 병실 메이트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겠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쓰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어 이 얘기를 쓰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보고 느꼈던 바를 생생히 공유하려면 언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원생활을 논할 때 병실 메이트를 빼놓고 얘기하긴 어려우므로 인물이 특정되지 않을 정도로만 몇 자 적어보겠다. 모두 직접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내 오른쪽 침대에 누워 계신 분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건강했는데, 3차 백신을 맞고 쓰러져 양 다리와 한쪽 팔에 마비가 왔다고 한다. 거동이 어려워 식사도 간호사가 먹여줘야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서 수시로 전화가 왔는데 불편한 손 때문에 전화받기가 어려워 그나마 이 병실 내에서 제일 잘 움직이는 내가 전화를 받아 손에 쥐어드렸다. 전화는 꼭 스피커폰으로 받기 때문에 병실 내 모든 사람이 내용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내용을 밝힐 수는 없으나 마음을 담은 응원 전화를 받고 한참 동안을 우시기도 했다. 이전까지 너무도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못 걷게 되었으니 그 심정을 알 것만 같아 나도 맘이 아팠다. 나도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하루를 보냈던 기억에 왠지 심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독실한 교인이셨는데, 본인을 돕는 간호사들에게 늘 따뜻한 목소리로 고마워, 미안해 등 표현을 자주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분의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탁구가 취미였을 정도로 건강하던 사람이 백신으로 이렇게 되다니! 나와 같은 뇌졸중센터에서 오셨고, 그 인과관계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명확해 진단서에 '백신 후유증'이라고 써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는데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돈만 주면 다냐며, 10억을 준다해도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억울해 하셨다. 3차 백신 접종률이 62%에 달하는 요즘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백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부작용에 대해 말로만 들었었는데, 실제로 병원에 들어와보니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가 정말 많았다.)


 대각선에 마주보고 계신 분은 이 병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셨다. 허리를 곧게 세우지 못해 구부린 상태로 다니는데, 그래도 3명 중 유일하게 거동이 가능해 혼자 화장실에 다니셨다. 위에서 소개한 내 옆자리 환자 분과 같이 이 병동에 7일이나 갇혀 있었다고 했다.(씻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병동이다 보니 실제로 이런 표현을 쓰셨다.) 할머니의 짧은 머리는 자고 일어나면 하늘로 솟구쳐 있었는데, 왜인지 그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커튼이 없다 보니 식사시간마다 모두가 마주보고 밥을 먹게 되는데,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고는 맛없어도 살려면 먹어야한다는 얘길 해주곤 하셨다.(먹기 싫어서 느릿느릿 수저를 뜨던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외할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것 같아서 보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보고싶어지기도 했다. 몸이 안 좋아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도중, 병원 내 감염으로 확진되어 여기로 옮겨졌다고 했다. 수술 부위를 매일 소독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한 채 갇혀 있다며 답답해 하셨다.

 

 마지막으로, 내 맞은 편에 마주보고 있는 환자는 60대 초반으로 비교적 젊은 분이었다. 예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최근에 그 사고와 연계해서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가 역시 병원 내 감염으로 돌연 확진 되어 내가 이 병실로 오기 이틀 전에 들어왔다고 한다. 자립은 어렵지만, 팔을 걸쳐서 기대 걸을 수 있는 보조기구를 사용해 걷기 운동을 하셨다. 사실 본인의 몸이 아프다 보면 예민해질 수 밖에 없고, 말이 차갑게 뱉어지기도 한다. 이 분 역시 악의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간호사들에게 가시 돋힌 말들을 자주 해서 트러블이 자주 생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편의점 알바 후기 중에 “봉투 드릴까요?” “그럼 이걸 들고가란 거에요?”하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 분이 바로 그런 화법의 소유자다. 

 

 사람마다 피부 두께도 다르고, 혈관을 찾는게 어려워 주사 바늘을 넣기 유독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맞은편 환자 역시 혈관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잘 안보여서 여러 번 고통받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간호사의 능력문제가 아니라 내 혈관이 찾기 어려운 탓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분은 그 정도가 좀 심각했나 보다. 한 간호사가 아무리 팔을 살펴 보고 혈관을 찾아 찔러봐도 수액 바늘을 못 꽂았던 것이다. 이 분은 다시 시도해보려는 간호사에게 이번에도 못 찾으면 어떻게 할거냐며 다그쳤고, 못하는 사람 말고 잘하는 간호사를 데려오라며 소리쳤다. 


