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화염 속 서로의 숨이 불이 된다
- 불의 언어, 감기
한 사람의 숨에서 불이 번진다.
말이 되지 못한 체온이
천천히 온 방을 덮는다.
누군가는 불에 지쳐 잠들고,
누군가는 이불을 덮어준다.
누군가는 참아내고 버티며,
그 불은 우리 안에서
너무 아프지 않게, 다정하게 타오른다.
그렇게 조금씩 타오르고,
그 불빛 아래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다.
이른 추위에 밤새 추웠던 걸까
이른 난방에 더웠던 걸까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이 따갑다.
한기와 열기가 엉켜 있는 공기 속에서
딸의 기침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진다.
그때 알게 된다.
이번엔 내 차례구나.
코에서 불이 난다.
딸한테서 옮은 게 분명하다.
남편만 멀쩡하다.
희한하다.
코로나 때도 그랬다.
딸이 먼저 앓고, 내가 뒤따르고,
늘 마지막엔 남편이 걸렸다.
그 하루이틀의 차이...
이번에도 그 예감이 어김없이 다가온다.
그는 언제나 가장 늦게 앓는다.
마치 “나는 괜찮다”는 말로
몸의 신호를 밀어내듯, 버티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버티는 게 강함인지,
무너질 틈을 내어주지 못하는 가장의 무게인지.
늘 그렇듯 그는,
마지막 순서로 앓는다.
책임이라는 이름이 면역처럼 작동하는 걸까.
하지만 결국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기침을 한다.
딸의 기침 소리가 내 안에 닿고,
내 기침이 거실로 번진다.
남편은 이번에도 고정 대사처럼 말한다.
“병원 가. 그래야 빨리 낫지.”
그 한마디가 이제는 무심한 듯 따뜻하다.
아픈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닮아간다.
약기운과 피로, 웃음과 한숨이
하루의 숨결 안에 겹쳐 앉는다.
그러다 문득,
‘불의 언어’라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감기가 찾아온 가족의 시간은
조용한 화염 속에서 지나간다,
기침도, 열도, 걱정도
결국은 사랑이 돌고 도는 또 하나의 방식.
아프면서도 서로를 닮아가는 일.
그게 가족의 시간이다.
하루이틀의 간격은
다정과 고단 사이의 거리일 뿐.
우리의 온도는
그렇게 서로에게 옮겨지고 있었다.
남편은 유자차를 사 오고,
딸이 손수 준비해 주는
따뜻한 차 한잔에 몸과 마음이 나른해진다.
가족의 시간은 그렇게
조용한 화염 속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불은 고통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빛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불빛 아래서,
나는 다시 가족의 얼굴을 바라본다.
서로의 숨이 불이 되어
하루를 데우고, 마음을 녹여낸다.
누군가의 기침, 한숨...
무심한 듯한 말 뒤에 숨어 있는 따뜻함.
그 작은 다정이 오늘을 버티게 한다.
서로의 체온이 닮아가는 그 순간,
사랑은 이미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사랑은 감기처럼, 숨이 되어 번지고 있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그나저나
수능이 코 앞인데 딸 감기 어쩔거니?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텐데
엄마부터 챙겨줘서 고마워,"
"고3인걸 알면서도, 엄마도 몸이 말이 아니라
예전만큼 못 챙겨줘서 미안하구...
사랑한다. 딸 ~♡ "
#가족의온도 #사랑의감염 #일상의다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