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는 것이 어렵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말에는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갖는다. 촌철살인이라고도 했다. 말은 어떠한 형태로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 그래서 말하는 것은 신중하게 잘해야 한다.
말은 왜 하는 것일까? 아마도 상대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 일게다.
만약에 듣지 못하는 이에게 말을 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말을 잘하는 것과 잘 듣는 것 중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잘 듣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 어른들이 그랬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판단하지 않고 자기 생각은 절제한 채 몸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말하는 이의 진심을 알게 된다. 오해하거나 선택하지 않고 관찰하여 그대로 몸으로 들어준다면 말하는 이의 속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평가되는 경청의 방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로 고정관념을 버리고 입장 바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 그것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현을 가미해야 더 진실해 보인다.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려면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을 수 없는 자기 의견이 목을 차고 넘치게 된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의 의중을 판단해 버리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고 이해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듣는 사람이 듣는 중 판단을 먼저 해버리게 되면 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해진다. 말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게 되고 듣는 사람이 말하게 되는 착오를 일으키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상식과 가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청하는 자의 자세를 버린 결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잘 들으려면 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입장을 바꿔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표정으로, 마음으로 경청하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먼저 들을 청(聽) 자를 생각해 보자. 귀(耳)로 듣고, 눈(目)으로 듣고, 마음(心)으로 듣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거부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령 말하는 내용이 듣는 자에게 비난의 말이라 해도 곧바로 반론을 펴지 않고 일단 끝까지 듣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이러한 상황에서 인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 또한 진심의 커뮤니케이션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긍정 공감이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맞는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다. 기쁜 이야기를 할 때는 미소를 지어주고 슬픈 이야기를 할 때는 슬픈 표정을 지어주고 더욱 공감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스킨십을 더하여 공감해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했다면 어떤 심정일지를 여러모로 헤아려 가능한 한 비슷한 기분을 가져보려고 하는 것이 “공감”일 것이다. 일단 이야기하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에 표정을 더하여 맞춰주는 배려와 말하는 중간에 차단하거나 자기의 이야기로 거부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고 끝까지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아도 말하는 이의 이야기의 전달이 다 되기 전에는 반론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말하는 이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해주어야 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는 반드시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제대로 이해했다는 확인을 해주어야 한다. 이런 표현은 이야기를 다 듣고 할 수도 있고 중간중간에 표현해 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든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자기 기준으로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대한 반영과 확인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마음을 잘 전달했고 상대방에게 반영되었다고 느낄 때 감정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고 홀가분한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상대가 자기가 한 이야기들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요약해서 반영해 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하고 스스로 만족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인내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경청(敬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기다리는 인내심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하는 자신은 난해한 질문을 던지고 나서 에둘러 자신이 대답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경청에는 침묵의 어색한 시간까지 견디는 것도 포함된다. 질문을 하였는데 아무런 답이 없다면 서먹한 분위기가 생길 것이다. 혹 그러한 경우에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대답을 하거나 마음의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교육심리학에는 14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어느 학급에 도난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담임선생님은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다 눈을 감게 한 다음“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조용히 손을 들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용서해 줄 테니 손을 들어라.”라고 한다. 이때 말하는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14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면 누군가 손을 들거나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우리가 대화하는 상대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말하는 이가 어색한 질문을 던지면 약간의 침묵이 흐를 수 있다. 그러나 14초 동안 기다리면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시계를 보면서 14초를 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같은 질문을 좀 더 다르게 표현해 줌으로써 상대방이 더 쉽게 대답할 수 있도록 생각을 자극해주어야 한다.
다섯 번째로 실제적인 경청의 기술들을 살펴보자.
먼저 부드러운 눈 맞춤(eye-contact)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다. 다정한 시선으로 마음의 창을 열고 대화하노라면 서로에 대한 오해가 걷히고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똑바로 쳐다본다고 기분 나빠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지금은 시대가 변화한 만큼 서양 사람들처럼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서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보이면서 경청하는 것도 기술임을 기억하자.
다음은 적극적인 바디랭귀지(body language)이다. 내가 말을 할 때 상대방이 긍정해 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면 절로 힘이 생기고 신뢰도 생겨서 소통에 더욱 진심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언어를 통한 의사 전달보다는 몸짓이나 표현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의사 전달을 분석해 보면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7%이고 목소리가 38%인 반면에 바디랭귀지는 무려 55%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큰 요소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와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말하는 사람을 주목해주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거나 맞장구를 쳐주면 훨씬 더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만큼 나도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더 높은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경청의 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잘 활용해 보자.
1.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습관화하라.
2. 상대방의 의도와 생각에 집중하라.
3. 객관적인 입장을 갖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하라.
4.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말하지 말라.
5. 재촉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듣도록 하라.
6. 자신의 호기심(好奇心)을 채우기 위한 질문은 삼가라.
7. 미소와 따뜻한 눈길을 통해 관심을 표현하라.
8. 경청은 독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도 한다.
9. 자신이 마치 해결사가 되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인상을 주지 마라.
10. 대화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