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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시어머니께 전하는 마음>

12화 한 번도 닿지 못한 진심

by 숨결biroso나

처음엔 참 다정하셨어요.
예비 며느리인 저를 보며
“참 예쁘다”며 밝게 웃으시던 얼굴,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결혼을 서두르셨지요
갑자기 식장이 잡히고
저도 모르는 사이 정신없이
새로운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웃고,
작은 일에도 감사했고,

한 가족으로 여겨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혼 직후부터
어쩐지 당신의 눈빛은 달라지셨습니다.
말 대신 침묵이 많아졌고,
웃음 대신 한숨이 들렸고,
저는 자주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나눈 소소한 다정함도
당신 앞에선 괜히 숨기게 됐고
남편은 그 옆에서
말을 줄였습니다.

그렇게 말이 사라졌고,
마음은 엇갈렸고,
저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이시니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분이니까.
마음 다잡으며
이해해 보려 애썼습니다.

당신이 저를
예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상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면서도
당신 앞에선
늘 조심했고,
늘 먼저 물러났고,
언제나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작아져야 했을까,
그때 나는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남편과 나란히 걷는 그 길 위에서조차
당신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우리의 거리까지 조절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그 마음이
사랑 때문이었는지,
습관이었는지조차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지치던 시절,
당신은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가까이에서
손 한번 제대로 잡아드리지 못한 채.

그게

지금도 참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남편은
부모님 두 분 모두를 떠나보낸 사람이 되었고,
저는 그 곁에서
더 따뜻해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더 다정한 사람으로 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당신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모든 시간들이
늘 괜찮지만은 않았습니다.

도망치고 싶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다 내려놓고 돌아서고 싶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늘 꿈꾸던 따뜻한 가정,
작지만 단단한 일상은
당신 앞에서 자꾸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저는 혼자
모든 걸 다시 짓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버텼습니다.
나로 살기 위해
다시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울고,
참고,
때로는 그냥 조용히 살아내는 것으로
마음을 지켰습니다.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인생은 뜻대로만 흐르지 않고,
사람 사이의 마음도
원하는 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요.

어머니도 그러셨겠지요.
당신께도 꿈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오래 남아 있었을 테지요.

그 마음까지도
조금씩
헤아려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단 한 번도 전해지지 못했던
제 진심을 담은 안부입니다.

그동안 진심을 담아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께는 닿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고, 외로웠고,
그래서 더 많이 지쳐갔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끝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말로는 닿지 않았지만
이 마음은,
이제라도 부디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조금 더 다정하신 분이셨다면
저도
조금은 더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저는 이제
그 모든 마음을 미움으로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이 시간이
저를 조금은 다르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단단해진 제 삶을
당신께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이자
나의 가족이었던 당신께,
지금에서야
이렇게라도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안부입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오래 남고,
다하지 못한 진심은 결국
인생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제야 전합니다.
저는 당신을,
끝내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께 끝내 닿지 못한 마음,

이제야 조용히 안아봅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다 닿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당신께 마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안부는 때로, 말보다 오래 기억되는 마음이다.

그 조용한 안부들을 모은 《말 없는 안부》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 천천히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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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엄마의 숨》
2) 화/ 토 《가장 처음, 마음이 말을 걸었다》
3)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4) 수 /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5) 목 《별을 지우는 아이》
6) 목 《무너지는 나를 바라보는 기술》
7)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8) 일 《말없는 안부》
9) 일/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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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고백 #여자의인생 #말없는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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