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몰랐던 사랑
그날은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오후였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의 말투가 툭툭 부딪혀왔다.
나는 처음엔 참았고, 두 번째에도 넘겼지만
세 번째엔 결국 터지고 말았다.
"너, 왜 이렇게 예의가 없니?"
딸은 말없이 문을 꽝 닫고 들어갔고,
나는 텅 빈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문득,
어릴 적의 내가 떠올랐다.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대들고 소리 지르던 나.
그때의 엄마는,
지금 내 나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늘 예민해 보이고,
자주 화를 냈고,
혼자서만 분주하게 움직이던 얼굴.
그 표정이,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표정을 나도 짓고 있었다.
딸과 마주할 때마다
엄마의 그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그땐 몰랐다.
엄마도 나처럼,
딸에게 미안했을 거라는 걸.
화를 내고 돌아서선,
혼자 울었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마도 분명,
누구보다 내 마음을 알고 싶었을 텐데
그땐 너무 어린 내가
그 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딸과 함께 살아가며
나는 자꾸만
엄마의 마음과 마주친다.
그 마음은
말보다 길었고,
표현보다 깊었다.
때로는
침묵으로도
다 전하고 있었던 마음.
나는 이제야 조금씩,
엄마의 그 마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딸을 키우며,
엄마를 기억하고,
그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더듬어 간다.
내가 몰랐던 사랑 안에서,
나는 자라고 있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