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자산
추석명절 연휴 후 주말을 앞두고 있는 둘째 날이다. 올여름은 유래 없이 길었고 폭염과 열대야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지구의 기후변화가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석을 하석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또한 추석명절이라고 고향을 찾고 조상을 섬기는 의례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며 각자 좋아하는 쉼과 여행을 즐기는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요즘 직장인들은 긴 연휴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 수 있을 재미를 먼저 찾아 나서게 되었다. 예전에는 긴 연휴로 오히려 피로와 스트레스를 가득 짊어진 채 출근길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는 명절이라는 대 전제도 흐려지고 편하게 즐기려는 신세대들이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는 듯하다. 더군다나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산 토종 며느리들의 실종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 중장년 남자들은 오히려 더 무거운 마음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종갓집 주방에선 해도 해도 끝이 안 난다는 며느리의 일거리들......
며칠 전부터 차례음식 준비에서부터 뒷설거지까지 허리 한 번 펴보기 어려운 어머니도 계시고 아내도 있다. 우리가 무심결에 한국산 며느리들의 보통 일상이라 여겼던 명절의 풍경이었다.
특히나 종갓집 종부라는 타이틀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가풍이라는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헌신적인 며느리의 삶을 당연시 이어온 게 사실이다.
점점 핵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변화되고 명분만으로 유지되어 오던 종갓집 종부도 어려운 손님도 뜸해지고 그냥 식솔들만 드나들 뿐인데도 갈수록 한국산 며느리들의 마음과 몸은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오죽하면 가장 사랑스러운 아들, 딸, 손주들, 며느리, 사위들조차도 오면 한없이 반갑지만 갈 때는 더욱더 반갑다고 하니 말이다.
명절 차례상을 차리거나 기제사를 모실 때는 시집와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시댁 조상님들께 상을 차리고 절을 하면서 “이런 형식적인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상님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한 것일까?” 하는 발칙한 생각도 수없이 했다는 며느리들의 이야기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는 조상을 섬기는 유교적 관습과 전통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 특히 어른들이 생존해 있는 가정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조상에 대한 예와 법도일 것이다.
어려운 시대(6.25, 4.19)를 겪고 자란 세대의 한국산 며느리의 이야기이다.
“이번 추석에도 노구(老軀)를 무릅쓰고 며느님의 눈치를 살피며 정성을 다해서 조상님께 올릴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모셨습니다. 달포 전부터 마트와 전통시장을 다니고 음식재료 선별 및 손질에 수없이 많은 손길을 오가서인지 차례를 모시고 나서 할 일이 끝났다 생각하니 급격히 피곤함이 쏟아지더군요.
힘은 들지만 이런 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고 또 삶의 보람이기도 하겠지요.” 몇 안 될 것 같은 어느 한국산 토종며느리의 고백이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명절도 간소화하고 기제사도 늦은 밤이 아닌 저녁에 모신다고 한다. 저희 처갓집의 고집불통 큰아들 처남은 “간소화”란 단어를 아주 모른 척합니다. 기제사도 꼭 밤 12시가 되어야 모시니 절차가 끝나면 새벽 2시가 됩니다. 장인어른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며 수십 년 이상을 이렇게 하다 보니 며느리들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고 들키지 않게 불편함을 표하기도 한다.
오곡백과 영글고 코스모스 길가로 가슴 설레게 했던 추석명절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함이 있었기에 힘들고 어려움도 함께 남기고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행복의 조건을 따지면 불행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 더는 살지 못한다.”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말이 생각이 났다.
이제는 조건 따지지 말고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이 행복하다 생각하고 사는 것이 제일 일 듯하다는 며느리들의 의견이다. 요즘은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안 하고 자녀들 모두가 건강하고 속 안 썩이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생각하고 지금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도 축제에서나 볼 수있는 전통놀이쯤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어릴때에만 해도 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하여 커다란 기대를 갖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추석전날에는 빨간 고무대야에서 목욕을 하고 내복을 처음 입는 날이기도 했다.
더 옛날에는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주기도 했단다. 추석날 첫 번째 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상 앞에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며느리들이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차례 상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낸다.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고 가장 좋은 산해진미를 풍성하게 차려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飮福)을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서는 반드시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해야만 한다.
추석 무렵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넉넉해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즐겼다.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 풍물을 치고 노래와 춤이 어울리게 된다. 그해에 마을에서 농사를 잘 지은 집이나 부잣집을 찾아가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인심도 좋아서 넉넉한 대접을 했다.
