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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녀의 인생철학 Oct 24. 2021

바보. 도끼 찍어 올라왔는데.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7)

도끼 찍어 올라간
나무


아이들을 발견한 호랑이가 묻습니다.

"너희 거기는 어떻게 올라갔니?"

오빠가 말합니다.

"어떻게 올라왔긴. 기름 발라 올라왔지."

얼른 부엌으로 가 기름을 챙겨 온 호랑이가
기름을 바르고 나무를 오릅니다.
그러나 너무 미끄러워 주르륵주르륵 계속 미끄러져 떨어지죠.
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여동생이 까르르 웃으며 말합니다.

"흐흐 바보. 우린 도끼 찍어 올라왔는데."

"뭐? 도끼! 그렇군."

얼른 도끼를 챙겨 온 호랑이가 도끼를 찍어 나무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전편인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 (6)에서 설명드린 대로 인간의 목숨을 지켜주는 나무이지만, 나무는 움직이지 않죠. 아이들의 목숨이 위협적이라고 해서 갑자기 나뭇가지가 쑥 내려와 아이들을 올려주진 않았을 테니깐요.

여동생이 도끼를 찍어 올라왔다고 실토를 합니다.


이 도끼를 찍어 나무를 올라간 행위.

나무가 인간의 수명과 복록을 담당하는 신이라고 한다면, 도끼를 찍어 열심히 올라간 나의 행위는 나의 정성과 노력을 뜻합니다.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이뤄지기 바라는 건 바로 요행에 속하겠지요. 이 세상 어떤 일도 나의 노력이 없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으니깐요. 나무에 올라가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도끼를 찍고 열심히 올라간 노력이 뒷받침되었던 겁니다.


신에 대한 믿음, 혹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들이고 노력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동화에서는 아이들이 도끼를 찍고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나무에 올라가 목숨을 건진 아이들은 실제 그 도끼를 찍어 올라간 아이들의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이지요.


현실사회에서도 우리는 성공을 맛본 사람들을 많이 보곤 합니다.

그리고는 "대단하다", "부럽다." 하며 성공한 삶을 부러워하죠. 우리는 이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결과만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피난 노력을 했는지는 잘 보지 못하죠.

내가 무언가 성공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성공한 롤모델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도 한 번 상상해 봐야 되지 않을까요?




오빠의 이야기를 들은 호랑이가 기름칠을 하고 나무를 오르죠. 그러나 너무 미끄러워 계속 추락해 떨어집니다.

여기서도 호랑이가 우리가 아는 일반 동물이 아니란 게 증명이 되고 있죠.


호랑이는 일종의 고양잇과 동물입니다.

나무를 아주 잘 타는 동물이란 말이죠.

[동물의 왕국]과 같은 프로그램에 종종 호랑이가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는 장면이 방영되곤 합니다.

이토록 나무를 쉽게 타는 동물이 호랑이인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올라갔냐고 오히려 묻죠.

그리고 기름을 발라 올라가고 있으니 일반 우리가 생각하는 호랑이가 아닌 게 확실해 보이네요.


호랑이의 실제에 대해서는 해님 달님 속 숨은 메시지(2) 편을 참고해주셔요

     https://brunch.co.kr/@353b09b8f8134e7/25



앞장에서 언급했듯이 호랑이를 척신의 존재로 보게 된다면,

인간의 수명을 담당하는 신명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모른다는 전재가 깔리게 되죠.

방법을 모르니 기름을 바르고 올라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대로 실행하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보.
우리 도끼 찍어 올라왔는데.



여동생이 그만 어떻게 나무에 올라갔는지 실토를 하고 말죠.

방법을 알게 된 호랑이가 얼른 도끼를 가져와 아이들이 피신해 있는 나무를 성큼성큼 따라 올라오게 됩니다.


여기서 말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가 잘 담겨있죠.


내가 어떻게 정성 들였느냐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호랑이는 그대로 따라 올라오고 말죠.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이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거꾸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말이야,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도와줬어."

"그거 내가 한 거야..."


내가 잘한 것, 남을 위해 선행을 베푼 것 등 무엇인가 정성을 들여했던 일을 남에게 알리면서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내가 실수한 것, 잘못을 저지른 것은 나의 흠집이 될까 두려워 입을 꾹 다물게 되죠.


그러나 반드시 반대로 행해야 됩니다.

호랑이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게 하렴 말이죠.

내가 잘한 선행은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 덕을 보았다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알아야 되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추기 위해 자랑처럼 말하고 다닙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선행이 소멸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죠.


간혹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누군가 밥 값을 내고, 엄청난 생색을 내시던 분들.

그렇게 생색을 내지 않았다면,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누군가 "저분이 밥 값 내셨대."라고 알려지며 본인의 이미지가 올라갈 터인데, 굳이 본인 입으로 생색을 내며 고마운 마음도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 그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시면 돼요.

설사 상대방이 나의 배려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나의 배려와 선행이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준 만큼 받겠다는 심뽀가 작동한 거일 수 있어요. 진정한 선행은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진심 어린 마음이야 말로 진짜 선행일 수 있으니깐요.


그리고 반대로 내가 잘못했거나 실수한 일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토를 해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 하면 할수록 거짓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늘어나게 되죠. 처음엔 잘 감춰질지 모르지만 세상에 거짓은 반드시 들통나고 맙니다. 변명과 거짓은 듣고 있는 상대방도 무의식으로 느껴지게 되죠.

본인의 잘못을 감추려고 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느냐보다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더 멋져 보이기 마련이죠.

'그런 실수를 했는데도 저렇게 쿨하게 인정하다니, 참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이죠.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내뱉는 순간, 그 잘못의 크기는 반감을 하게 됩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요.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늘여 놓는다면, 그 실수는 고쳐지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상황이 계속 되게 됩니다.

그러나 인정하는 순간, 그 잘못된 습관은 고쳐지기 시작하는 거죠. 내가 나의 잘못을 인지를 했으니깐요.


앞으로 우리,

선행의 행위에는 입에 자크를 잠그고,

잘못된 실수는 쿨하게 인정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멋진 사람이란 인상을 한 번 심어보며 사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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