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담았던 내 인생
순식간이었다. 이번엔 바로 눈앞에 네가 있었다. 전처럼 웃고 있는 네 모습이 생생했다. 넌 웃고 있는데 난 울고 있다. 이렇게 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고요한 공기 속에 내 울음소리만 들었다.
그러다 눈이 떠졌다. 일어나 보니 여전히 울고 있었다. 시간이 야속하게도 지나 아침이었다. 이제 와 왜 이러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의 처음처럼 네가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다. 실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나누고 싶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처럼 묶인 관계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네가 옆에만 있으면 좋겠다고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넌 나만큼 이렇게 내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씩씩한 너는 네 삶을 잘 채워갔을 것 같지만 그렇게 반갑게 웃어줬던 거면 조금이라도 생각했진 않을까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출근을 하는데 세상과 내가 분리된 느낌이었다. 다들 바쁘고 활기차고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흑백이었다. 에너지가 다 떨어진 휴대폰처럼 그렇게 일에 휘청이다 집에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손에 쥐고 티비를 켰는데 네가 좋아했던 예능 프로그램이 나온다. 지금 다시 공간을 둘러보니 네 흔적이 다분해 마음이 착잡해진다. 쉬는 날이면 습관처럼 소파에 엉겨 붙어 책을 읽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배가 고프면 버터로 구운 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다가 목마를 타이밍에 네가 챙겨주는 우유는 참 맛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난 이런 다정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너에게 더 빠졌던 것 같다. 머리를 말리기 싫어하는 나를 앉혀 감기 걸릴까 걱정스러운 손길로 말려주는 부드러운 네 손길이 좋았다. 늦잠을 잔 주말 햇살처럼 네 품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마음을 간지럽혀 미소 짓게 만들었다. 차가운 나에게서 따뜻함을 찾는 너라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된 줄 알았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잠시 착각을 한 건가 아름다움을 탐했던 탓인가 네가 없는 내 삶은 삭막해졌다. 막아두었던 냉기가 쏟아져 더 차가워지고 숨 막히는 검정처럼 공허하고 어두워졌다.
사람이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잊히는 걸까 잊고 싶어 기억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어딘가 한구석에 꽁꽁 숨겨 꺼내지 못하게 막아놓은 걸까. 절대 다시는 꺼낼 일 없다고 생각했던 네가 영영 없어진 줄 알았는데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추억의 틈을 비집고 결국 다 기억나 버렸다. 잠깐 마주친 얼굴이 열쇠가 되어 감정들이 살아났다.
다시 너를 만나면 사랑은 슬픔이라고 말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아름다운 슬픔이라고 답해줘야겠다.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독하지만 지독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못다 한 말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