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생각은 쏟아지는데,
붙잡으려 하면 이미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앉는다.
글 앞에서, 겨우 나를 붙잡는다.
글을 쓰기 전, 책상부터 치운다.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선
생각도 주저앉아버리는 것 같아서,
커피를 내리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다.
주변이 시끄러운 건 싫다.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간다.
마음 안쪽이 조용해질 때, 비로소 문장 앞에 앉는다.
브런치 입성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쓸수록 아이디어는 늘어나고,
안 쓰면, 점점 말라간다.
처음엔 내 글이 보잘것없을까 두려웠지만,
용기 내어 한 줄, 두 줄 적다 보니
어느새 브런치북 여덟 개를 동시에 쓰고 있었다.
요즘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놓치는 게 아깝고 안타깝다.
나이 들수록, 방금 전 떠오른 것도 찰나에 사라지고,
그걸 붙잡으려 해도 민첩성이 따라주지 않는다.
기억력은 점점 엷어지는데,
마음은 점점 더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다간 병이 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하고 싶은 것들은 몸이 아파도,
결국 하게 된다.
그게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이건 딸을 통해 되새긴 말이기도 하다.
입시공부가 불만이던 우리 딸도,
고3이 되니 그래도 해보는 게
안 하는 것보다 얻는 게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아이에게 배우는 날이 올 줄이야, 하고.
집 안 곳곳, 작은 서랍 속, 가방 안,
구석구석에 있는 그것들.
딸도 같은 버릇을 가졌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딸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손톱부터 자르고 시작한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
이건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 같은 걸까?
남편은 손톱을 못 기르는 내가 신기하다고 웃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든 게 반대인데,
그래서일까?
함께 살아가는 게 더 놀랍고 귀하다.
그리고, 남편은 아직도
내가 글을 쓰는 걸 모른다.
굳이 숨기는 건 아니지만
왜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걸까?
무엇을 사는 데 쓰던 감각들이
무엇을 쓰는 데로 옮겨갔다.
냉동고에 묵혀 있던 것들도
하나하나 꺼내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살아간다는 건, 이미 가진 것들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
내성적인 내가 직장에서
여러 저러 일로 마이크를 잡았던 적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의외로 따뜻한 반응들이 찾아왔다.
그때도, 누군가는 내가 빛날까 봐 깎아내리려 애썼다.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내 꿈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언젠가,
내가 쓴 위로의 글들을
내 목소리로 낭독해보고 싶다.
글로, 그리고 목소리로,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안부를 전하는 꿈.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by 《숨쉬듯 나를 쓰다》 ⓒbiroso나.
《숨 쉬듯, 나를 쓰다》는 글을 쓰며, 숨 쉬게 된 여정을 담은 따뜻한 성장 기록입니다. 써 내려간 마음의 결을 따라 당신에게 도착하는 위로의 노트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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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 목 《엄마의 숨》
2) 화/ 목 《별을 지우는 아이》
3)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4)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5)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6)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7) 토 / 일 《말없는 안부》
8)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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