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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백 Nov 02. 2022

손잡이

손잡이는 잡았던 손을 전부 기억해요     


철봉에 매달린 구백구십구 개의 손가락이 손을 놓을 무렵 

장바구니를 버티는 아흔아홉 개의 손목이 동시에 끊어질 무렵

맨몸으로 하루를 여닫는 툭 튀어나온 골목 혀가 창백해질 무렵     


달려가는 일보다 뜨거워지는 일보다 열리고 닫히는 일보다

손을 잡는 일이 더 중요한 그런 때가 있어요

무엇의 일부가 아니라 기능이 아니라 

전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버스를 대표하는 손잡이

냄비를 대표하는 손잡이 

창문을 대표하는 손잡이

가방을 대표하는 손잡이     


서로의 날씨를 증명하는 심장보다 더 뜨거운 언어   

손가락과 손바닥이 만나는 수련(睡蓮)의 잠꼬대를 들어 보세요         


손을 닮은 손잡이를 본 적 있나요?     


나는 손잡이보다 더 종교에 가까운 말을 알지 못해요  

힘겨운 방향을 보듬어 주는 자비

제 몸을 모두의 골격에 맞추어 주는 자비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양손잡이든 손이 없든 

손가락이 네 개든 다섯 개든 여섯 개든 발가락이든 

손잡이는 손에게 마중을 나가요   

진화의 신은 손보다 손잡이를 더 사랑했으므로         


중심을 잡아 주는 마중 

공간을 열어 주는 마중

무게를 덜어 주는 마중     


손이 쥘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은 손이니까요      


나도 누군가에게 손잡이가 되어 

함께 흔들리며 함께 여닫으며 함께 버티며 함께 녹슬며 

한길을 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한 사람, 어머니 

마중 나온 당신을 만나면 나는 호미처럼 누울게요 

세상의 모든 손잡이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어 전기처럼 

찌릿찌릿한 것을       


버림받은 손잡이만 모아 놓은 가게가 있다면 좋을 텐데 

손잡이는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걸요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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