 결국 그 간호사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병실을 나갔고, 더 연차가 높다는 간호사들이 줄줄이 들어와 시도했지만 그 분의 언어폭격 아래 진정하고 혈관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수액을 맞지 말자는 결론이 나서 혈관찾기 대소동이 끝을 보나 했는데, 니네가 못해놓고 왜 내가 수액을 못 맞냐는 항의에 계속되었다. 거의 반나절이 걸린 끝에 어느 용감한 간호사 한 명이 비장한 눈빛을 한 채 전장으로 들어섰고, 몇번의 시도 끝에 결국 바늘이 들어갔다. 


 잠시 딴 길로 새서 간호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을 매일 대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맞은편 환자를 비롯해 그 어떤 환자가 불평불만을 하더라도 간호사들은 특유의 유치원 선생님 같은 말투를 절대 잃지 않았다. 상대의 나이가 많을수록 간호사의 말투는 점점 더 어린 아이를 대하듯 톤이 높아졌다. (사람은 아이로 태어나 다시 아이가 된다던데...)


 코로나 병동 내 친화력 만렙인 한 간호사는 출근할 때마다 병실 문을 벌컥 열고 "안녕! 00병동 비타민 왔어요~ 할머니 안뇽! 이쪽 할머니도 안녀엉!!"하고 인사하기도 했다. 소심한 I인 나는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E의 기운에 화들짝 놀랐지만, 애교섞인 목소리에 친근감 넘치는 반말이 삭막한 병실 속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을 보고 말이 가진 힘을 생생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입원 생활 동안 수많은 간호사를 만나면서, 간호사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고생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코로나 병동은 방호복을 입고 있어야 해서 선명히 앞을 보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그 상태로 수액을 놓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수액 바늘을 놓는 것은 정말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수차례 찔리고 멍이 들면 화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지나쳤기 때문에 병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 환자는 하루에도 몇번씩 침대 시트를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며, 급한 일이 아님에도 호출기를 눌렀을 때 빨리 오지 않으면 화를 버럭 냈다. 새로 가져온 이불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바꿔오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하루에 3번 이상 시트를 간 것 같은데, 베개까지 이렇게 자주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간호사가 "베개 시트는 아직 깨끗해서 우선 여기에 따로 둘게요~" 라고 말하자 “그럼 지금 나보고 갈라는 거에요?!” 라고 답해 간호사가 다시 황급히 갈아끼웠던 적도 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화법을 계속 듣다보니 나까지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바람에 신경이 쓰였지만, 나중엔 얼마나 오래 병원생활을 하고, 또 몸이 아프면 저러실까 싶기도 했다.


 이 분들은 모두 다른 치료를 위해 장기 입원해 있다가 코로나에 감염된 케이스였다. (나 역시도 병원 내 감염이라 생각했지만, 첫 날 응급실에서의 체온이 높았다는 이유로 이미 밖에서 걸린 잠복기 상태로 입원한거라는 결론이 났다.) 이 분들 모두 기존의 치료와 재활을 멈춘 채로 격리 병동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사실 병원이라는 곳은 병을 없애기 위해 오는 곳인데, 오미크론이 얼마나 기승이면 낫기 위해 온 환자들에게 새로운 병을 안기는 걸까. 듣자하니 병원 내 감염인 것이 확실해지면 병원 측에서 보상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내 몸이 아픈데 보상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모두들 보상이고 나발이고 재활치료를 못하는 상태로 써버린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3명의 개성 강한 병실 메이트와 함께 음압병동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때쯤에는 의욕도 기력도 다 잃어버려 이 세 명과 시간을 보냈다는 거 말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내 눈이 언제 돌아올지, 회사는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에 가득 찼을 뿐이다. 이제 나는 너무나 지쳤다. 퇴원을 바라는 갈망마저 힘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제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집에 가봤자 가서 이렇게 아플거면, 같이 사는 친구와 솜이에게 피해만 끼치겠지. 그냥 말 그대로 살아만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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