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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Oct 24. 2021

호랑이가 엄마가 아님을 알아챈 오누이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5)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

엄마가 아님을 눈치챈
아이들

밖을 보니 분명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엄마가 확실히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어? 분명 엄마 옷인데... 우리 도망가자."

오빠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호랑이를 피해 뒷문으로 피신합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모습으로 나타난 호랑이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게 되었을까요?


무언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겠지요.

엄마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의심 없이 문을 그냥 활짝 열어주었겠지요.


이는 호랑이가 무엇인가 미심쩍은 모습을 보여줬을 겁니다.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면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었을 것이고요. 인간의 본성, 사심 없는 진심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절대 상대방에게 불안, 공포와 같은 느낌을 전하지 않아요. 상대가 나에게 불안과 공포, 의심이 들만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다른 사심, 호랑이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걸 순수한 마음의 아이들은 느끼게 된 거죠.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기까지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룩해왔어요.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덕에 의료가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세탁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등과 같은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집안일하기 바쁘던 사람들이 기계에게 노동을 맡기고 개인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는 멋진 사회가 완성이 되었죠.


그러나 그 편리함이 상극을 가져와 버렸어요.

편안함의 감사함을 잊고, 모든 걸 지배하게 된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기 시작했어요. 편리함을 추구하며 쓴 일회용품으로, 귀한 줄 모르고 막 써버린 물로, 지금 소유하고 있는 물건보다 더 좋은 물건을 취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자연을 훼손하며, 몸살을 끙끙 앓는 지구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하여 이제는 상극이 없어져야 될 세상이 온 거예요.

현재처럼 상극이 계속 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정말 SF영화에서만 보던 상황이 실제 우리 지구에 닥칠지 모를 일입니다.

왜 돈 많은 부자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날 우주 정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생각해 볼 문제이지 않을까요?


대순전경 예시 9절 

그러므로 상제께서 오셔서 천지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를 세워 후천 선경을 열어 놓으시고 신도를 풀어 조화하여 도수를 굳건히 정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신 후에 인사를 조화하니 만민이 상제를 하느님으로 추앙하는 바가 되었도다.



우리의 편리함, 물질에 치우친 마음으로 인해 편리한 물질문명은 되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황폐해질 위기가 되어 버렸죠.

이제는 물질 만능주의가 아닌 인간이 최고의 되는 인존 시대가 오게 되었습니다. 물질과 권력에 힘입어 갑질을 하던 이들이 이제는 을로부터 지탄을 받고 죗 값을 받는 세상이 되었죠. 이제는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인간의 마음을 많이 얻은 마음 부자가 진짜 부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대순전경 교법 2장 20절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 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


교법 2장 56절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


교법 1장 63절 

선천에는 눈이 어두워서 돈이 불의한 사람을 따랐으나 이 뒤로는 그 눈을 밝게 하여 선한 사람을 따르게 하리라.


공사 3장 8절 

상제께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보라” 하시므로 그는 범ㆍ표범ㆍ이리ㆍ늑대로부터 모기ㆍ이ㆍ벼룩ㆍ빈대에 이르기까지 세어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후천에는 다 없애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인류 문명과 의학,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했던 상극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없어지게 된 시기.

황폐해질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떠나거나 큰돈 들여 지하 피난처를 준비할 것이 아니라, 진짜 피난처는 내 마음에 더 이상 상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상생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오누이도 호랑이와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을 치죠. 호랑이가 무서워서 일수도 있겠지만, 맞서 싸우는 건 일종의 상극의 기운이죠. 피하는 상생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죠.


오누이는 현명하게 알아차리고 호랑이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나에게 같은 호랑이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면 엄마를 죽인 호랑이를 죽이려 상극의 행위를 선택했겠죠.

호랑이인지 알아차리고 상극을 행하지 않는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인간 본성만이 바로 상극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인 거예요.


대순전경 교법 3장 15절 

또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갑오년 겨울에 너의 집에서 三인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렇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그 일을 어느 모해자가 밀고함으로써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고 하시니 경석이 낙루하며 “그렇소이다”고 대답하니라.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가 음해자에게 복수코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너의 부친은 이것을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하시니라. 경석이 세 아우와 함께 옆방에 모여 서로 원심을 풀기로 정하고 상제께 고하니 상제께서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 경석의 네 형제가 명을 좇아 행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방성대곡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너의 부친은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을 괴로워하니 그만 울음을 그치라” 이르시니라. 그 후에 “천고춘추 아방궁 만방일월 동작대(千古春秋阿房宮 萬方日月銅雀臺)”란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에 두게 하셨도다.