이처럼 추석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 민족의 삶과 전통의 맥을 잇는 중요한 날로 정하고 명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며느리들의 수고와 노력이 절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라는 여자보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은 모든 수고와 희생을 감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유교관습을 따라 남자들은 행사를 준비하고 여자들은 음식과 수발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남녀가 유별하여 남자들이 담당하는 가문의 책임과 어른으로서의 위엄은 힘이 들지 않는다 생각하고 여인들이 담당하는 음식과 뒤치다꺼리는 종이 없는 요즘에는 힘이 부치다 못해 고생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권세와 빈부의 차이에 따라 종이 있고 없고 하였다. 살림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여인들이 감당하는 부분은 요즘 남자들처럼 가풍을 중시하고 그에 걸맞게 가문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종이 없는 구조(가사도우미로 존재)에서 며느리가 종처럼 모든 일을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되어버렸다. 점점 며느리들에게 지워지는 짐은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에 의문을 담게 되면서 한국산 토종며느리의 실종은 시작되었다.
일단은 명절의 의미는 변질되었고 가족들에게 제공될 음식 만들기에도 며느리들은 손을 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 추석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음식이 상할가 봐서 만들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어느집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자유를 선포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겠지만 여자들은 딸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살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며느리가 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엄마가 되고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니 그녀도 역시나 며느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국산 며느리는 위대하고 강한 존재였음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한국산 토종 며느리는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풍과 가업에 지극히 헌신적인 노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가풍아래에선 며느리는 어머니에 비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항상 암울했던 한국산 며느리는 언제부터인가 해방구를 찾아 탈출하기 시작했다. 점점 귀한 존재로, 이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존재인 한국산 며느리는 멸종위기의 보호되어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명절을 맞은 요즘의 세태 풍속은 며느리들의 가출, 해방을 외치며 나 홀로 시간과 여유를 찾아 가족과 풍습을 떼어놓는 새로운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혼 15년 차 40대 후반의 주부 서 모씨는 종가집 맏며느리였다. 올해 추석에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결혼해 지난 14년간 명절마다 전을 부치고 송편을 만들었던 “모범 며느리”의 변심이었다. 남편은 당황했고 장차 며느리가 될 수도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딸은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서씨는 모 일간지에 소개된 글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며느리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명절의 틀을 깨버리고 싶었다.”며 “서울근교에 작은 숙소를 잡고 나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유행하는 맥주와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서씨는 “시부모님이 노하셨다는 이야기에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여기서 물러나고 싶진 않다.”며 “내년에는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서씨와 같이 기존 명절 문화를 거부하는 <행동하는 며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제사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한 불만”을 표출해 왔던 며느리들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모 여성정책단체 연구위원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여성들이 과거와는 달리 제사라는 가부장적 규범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며 “며느리들이 숨겨왔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사 때는 현관문으로 여자가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사연부터 설거지를 도와 달라고 하니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는 시동생의 이야기, 명절 당일 오전 10시에 시댁에 도착한 며느리에게 “늦게 와서 꼴도 보기 싫다.”는 시어머니까지. 한 여성 사용자는 “이런 명절을 보내는 것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며 “내 딸들에게는 <메이드인 코리아 사위>는 사절이라 선언했다.”는 글을 남겨 공감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며느리를 가사도우미로 취급하는 시댁에는 가지 않고 있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며느리는 언젠가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있는 시대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급격히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언젠가 부터는 자연스럽게 가풍이나 전통은 빛이 바랫고 시어머니나 남자도 따로 영역을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큰 명절로 설날과 추석에 겪어야 하는 한국산 토종 며느리의 실종으로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며느리이기에 앞서 사랑하는 아내로서 힘들고 지친 맘 불편했던 시간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를 넘어 세대를 달리하는 여자들의 성 평등을 넘어 상위를 점하려는 세태와 전통적인 문화학습을 받고 며느리가 키워온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기득권 다툼에서 결국 꼬리를 내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어떻든 명절의 의미가 우리에게 주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마저 사라지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전통문화는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맺힌 한과 끼와 삶의 여유를 담아가는 선물 보따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추석명절은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따로 없음이 그 근본일 것이라 믿기에 가여운 한국산 토종 며느리가 아니라 자랑스럽고 존중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요, 자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