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도서관 사색의 방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감사
창밖에 보이는 하늘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고 무덥고 지루한 폭염은 엿가락을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지루하기만 하다.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숙제 같은 무게가 항상 개운치 않게 남아있다.
완산도서관 자작자작 책 공작소 사색의 방에 나는 운이 좋게도 입주작가로 들어왔다. 이 얼마나 행복한 느낌인지 내가 살아오면서 몇 번 안 되는 참 좋았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이 변하여 왔듯이 나도 그 변화에 몸을 싣고 변화하여 오늘 여기 작가의 방에 들어왔다.
한 권의 책 안에 수많은 글자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도 그 글자들을 담아 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을 이방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곳에 들어오려고 한 것은 나만의 공간에서 글쓰기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국에서 이렇게 좋은 작가의 집필실을 제공해 주는 곳은 전주 완산도서관뿐일 것이다.
나는 큰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을 내색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즐거움에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완산칠봉의 기운을 받아 글감이 새록새록 마음을 파고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오는 중에 어느 작가분이 작은 도서 그림책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요즘 그림에 관심이 많아져서 흘깃 쳐다보는데 별 반응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왔다.
엘리베이터 타는 곳 근처에 신문이 놓여 있는 곳에 한 중년 여인이 선채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옆에는 조금 전에 지나쳐 왔던 작가의 그림인 것 같은 그림 한 장이 놓여 있어서 눈길이 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림에 관심을 보이니 이 여인은 째려보는 눈빛으로 “네가 왠 관심이야.”하는 듯 그림을 집어서 엎어놓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길은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매서운 경계의 눈초리였다. 세상에는 이처럼 타인에게 거북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자기만의 이상을 추구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배타적인 감정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정서적 교감이 남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괜히 아침부터 맘이 상할 뻔했으나 바로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버렸다.
저녁이면 "다시 뜨겁게!" 프랑스파리에서 열리는 제33회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한 결과 쾌거가 즐거운 소식에 기분이 좋다. 맨 처음으로 오상욱이 펜싱 본고장에서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보였다. 곧이어 사격 공기권총 10m 결선에서 오예진이 금메달을 따낸 후 양궁 남녀들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각각 걸었다. 당초에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로 종합순위 15위를 목표로 경기에 임했으나 8월 4일인 오늘에 벌써 금메달을 10개나 따게 되었고 종합 6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양궁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독점하게 되었고 사격과 펜싱, 배드민턴도 선전을 하고 있다. 양궁의 김우진과 임시현은 3관왕을 일구어 냈다. 도쿄올림픽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에게 폭염 속에서 잠시나마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 주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과 총과 칼을 들고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은 우수한 민족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음일 것이다. 특히나 양궁 전종목 석권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명궁사들이 많았음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구기종목보다 개인 기술을 발휘하는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히나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탁구의 신유빈은 온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배 선수이다. 배드민턴의 안세영도 28년 만에 양궁개인전 우승을 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 유도와 권투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선전을 하며 금메달에는 못 미쳤어도 은메달 동메달을 목에 걸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더위도 잊는 듯했다. 맑고 순수한 표정에서 스포츠맨십이 가장 잘 담겨있는 선수들이기에 더욱 그랬다. 선수들은 메달하나에 딸려오는 크고 작은 영광과 미래가 따라 오기도 한다. 다른 종목은 비록 메달권에서 멀리 있어도 그동안 땀 흘려 닦아왔던 자기 실력을 뽐내는 선수들의 모습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수많은 선수 중에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물론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는 선수들은 남다른 기분이겠지만 노메달로 돌아오는 선수들은 관심에서 멀어져 쓸쓸하게 돌아오게 됨을 보게 된다. 올림픽은 물론이고 세상에는 모든 과정에 경쟁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승자의 영광과 패자의 눈물에서 또 하나의 쓸쓸함을 보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모든 선수들을 따 똑같이 응원하고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시간마다 안전 안내 문자가 답지하고 있으니 모두가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음이다.
“현재 폭염경보 발효 중으로 야외활동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충분히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건강관리에 유의하세요.”라고 행정기관에서 폭염에 주의하라는 문자이다.
이곳 작가집필실은 걱정이 없다. 충분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도서관 주차장은 이미 만차가 되었고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서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이는 노트북을 켜고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보느라, 또는 잠깐씩 졸고 있기도 했다. 완산 칠봉에 오르는 산책로가 바로 옆에 있고 구도심과 한옥마을을 잇는 남부시장과 전주천이 내려다 보인다. 나는 편안한 사색을 끌어 안고 집필실에서 긴 여운을 즐기고 있다.
나는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다만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쉬지 않고 있다. 메달을 딸 정도의 베스트셀러를 내어 놓을 수는 없지만 글쓰기를 하는 그 자체로 만족과 재미를 느껴가며 이곳에서의 정한 기간을 보내고 싶다. 오늘도 폭염경보가 발효되었다. 나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도서관에 나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열심히 글을 써보려 한다.
전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 읽기 좋은 도시이고 문학산책이 가장 용이한 도시다.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잘 정비되어있고 시민들에게 편의와 쉼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전주 완산도서관에는 책·예술·미디어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리모델링 후 재개관을 하게 되었다.
재개관한 완산도서관은 1층에 놀이와 예술을 체험하는 전시 공간인 “완산마루” 미디어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미디어 창작소”와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열린 무대”를 갖추고 있다.
2층에는 도서 열람실과 대출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어린들을 위한 자료실은 물론 독서공간과 창의활동 공간도 있어 기존의 답답한 도서관을 벗어나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다.
3층에는 자작자작 책 공작소를 마련하고 전문작가 12명과 시민작가 10명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집필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글 쓰는 작가들에게 좋은 사색의 공간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작가들의 편리를 위한 소소한 배려와 응원이 담겨 있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고 사색을 하는 집필실을 이용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작가라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관의 이름 없는 선수처럼 이름 없는 작가는 잃어버린 세상의 가치를 찾아 나서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 끈기 있게 도전하는 것이다.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어떻게 써 나가야 하는 줄을 알았다면 먼저 자기를 성찰하고 매일 변화하는 과정을 겪어가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문득문득 다가오는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기대가 실현되는 과정일 것이다.
내가 사는 전주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여러 곳이 있다. 모든 도서관은 독서와 휴식을 제공하며 문학산책의 로드맵도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별로 특성화 반을 열고 연중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영어독서능력 향상반, 글쓰기 심화반, 브런치 작가되기, 숲 체험 생태학습, 독서토론, 북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운영되고 있다. 전주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아 다른 훌륭한 작가들에게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올해 들어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완산도서관과 서신도서관은 많은 전주의 독서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도서관이 전주처럼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요즘에는 전주 도서관 투어 프로그램도 생겼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완산도서관 자작자작 책 공작소 작가의 집필실에서 창작의 길을 묻는 나그네의 걸음으로 한걸음 씩 걸어본다.
창밖으로 보이는 덥수룩한 전주천을 따라 자리 잡은 남부시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의 열망을 더욱 아쉬워하는 심정으로 성공에 이르지 못했지만 땀 흘려 노력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떠 올려 본다.
이름도 영광도 없이 경기장에서 구슬땀 흘리며 분투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야겠다. 메달에 다다르지 못한 선수들처럼 글을 써 나가면서 환호성을 기대하지는 말아야겠다. 다만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면 이곳 완산도서관 집필실에서 창작열의는 지속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