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는 잡았던 손을 전부 기억해요
철봉에 매달린 구백구십구 개의 손가락이 손을 놓을 무렵
장바구니를 버티는 아흔아홉 개의 손목이 동시에 끊어질 무렵
맨몸으로 하루를 여닫는 툭 튀어나온 골목 혀가 창백해질 무렵
달려가는 일보다 뜨거워지는 일보다 열리고 닫히는 일보다
손을 잡는 일이 더 중요한 그런 때가 있어요
무엇의 일부가 아니라 기능이 아니라
전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버스를 대표하는 손잡이
냄비를 대표하는 손잡이
창문을 대표하는 손잡이
가방을 대표하는 손잡이
서로의 날씨를 증명하는 심장보다 더 뜨거운 언어
손가락과 손바닥이 만나는 수련(睡蓮)의 잠꼬대를 들어 보세요
손을 닮은 손잡이를 본 적 있나요?
나는 손잡이보다 더 종교에 가까운 말을 알지 못해요
힘겨운 방향을 보듬어 주는 자비
제 몸을 모두의 골격에 맞추어 주는 자비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양손잡이든 손이 없든
손가락이 네 개든 다섯 개든 여섯 개든 발가락이든
손잡이는 손에게 마중을 나가요
진화의 신은 손보다 손잡이를 더 사랑했으므로
중심을 잡아 주는 마중
공간을 열어 주는 마중
무게를 덜어 주는 마중
손이 쥘 수 있는 제일 좋은 것은 손이니까요
나도 누군가에게 손잡이가 되어
함께 흔들리며 함께 여닫으며 함께 버티며 함께 녹슬며
한길을 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한 사람, 어머니
마중 나온 당신을 만나면 나는 호미처럼 누울게요
세상의 모든 손잡이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어 전기처럼
찌릿찌릿한 것을
버림받은 손잡이만 모아 놓은 가게가 있다면 좋을 텐데
손잡이는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걸요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