아버지를 죽인 모해자에게 복수코자 하는 악한 마음을 선으로 갚아 마음을 돌리라 하신 말씀처럼 말이지요.


영화 ‘기생충’



2019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화 ‘기생충’


반지하의 집에서 어렵게 생활을 유지하고 살아가던 백수 가족이 어마어마한 부잣집의 박사장 네로 가정부, 운전기사, 과외선생 등으로 취업을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 부잣집의 본 가족들이 비운 그 집을 본인의 집인 마냥 누리던 순간,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죠. 가정부로 취직하기 위해 몰아내었던 가정부의 남편이 그 집 지하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살아간 비밀공간이 나타나게 되죠. 그렇게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한 기생충들끼리의 치열한 싸움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모든 일이 밝혀지고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날, 물에 잠긴 반지하의 집에 다시 돌아오는 스토리를 담으며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대작입니다.




대체적으로 이 영화는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양극화 현상을 아주 적나라게 잘 표현했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그런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박사장의 부잣집의 지하에 본래 근무했던 가정부의 아픈 남편이 오랫동안 지내고 있었죠. 그 가정부를 몰아내고 그 집을 차지하게 된 가족들이 진짜 집의 주인인 박사장 네가 집을 지우면 그 집을 제 집 마냥 씁니다. 이전 가정부의 남편이 지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두 가정은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죠. 자기 집도 아닌데 말이죠.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 (1) 편에서 보셨듯이 호랑이는 저런 저희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려 떡(德, 덕 즉 우리가 지어온 복록)을 뺏아먹고 있죠. 그렇다면, 호랑이가 떡을 뺏어먹으러 왔을 때 그 떡을 지켜야 되겠지요. 그리고 그 호랑이가 아는 지인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혹은 내 마음에 들어왔을 때, 응해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발견할 줄 알아야 될 것이고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상극의 감정을 발견하는 능력이에요.


이런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시죠?

누군가와 분노를 하며 싸우고 있어요. 분노를 하며 나에게 화를 분출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평소에 내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그것이 바로 그 사람으로 변해있는 호랑이인 겁니다. 그렇게 나에게 나타나서 나도 똑같이 화를 내고 싸우고 있다면 그 호랑이에게 떡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죠. 상대방에게만 호랑이가 스며든 것이 아니겠죠? 같이 화를 내며 싸우는 부정적 감정이 일어난 나도 호랑이가 스며들어 가 있는 현상인 거예요.


우리의 몸과 마음심령신대(心靈神臺)라고 합니다.

‘영대’라 함은 신명을 모셔놓은 집이라는 뜻인데, 내 마음이 이 신명을 모셔놓은 집이라는 뜻이죠.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양심 어기는 언행을 하면 나도 모르게 양심이 찔리는 이유는 이 마음에 있는 신명을 속인 것을 나의 무의식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도 마찬가지이죠. 당시는 감정에 휩싸여 분노를 했더라도 감정이 누그러지고 시간이 지나면 '아휴, 조금만 참을걸' 이라며 후회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게 호랑이가 깃들어있는 건지 알아차리고 싶으세요?

만약 나에게도 호랑이가 깃들어 있어 같이 감정에 동요되고 있다면, 이는 절대 알아차릴 수 없어요.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행위를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추슬러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인의예지신의 품성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줄 알아야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겁니다. 나도 똑같이 감정을 일으켜 상대방과 대립하고 있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죠. 결국엔 나 자신이 호랑이의 밥이 되거나, 자손들이 힘들어지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게 될 수가 있어요.


그럼 이럴 때, 내 마음에 호랑이와 같은 사특한 기운이 깃들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 마음에는 본성인 나의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있어요. 그러나 내 마음에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이 온다면, 주인인 나를 몰아내고 내 마음을 제 집처럼 쓰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돼요. 내가 알아차리기 전에는 결코 그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내가 알아차리게 되면 더 이상 그 집에 머물지 못하고 도망 나와야 되는 거죠. 본인의 집을 제 맘대로 쓰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는 계속 그 집이 제 집인 마냥 살다가 집주인이 알아차리자마자 도망가던 영화 기생충처럼 말이죠.


호랑이에게서 떡을 지켜내려면, 현재 내 감정이 부정적인지 알아차려 더 이상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상대방이 감정에 휩싸여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원수도 사랑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성인들의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여겨라.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말씀을 실천할 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떡을 다 줘 잡아먹히지 않는 방법,

나를 잡아먹으러 온 호랑이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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